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와 역사 사이에서 떠도는 최숙빈 이야기
태인 고을을 귀하게 만든 사람은 영조를 낳은 최숙빈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만 있고 정확한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불운한 운명을 타고났던 정순왕후와는 달리 그녀는 왕의 아들을 낳음으로써 무수리에서 숙빈의 자리까지 오른 행복한 삶이었다.
집안과 출신이 모두 베일에 싸인 탓에 태인에서 그녀에 대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민유중이 떠돌이 고아였던 그녀를 처음 만났던 대각교만이 이야기 속 배경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숙빈 최씨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둔촌 민유중이 영광 군수로 부임하던 때였다.
민유중 일행을 서울을 떠나 전라감영을 거쳐 태인에 이르러 대각교 태거원에서 길을 멈추고 쉬었다.
그때 예닐곱 살 된 계집아이가 일행 앞을 지나갔다.
남루한 행색이지만 귀엽고 영리해 보였다.
게다가 그 아이는 자기 딸과 어딘지 닮아 있었다.
둔촌 부인은 아이를 불러 몇 살인지, 이름은 뭔지, 어디 사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이는 부모 형제가 없는 고아로 성은 최씨였다.
부인은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임지로 데려갔다.
딸아이의 몸종 겸 글동무 삼아 소녀에게도 글공부와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소녀는 재주가 있었고 총명했다.
몇 년 후 둔촌은 승진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때마침 숙종의 첫 번째 비인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숙종은 둔촌의 딸 민씨를 둘째 왕비로 맞았다. 그녀가 인현왕후였다.
얼마 후 숙종은 장희빈의 미색에 빠져 인현왕후를 궁에서 내쫓고 폐비로 만들었다.
인현왕후의 불행은 곧 최씨의 불행이었다.
최씨는 밤마다 인현왕후가 하루속히 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서 빌었다.
어느 날 밤 숙종은 후원을 산책하다 최씨가 기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를 어여쁘게 여겨 곁에 두었다.
곧 그녀는 아이를 잉태했다.
장희빈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최씨를 가혹하게 구박했다.
어느 날인가 숙종은 낮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후원에 있는 항아리 밑에서 나오려는 용 한 마리가 보였다.
용은 나오려다 못 나오고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숙종은 이상히 여기고 후원으로 가보았는데, 장희빈의 혹독한 매질에 최씨가 실신해 있었다.
숙종은 최씨를 구하고 장희빈을 궁에서 내쫓고 사약을 내렸다.
1694년 인현왕후가 궁으로 돌아오고, 최씨는 숙종의 둘째 아들 연희군을 낳았다.
연희군이 스물네 살 되던 1718년 그녀는 생을 마쳤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둔촌 민유중은 외직의 군현에 나간 적이 없고 1665년에 전라관찰사로 부임했다가 다음해 서울에 올라갔다.
인현왕후는 1667년에 태어나 열다섯 살에 왕비로 입궁했다가
1689년 장희빈에 의해 폐위당하고 1694년에 궁으로 돌아왔으나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평생 어머니의 미천한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하지만 1728년 태인에서 박필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경상도의 안음 현감 정희량도 박필현과 동조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영조는 어머니의 고향이라 하여 태인현은 관대하게 용서해주었으나 안음현은 아예 고을 자체를 없앴다.
그 후에도 태인에서 난이 일어났지만 번번이 각별한 보호를 받았고 역사의 풍파에서 살아남았다.
이 마을이 숙빈 최씨라는 귀한 여인을 낳고 그 음복을 두터이 받은 셈이다.
덧붙임
윗글은 지난해 정읍 일을 하면서 태인향교 정문인 만화루에 얽힌 이야기를 풀다가
최숙빈에 대해서 짤막하게 간추린 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동이'라는 이름으로 최숙빈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그간 숙종의 여인들 가운데
인현왕후와 장희빈이라는 희대의 연적을 둘러싼 드라마는 여러 차례 있었어도
그들 사이에 깍두기처럼 낀 최숙빈은 조연으로 물러나 존재감이 없는 '쩌리'였었는데,
그녀를 무대 한가운데 올려놓고 화려한 조명을 비춘다니
그야말로 한국판 '신데렐라'인 셈.
어떻게 그려질지 자못 기대된다.
참, 만화루는 "공자의 가르침으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뜻.
대개 향교 이층 누각으로 된 정문에 붙여진 이름.
만화루라는 이름을 쓴 편액을 정문에 붙이려면
그 마을에 귀한 사람이 태어났어야 했다.
태인에서는 영조의 생모인 최숙빈 이 태어났던 덕에
태인 향교 정문에 조항진이 일필휘지로 쓴 '만화루'라는 편액이 붙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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