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나의 전성시대

도심안 2010. 10. 7. 21:52


나의 전성시대

오토바이로 우유배달 하던때
작성자 : 함종순 [HM46132205] 작성일 : 2004.10.30 23:59수정: 1 조회:143줄수:46

요줌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저는 15년 넘게 우유 배달 하는 63년생 입니다
지금은 다마스밴으로 우유 배달을 하는데 한때 오토바이로 우유 배달을 할때가 있었어요
안개가 잔떡낀 아침에 배달을 하다보면 오토바이를 타고 들에 가는 사람 볼일 보러가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됍니다
요줌 같은 날 오토바이 타면 정말 춥거든요 
한동안 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일때 저도 오토바이로 우유 배달을 한적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요
그래서 오토바이로 우유 배달 하던때가 생각 났습니다

우유 배달을 하게 된 동기는 같은 동네에 사는 동갑네기 친구가 매일 우리집에 놀러오곤 했는데 만나면 우리도 무슨 돈벌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며 이야기를 하던중 친구가 "야! 나 우유 배달 해 볼까? 그래 그거 좋곘다 여기는 아무도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독점 장사에다 한사람 벌이는 될꺼야 한번 해봐" 나는 엄두도 못내던 생각을 친구가 자신 만만 하게 말을 꺼내더라고요 친구는 시어른과 살고 있었기때문에 아들을 시어머니께 맞기고 우유 배달을 하곘다며 자전거를 한대 사고 동네마다 벽보를 붙이고 한 4개월 했을까 저는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럽던지 그친구가 배달해주는 우유를 받아 먹으면서 우유값 받아 갈때는 은근히 샘이 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친구 안색이 안 좋고 힘들어 하는것 갔더니 한날 나보고 "야 너 우유 배달 인수해 보지 않을래 아침에만 잠깐 하니까 애들 아빠 출근하기전에 끝날수있어 한번 해봐" 그래서 남편과 상위도 안하고 널름 그러곘다고 약속을 하고 자전거와 고객 명단을 하루 따라 다니며 인수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가 둘째를 임신 한것이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얼마나 긴장되던지 그때는 서울우유 병우유였는데 시골이라서 비포장 
길에다 자전거도 서툴고 첫째 넘어져 병이 개질까봐 걱정이었어요 다 돌리고 집에 오면 다리가 후둘후둘 거리고 또 배달 나가면 고객들이 무슨 말이이라도 할까봐 간이 두근두근 했어요 우유값 받으러 갈때는 눈치를 봐야 하고 "다음에 오세요"하면 두말도 못하고 네 하면서 돌아 나오고 했어요 그렇게 몇달 했는데 가까운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 큰아들이 방학을 해서 집에 있었지요 그날도 우유배달을 하고 오후에 아들 둘을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잡고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큰아들은 작은 아들보다 보기가 힘들었어요 언제나 앞서가서 "엄마 빨리와" 하며 재롱떨고 이쁠때였어요 힘들어도 재미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 50미터는 날아가 떨어졌어요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라 어찌 할바를 몰랐습니다 그길로 작은 아들은 큰집으로 보내고 나와 큰아들은 병원으로 우리가족 한순간에 이산 가족이 되어 생전 병원이라고는 모르다 아들이 말을 못하고 사람도 못알아보고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식물인가이되었으니까요 하던 우유배다도 접고 아들 유치원도 접고 아들 침대 옆에서 한발짝도 움직일수가 없었어요 

그런와중에도 우유 배달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친구로 지내는 이웃동네 새댁이가 인수를 해주던지 아니면 다른 우유로 고객을 뺏겠다고 우유 대리점 소장을 통해 찾아 왔어요 참내 기가 막혀서 남은 애가 죽니 사니 하며 사경을 해매는데 그런소리 들으니 피가 거꾸로 스더라고요 그래도 내 욕심만 차릴수 있나요 1년걸릴지 2년 걸린지 모르는 장기 입원 판정을 받았으니 그래서 내가 하던 우유 친구에게 넘겨 주었어요 근 일년만에 퇴원해 집에 와보니 더 이상 욕심이 없더라고요 작은 아들 큰집에서 찾아오고 죽었다고 소문난 큰아들 살려서 집에 왔으니 더이상 돈에 욕힘이 없었는데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어야 살잖아요 그동안 벌어난 돈 다 쓰고 보상도 얼마 못받아 살길이 막막한데 한날 나에게 우유배달 인수 받은 새댁이가 자기는 미용기술을 배우곘다며 다시 우유배달을 해 보라고 왔어요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또 고마운 생각도 들어서 우리 아들 둘 우유라도 실컨 먹여야지 싶어서 또 널름 하곘다고 약속을 하고 이번에는 오토바이까지 인수를 받아서 우유 배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남편이 많이 도와 주어서 오토바이도 탈줄 몰랐는데 남편이 가르처주고 새벽에 오토바이뒤에는 큰 
노란바구니에 종류별로 우유를 싫고 앞에는 요구르트를 싫고 집을 나섭니다 자전거 탈대 보다는 덜 힘들고 우유 양도 많이 늘었습니다 점점 고객이 늘고 더 먼 동네 까지 주문을 받아 가다 보니 한번만에 다 못싫어 중간에 집에 와서 한행부 더 해야만햇어요 이제는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둘다 어린이집에 가기때문에 남편이 아이들 유치원까지  보내 주어서 마음놓고 우유 배달을 할수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유가 몸에 좋은 줄은 알아도 우유를 모받아 먹는 집도 있었습니다 어떨때는 배달 해준 집에서 우유가 안왔다 그러면 틀림없이 등교 하던 아이들이 슬쩍 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새벽에 대리점에서 우리동네 도롯가에다 우유를 내려놓고 가는데 내가 조금 늦게  나가는 날에는 우유가 비곤 했었습니다 그러면 대리점과 우유가 왔니 안 왔니 하며 옥신각신 했는데 그런일이 자주 있다보니 도롯가집 아주머니께서 도독으로 오해 받을 까봐 신경이 쓰였는지 우유 훔처가는 사람을 잡았는데 엄마 없는 자전거빵 아들이 매일 우유를 흠처다 먹었다고 아주머니께서 잡아 뺏어 놓았다며 저에게 말씀 하셨지만 저요 얼마나 우유가 먹고 싶어면 그랬을까 하고 모른척 했습니다 
다 내가 관리 소흘히 한 죄지 하면서요 그리고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지대가 높은집에 배달 하고 오면 우유가 없어지고 했는데 있는집 아이도 훔치다 들키곤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나보고 도독을 키운다며 "그런놈은 따끔하게 혼대주어야 해"그랫지만 저는 먹는것을 가지고 아이들을 나무란다는 것이 먹고 싶은 아이들에게 상처줄까봐 말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산적으로 따지면 남는것은 별로없지만 보람도 있고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살맛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늦게 가면 "새댁 이렇게 늦게 오면 우리 우유 상할가봐 못받아먹지" 그럴만도 한것이 그때는 냉장고가 없은 집이 더 많아서 다같이 이른 아침에 배달 해 주길 바라는데 내 재주로는 새벽에 들에 가는 시골 사람들 마추어 배달해줄수가 없었어요 싫은소리도 많이 듣고 그래도 다 내탓으로 돌리고 우유배달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골목마다 비포장길이라서 비오는날 오토바이를 새워놓고 배달 하고 오면 오토바이가 넘어져서 일으켜 새우려면 혼자 힘으로 간신히 세웠습니다 또 우유받아먹는 사람이라도 보면 기분나뿔까봐 용을 쓰고 세워서 흙이 묻은 것을 옷에 닥고 집에까지 와서 수돗물에 씻어서 다시 배달가고 했습니다 무거운 화이바를 쓰고 남의집 대문을 들어가다가 대문에 꽝 바치면 고개가 뒤로 재껴지면 눈물이 핑돌고 여러날 동안 목이아파 목디스크라도 걸린줄 알고 애태우기도 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손이 시려오는데 오토바이 토시를 해도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황소바람 같았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손이 곱아서 글씨를 쓸수없을 정도로 시럽고 앞면신경마비라도 걸린사람처럼 말이 잘 안나오고 발목 목 넙쭉다리 아무리 단돌이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해가 나도 우유 상할가봐 비가와도 비옷입을일이 걱정 눈이 와도 걱정 눈이 오면 오토바이는 정말 타기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눈이 와서 다져진 길에 조심스럽게 달려 가는데 맞은편에서는 트럭이 오고 있었습니다 트럭을 탄 아저씨도 내가 미끄러질까봐 바짝 긴장해서 "어어어" 하며 멈추어스고 나는 안 넘어 질려고 얼마나 용을 썻는지 오토바이 앞대가리가 술취한 사람처럼 왔다 갔다 하더니 빽 돌며서 옆으로 쫘아악 미끄러졌는데 내 오른쪽 다리가 오토바이 밑에 깔려서 얼마만큼 밀려가 오토바이와 멈추었는데 우유는 온사방 흩어졌고 오토바이에 깔린 다리를 보는 순간 나는 죽었다 내가 다리가 부러져 입원해 있으면 우리 아들 둘과 남편 밥 빨래 우유 받는 사람들의 빗발치는 전화는 어떻게 하나 내가 하는 일은 나밖에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대신새 줄수도 없는데 정신을 차리고 오른쪽 다리를 빼 보려고 용을 써 보았지만 100씨시 오토바이 곰짝도 안하고 눈물이 펑펑 쏫아졌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병원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한심한 생각이 드는데 트럭을 탄 아저씨가 다가와 안타까운 눈으로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요" 하며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흐트러진 우유를 주워 담아 주셨어요 고맙기도 하고 챙피하기고 하고 아픈다리를 딛고 일어서 보니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더라고요 그 상태로 또 배달을 가야 했지요 그렇게 하루 하루 눈올가봐 걱정을 하며 우유 배달을 하다보면 어느덧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도 없이 맞이 하며 흐른 세월이 15년 계속 되며 사람들과 정도 들어 까다롭게 대하던 하람들도 점점 친근하게 다가 왓습니다 

이제는 내가 조금만 늦어도 무슨일이 있는다 걱정을 하고 "우유 먹는 사람보다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산댜" 하며 농담도 하시고 나를 하루도 못보면 전화에 불이 납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도 생겼어요 우유 배달을 하면서 혼자집에 계시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니 할머니 무의탁 노인들이 저를 기다립니다 매일 방문하는데 말상대도 해 드리고 하소연도 들어주고 아프면 약도 사다 주고 개사료도 사다주고 농협에 세금도 내주고 어떨땐는 속옷 사다 달라는 청도 들어준적있었습니다 멀리있는 딸네 집에 전화도 걸어주고 한동안은 짜장면집 아저씨가 암으로 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짜장면 배달도 해준적 있었습니다 내가 우유배달이 아무리 늦어도 점심시간 안에는 집에 오는데 짜장면집 아주머니 전화 와서 "욱진엄마 나 배달 좀 해줘"아주머니는 오토바이를 탈줄 몰랐거든요 모심기 하는 논둑 포도밭 과수원으로 잘도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할머니들이 "이렇게 다니면 배고프지"하며 고구마도 삶아서 주고 감홍시도 주고 쉬어가라고 저를 붙들고 날리가 납니다 이렇게 할머니들 정을 둠뿍 받고 힘든줄 모르고 살았지요 그렇게 오토바이는 나에게 잊을래야 잊을수 없은 내 전성기에 한몫을 했습니다 

오토바이로 여자들이 들기 힘든 물건도 나르고 십리나 되는 시내 시장이도 다니고 아들 학교 행사장 소풍갈때 여러 엄마들 점심 보따리 다 싫고 갔습니다 잠시를 나가도 오토바이는 나와 붙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우유 배달도 열심히 해서 아이들 교육보험도 들어 큰아들 교육보험 10년 만기 500만원 받아 4년제 대학 압학 시켯고요 작은 아들 18년납 2년만 넣으면 1000만원 타서 대학 보낼 것입니다 우리부부 연금도 둘다 들었고요 적금 타서 세들어 살던 집도 사고 땅때기도 하나사고 작은 다마스밴 차도 한대 샀습니다 차를 삿더리 태워 달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병문안 갈때도 집칸에 올라타면 한번은 내리는 데 11명이 내렸습니다 무의탁 할머니들도 보건소 갈때는 다리가 아프다고 태워 달라그래서 여러번 태워주었는데 하루는 할머니가 태풍바람이 부는날 새벽같이 보건소에 갔는데 휴일이라서 다시 걸어가다 만났습니다 우산이 다 뒤집히고 오도 가도 못하고 떨고 있길래 우유 박스 틈에 태웠는데 할머니를 태우고 골목골목 집집마다 다니니까 멀미가 난다면서 자기를 집에 먼져 데려다 주고 우유배달 하면 될텐테 "내가 왠만해서는 안 그러는데 다리가 아파서 그렇지" 하는거에요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나는거에요 "할머니 여기서 내려요 안 그래도 할머니 때문에 다칠까봐 빨리 다니지도 못하는데 남에 속도 모르고 하면서 빗속에 할머니를 내려 놓았어요 그런데 영마음이 걸려서 한바퀴 돌아서 와보니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있길래 또 태우고 간적도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로 할때 보다 차로 하니 빵구도 안나고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서 동네도 늘려서 이제는 집수로는 4~5백집 개령면 전체를 내 혼자 독점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여러차레 다른 우유회사들이 들어와 고객을 뺏을려고 했지만 15년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배달해 주는 저와 정이 들어 정에 못이겨서도 못띠고 또 서울 우유에 인이 배겨 다른우유는 맛이 없어서 못먹곘다고 다른우유로 바꾸었다가도 다시 저보고 넣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 다른 우유 회사에서 자동으로 물러 나는 수밖에요 내가 처음 배달 해준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벌써 장가를 간 사람도 있고 내가 배달가던 마지막집 딸이 초등 1학년때 오토바이로 등교 시켜주던 아이가 4년제 사립대학에서 장학금으로 공부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마음이 뿌듯했고 장가간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우유 배달해 달라 그럴때면 세월이 많이 도 흘렀다 싶어요 

이제는 집집마다 내집처럼 드나 들며 우유 배달을 합니다 제가 단골을 확실하게 잡은 비법이 있어요 첫째가 친절 둘째가 칭찬 이었어요 그집에 방문해서 만나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칭찬을 합니다 인사는 기본이고 아주머니일 경우에는 많이 이뻐지셨네요 입은 옷이 참 잘 어울립니다 아저씨일 경우에는 아저씨가 사랑하는 개를 보고도 칭찬을 합니다 개가 주인을 닮아 점잖네요 하다 못해 그집에 키우는 꽃을 보고도 칭찬을 해주고 특히 아이들 칭찬을 해주면 좋아 했어요 인상은 항상 밝은 표정으로 그렇게 정이 들어어요 시골은 대문을 열어 놓는 집들이 많아서 마당 한 가운데에 들어가서 차를 돌리고 이제는 개들도 저를 보면 반가워 합니다 예전에는 대문옆에 매여 놓은 개가 갑자기 달려 들어서 물리기도 여러번 했는데 이제는 개가 짓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비비꼬며 오줌을 쌀정도로 저를 좋아 합니다 또 시골은 빈집들이 많아서 이층 계단을 올라가 형관까지 넣어주고 사람이 없는집은 형관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냉장고까지 안전하게 넣어 주고 나옵니다 또 요줌은 도독이 시골 일철에 빈집을 노리고 다니는데 내가 동네마다 다니면서 집을 보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간혹 일요일이나 휴일때 도독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치가 떠립니다 

"언제 내 눈에 띠고 말지 이놈에 도둑"글쎄 마당에 널어논 참깨며 고추 마늘 다 키운 개도 훔처 간다니까요" 법없어도 살 순박한 시골 사람들 집에요 시골 사람들은 마음이 좋아서 수금 할때가 되면 청구서와 함께 우유 넣는 장소에 딱 두고 들에 가기도 하고 꼼곰한 사람들은 편지 봉투에 딱 넣어서 두기도 하고 조금 의심이 되는 사람들은 현관앞 발딱기 밑에넣어두고 "우유값 가져 가세요" 하고 메모를 남기는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비닐팩에 동전까지 꼭꼭 싸서 신발장 장화속에도 넣어두고 어떤 할머니는 가마솥에도 넣어 주시고 전화를 하십니다 "거 우리집 뒤안에 가마솥에 우유값과 청구서 넣어 두었으니까 가저가고 영수증 넣어줘요" 요줌은 시골도 홈벵킹으로 계좌 이체를 생활화해서 청구서만 넣어 두면 계좌로 넣어 주는 분들이 많아서 서로 믿고 하기 때문에 얼마나 고마운지 모름니다 

요줌 주부들이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일자리를 알아 보지만 일 할때가 없어서 못한다고 하는데 저는 광고 하지 않아도 주문이 들어오고 관광갈때는 미리 이틀꺼 돌리고 같이 가자고 동네 사람들이 배려를 해 주어서 관광도 따라가고 건강에도 좋고 돈도 벌고 짤릴일 없고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양희은 송승환님 웃을때는 저도 큰소리로 웃으면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건강이 하락하는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고요 그동안 저와 친한 할머니들이 해마다 세상을 뜨셨는데 앞으로도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들거움을 선사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글이 방송에도 꼭 한번 탓으면 좋겠어요
늘 방송 감사하게 잘듣고 있습니다
두분 건강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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