한국이 버린 한국농악을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록
한국은 중국 동북공정 선전으로 적대심으로 만 대치 농악연구 자료도 무시
연변대 김성준교수는 고구려 꾀꼬리 토탬이 고구려농악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경기민요. 경기농악 꾀꼬리소리는 이처럼 고주몽 유리왕의 황조가 소리가 고구려농악 태평소 멜러디 경서도 민요소리다
서울말 꾀꼬리소리 한국이 버려진 한민족소리를 중국교포 김성준이 중국에서 살려낸다
농악은 상고시대 한민족 토탬종교로서 지금까지 그 새소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음악연주하는 예술이다 학자들이 추상적 현대놀이 게임 사상으로 규정한 한국측 학계 농악관은 틀린 내용이다
양영대군 세조대왕 유자광 연산군 광해군 홍난파가 5000년 우리소리를 전했다
초중고 담임 선생님과 학부형이 진학상담에서 ' 이애는 수능점수가 이거니 하향지원 해야...'라는 귀아픈 상담소리다
'너는 천재니까 바이오린을 해라 너는공부를 못하니까 국악 그것도 '농악'이나 해라'
그런데 '유자광전'으로 교육받은 사대주의 문화학계 박사들은 중국소리 '종묘제례악'만 챙기고, 한국농악 한국막걸리는 불량음악으로 버려저서 중국, 일본이 우리 5000년을 자국문화화 탐구 재건 한다
욕설 '유자광전'으로 교육 받은 선생님은 이런소리로 뇌세포가 굳어있어 민족의소리는 사라진다
동학군 토벌작전 시대 주민계도에 주자학파가 주로 사용한 협율사 이동백에게 임금호령 중국아악 '궁소리' 를 하사 판소리 광대가 양반특진 자랑 공연이였다
우리소리는 호통치는 소리가 아니고 새소리 토탬, 세계 유일보존 그자료는 농악에 그대로 남아있다
삼국시대 토탬종교 신으로 백제는 비들기, 고구려는 꾀꼬리, 신라는 닭 .말. 까치소리가 찬송가였다
백성에게 즐기라고 가무를 준 적은 없다
신라의 역사를 삼국사기 삼국유사 자료에는 박혁거세 탄생시에 천마가 나르고 말 우는소리 ‘히히히힝’소리 표현이 있다
이 소리가 고 신라 즉 박씨 신라의 신라 궁중음악이 밀양박씨 망명지 밀양농악으로 1순위로 말우는소리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석탈해 왕이 태어난 신화에 까치가 우는 음악소리 '탄생축하주악' 까치소리로 태어났다
석씨가 신라9대 벌휴왕에서 점해왕 까지 까치소리가 제일먼저 1순위로 그 다음 2순위가 말 우는 소리로 ‘째잭 째잭 째잭’- ‘히히히힝-’ 의 소리로 노래 불렸다
당나라 현종의 수양아들 허기장군이 측천무후와 양귀비 가무악공을 노획하여 정읍에서 삼국 토탬소리를 백제 비들기 1순위로 후백제 애국가가 된 아리랑
정읍사 가요는 현재 농부가- 태평가- 양산도- 신고산타령 과 유사한 4절인데 홍난파. 나운규가 현대화 민요로 만든 정읍사 토탬소리
그리고 김알지 왕이 태어나며 금상자에 아기 '김알지'가 하늘에서 내려와 나무위에 내려 닭이 울어대는 '탄생축하주음악'으로
미추왕에서 효공왕시대까지 신라의 왕족을 1순위로 내는 토탬 원시시대 음악이 되어 찬송가 구테타 로서 1위가 닭우는소리 2위 말소리 3위 까치소리로 변하였다
밀양오북치기 농악은 고신라 궁중악단이 밀양박씨 호족지역에 정착 진짜 천년소리다
이리하여 통일신라를 이룬 시기는 닭, 말, 까치 신라국 소리 뒤에 비들기, 꾀꼬리, 백제 고구려 토탬소리 까지 붙여서 통일신라 애국가가 되어 그 소리가 경상도 메나리조 성주푸리 밀양아리랑 강원아리랑 민요소리로 오늘에 남았다
그런데 가장 늦게 태어난 김알지 왕족 후손 미추왕 손이 왕에 오르는 구테타로 박씨 왕족 말우는소리 서열이 두번째로 내려 온다
처음에는 말소리 까치소리 닭소리 순으로 토탬음악이 궁중악으로 사용되다가 김씨왕 내물왕부터 효공왕까지 사용한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신덕왕에서 경명왕 경애왕으로 박씨 왕이 들어서면서 석탈해 후손세력은 약해지고 있어서 박씨 김씨 석씨 왕족세력 순으로 말소리 닭소리 까치소리로 신라국 애국가가 만들어 진다
논산에 있는 견훤왕능, 박씨에게 넘어간 신라의 왕위, 각 지방의 김씨 호족들이 박씨 경애왕에 반발하여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불러들여
합세 경주를 함락하고 김씨 임금 경순왕이 왕이 된다
순식간에 전쟁도 없이 후백제 견훤군이 신라를 함락한 이유가 신라 김씨 호족.부족장들이 호응한 이것이다
후백제 견훤왕이 신라를 정복할 때에 태자 신검.양검이 맹활약을 하여 신라의 궁중악 악공을 노획하였는데
견훤이 태자 '신검'을 막둥이 왕자 '금강'으로 바꾸려고 차남 양검을 점령지 변방 진주태수로 보내게 된다
여기서 양검이 신라궁중악 가무기녀 악공을 진주에서 장기간 거주 백제왕이 될 꿈을 안고 크게 양성하다가 악공은 진주에 그대로 두고 군사를 이끌고 전주로 향하여 태자 금강을 죽이고 부왕 견훤왕을 금산사에 유배시킨다
고려태조 왕건은 항복한 신검을 죽이지 않았고 신검을 진주호족으로 식읍으로 하사, 신라 가무악공이 안전하게 장기간 보전되어 신라궁중악
토탬소리를 암수소리 화음으로 암컷 수컷의 쌍쌍소리로 계승 진주농악으로 남았다
고려태조 왕건은 신검을 죽이지 않고 능환만 죽이고 항복한 신검 양검을 진주 통치 호족으로 우대하여 견훤이 화가나서 홧병으로
전주로 돌아가다가 논산에서 죽었다
백제 역시 그 당시 금산사는 정읍군(야서현) 땅이며 태산태수 허사문은 당나라 안록산 토벌군 '허기' 후손으로 큰 호족 땅이였다
견훤은 광주북촌 이씨 로서 허사문의 혈족으로 그대로 허씨의 변성된 이씨 호족지역으로 왕건의 딸이 허사문의 부인으로 만들었다
견훤왕이 후삼국통일 토탬음악을 비들기 꾀꼬리 닭 말 까치소리 순서 소리가 아리랑소리다
여기 견훤왕능에서 전주 모악산이 보인다
그래서 신라 서울 경주는 악공 없는 옛 수도로 남았고 그 궁중악 악공은 진주에서 호족들이 계속 양성시키어어 신라소리 관현악으로 계승되다가
조선시대 음악천시 음악금지 악정에서도 나레(농악) 행사에서 화음으로 발전되어 김씨 박씨 석씨 왕족소리 닭 말 까치 소리를 그대로 내고있다
그 소리는 고구려 황조가 처럼 암컷 수컷의 쌍쌍소리 돌림노래 화음소리로 발전시켰으나 조선500년 음악금지로 그 소리 리듬만 진주농악으로
남아있다
이런 내용으로 국악의 모든 기관과 제시해도 전혀 참고도 하지 않고 무형문화재 자료로
올려도 오로지 말살 탈락으로 반대하거 매장해 버린다
나는 평생 찾아낸 한민족 고유 토탬종교예술역사를 학계에서 부정하고 밝히는 길은 미래의 주인
한국인 청년학도 들 모두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려고
인터넷 홈페이지와 다음 불로그에 ‘고구려소리찾기’ ‘한민족소리찾기’ 카페등의 제목으로 글을 농악이론 실기등 400건 이상을 발표 읽어본 네티즌이
이미 45만을 넘었다
유네스코에 들어가려면 합당한 고고학과 역사에 일치해야 하는데 일평생 현장에서 철저한 연구에 참고조차 검토조차도 없이
없애 버리고 탐구해야 할 학계.기관에서는 중국은 동북공정, 일본은 침략야욕으로 만 이유를 붙여 적개심, 성토대회로 요란하게 회피한다
우리 학문을 연구하는 권력은 정치세력과 행정기관에서 전혀 도와 줌이 없었다
1995년 나의 저서 아리랑민족 예술사, 농악교본, 출판하였는데 2000년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중국 연변대학 음악교수 김성준 교수가 찾아와서 깊게 문의하고 만주에 전한 한국 국악인을 알려고 조사하고 그랬다
일제시대 우리마을(정읍 옹동면) 사람 권순국이 인솔한 함경도와 만주 광산에서 우리마을 상쇠 쇠바우(유동근) 그 사위 '설장구 신기남'이 만주에 간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신기남도 70년도 무형문화재 심사에서 버려지고 타계했다
그 설장구 신기남의 부정비리 현실과 그 신기남 자서전을 책으로 쓴 김명곤이 후일 문화부장관이 되어서 비리개혁을 크게 기대했으나 신기남의 말대로 정치주변인이 문화 점령이 여전하고 개혁은 없다
http://blog.daum.net/nongaak/7090601
연변대학 김성준 교수의 부인도 역사전문 학자였다 만주 고구려 음악을 철저하게 물어보고 돌아갔다
한국계 중국연변대 음악교수 김성준은 경제적 어려운 연변 환경에서도 나의 한국농악 역사와 동영상 내용을 거의 검색하여 고구려 농악 이론 연구를 하고 질문하는 메일로 자료를 토탬 동영상등 보내주었다
영국 '로보트푸로빈'교수 독일 '기대호' 미국 '게리렉터' 하와이대학 '윤씨'교수등 저명한 외국인 학자는 친히 찾아 자료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가는데 국내에서는 멸시로 일관하고 무형문화재 신청을 해도 농악 전문가심사원 하나도없고 질문도 못하며 0점처리로 탈락시킨다
중국 연변은 이미 지난 2006년부터 조선족의 농악과 널뛰기, 그네타기, 장구춤과 전통혼례 등을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이 가운데 농악은 지난달 말 중국에 의해 세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중국의 문화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 문제에 대해 모씨 민속학과 교수는 “조선족의 농악은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 남한에서 전수한 것이 확실한데 우리가 먼저 등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악교육연구소장도 “중국이 문화재 분야에서도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는데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족 농악은 중국 국적의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위철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국의 무형유산을 폭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어 신청하면 얼마든지 등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분발하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각국이 무형유산을 1건씩 신청할 수 있었던 제도를 2008년 회의를 통해 각국이 신청한 후보를 대부분 등재해 주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래서 한국농악은 버려두어도 유네스코에 올리면 모두 등재해 준다는 안심으로 일관했다
중국의 연변 농악은 5000년 또는 수천년 전 고구려 종교신앙 역사로 내용이 정리되어 올려진다
한국은 어느 곳에나 농악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군사구테타 혼란시기에 정치세력자 지역에 마구 임의 권력으로 근거가 희박한 내용으로 지정된 곳이 훗날에 중국의 고구려농악 내용을 따라 가지 못한다
문화재청은 올해 8월 강릉농악, 이리농악 등 5건의 농악을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이를 놓고 “중국 조선족 농악의 등재가 유력해지자 부랴부랴 우리 농악을 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삼국시대 토탬신앙 '꾀꼬리' 소리내기 위한 악기, '꽹과리'는 고구려 국명과도 같고 고구려. 고주몽. 꽹가리는 '꾀꼬리'를 소리그대로 이름이되어 천신으로 모시는 종교행사가 고구려 연변농악이다
우리 농악의 세계무형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9월 결정된다. 고 전한다
세계무형유산 등재가 수월해졌지만 각국의 등재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이 서둘러 조선족농악을 등재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때다.
아래는 군사정권시대 민청학련사건 사형집행하는 혼란시대 중심위치 문화재심사위원이 농악의 정의를 내린 그 의 저서 선전문이다
중국의 연변에서는 세계최초의 토탬종교 삼국시대부터 현재 경기농악 칠채굿의 꾀꼬리소리 까지 인용 고고학적인 철저한 연구가 한국농악에는 없이농민의 농사놀이 사물놀이라는 장난게임으로 한민족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농악의 정의 (농악 문화재심사의원의 농악관)
농악은 한국 농민들이 활기있는 노동생활을 위해, 소외된 존재의 고독과 고통을 풀어 기쁨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즐기는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예능이다. 이는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양식이다. 서민계층에서 자라온 농악은 비록 고상하고 우아한 예능은 아니지만, 흙냄새가 물씬나고 소박하며, 농민들의 힘찬 의지와 패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이러한 농악은 피로나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 결국 농악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결집하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재생과 생존의 예능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의 악기는 무게가 별로 안나가고 크기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에 지닌 채 자유롭게 뛰면서 연주할 수 있으므로 연주와 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세계 여러 나라의 악기와 구별되는 농악의 자랑할 만한 특징이다.
농악은 민중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불타고 항상 농민의 벗이 되어 그 문화적 기능을 다해 왔다.
이런 농악의 정의를 한국측 농악학계 문화재심사의원 정설이다
100년 식민지 시대 농악관이였다
단군 삼국 고려시대 까지 귀족 궁중토탬 종교로 사용된 것을 조선시대 억압하고 일본이
농사에 이용한 장려로 100년 농악 농사놀이를 ‘한국농악’이라고 세계 유네스코에 이미지로 선전한다면 단연 중국의 연변농악이 세계최고 5000년 토탬 역사 학문적 문화재수준이 높아진다
농악도 한민족소리도 아닌 종묘제례악 계급표시소리 아악을 우리민족소리 라고 초중고 대학 교육으로 선전하는데
각 시도청 자자체마다 당선용 선거운동자 비전공 자 농악을 인간문화재심사위원 20인데 농악경험자는 하나도 없는때도 있었다
연구도 희박한 농악 문화재 학계여!!! 중국타도 반 중국구호 보다 연변대학 김성준 교수처럼 현장에 달려가 연구하였으면 바랄뿐이다
아래는 중국 연변대학 김성준 음악교수가 읽어본 '한민족소리찾기' 고구려 농악글 다음넷 '한민족소리찾기' 불로그 내용
http://blog.daum.net/nongaak/7090526
http://blog.daum.net/nongaak/7090579
http://blog.daum.net/nongaak/7090577
http://blog.daum.net/nongaak?t__nil_loginbox=blog1
현재의 만주 연변대학은 일제 식민지시대 상해임시정부 독립군으로 비유되고 한민족 토탬음악 생존 망명지로 느껴진다
권희덕 n
'태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고향 옹동 이야기 (0) | 2010.10.26 |
---|---|
[스크랩] 정읍사, 유자광이 한글로 악학궤범에 수록 (0) | 2010.10.25 |
[스크랩] 나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0) | 2010.10.23 |
[스크랩] 세종대왕의 의학정리 `향약집성방` 권채는 대장금마을 사람 (0) | 2010.10.18 |
[스크랩] 세종대왕 딸 정의공주가 정읍 허장군당에서 본 한글 `두언전 (竇諺傳)` (0) | 201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