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제가 가장 존경하옵는 강정일당의 아름다운 漢詩입니다, 가을매미 음을 듣다-聽秋蟬 作:강정일당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木迎秋氣 /만목영추기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物性을 느끼려 고요히 생각에 잠겨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홀로 林下에서 방황한다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어떠세요, [음악정원]님들 시의 느낌이 잘 전달되나요? 먼저 강정일당/姜靜一堂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죠? [[네이버 참고 자료와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에서 옮겨 정리하여 올립니다.]] 강정일당은 조선후기 "제2의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여성 실학자이자 문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셨읍니다. 먼저 그분의 행적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영조 48년인 1772년 제천에서 태어난 정일당은 진주 강씨로 강희맹의 후손이랍니다. 1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마저 기울었던 탓에 여러모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그러나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합니다.^^ 어린 나이로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갔는가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몸이 상할 정도로 애통해 하며 3년상을 치르기까지 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정일당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로 파평 윤씨인 윤광연과 결혼했습니다. 명문가의 자제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녀는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하여. 그것도 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라네요. 일단 공부를 시작하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쳐 그녀는 곧 경서에 두루 통하고 능한 시문을 구사하여 당대에 높은 문명을 떨쳤음에도 재주를 드러내기를 꺼려 이직보가 그의 시 한수를 보고 매우 칭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저술을 일체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얼마나 존경스러운가요.. 이렇듯 강정일당이 자신의 실력을 세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아내 이상으로 생각하고 학문적 동반자로 인정해준 남편의 공이 무엇보다 컷다는 군요^^ ^^;; 남존여비사상이 범접하지 못할 규범으로 인식됐던 시대에도 윤광연은 부인이 자신보다 나은 점을 인정했고 그를 십분 활용하도록 장려했던 모양입니다 ^^<=대단하지요^^ 정일당은 학문을 한 지 20여년 만에 경지에 이르고 조선시대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학자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시는 다른 여성들의 작품과 달리 대부분 성인의 도와 학문 수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일당이 이르기를 '내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야 애초 남녀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여자라도 노력한다면" 역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법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졍먈졍먈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면대해 하기보다는 편지를 써 전했는데 <=멋스럽죠^^ 남편에게 보낸 이 같은 편지 의 한 귀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정일당은 여성성을 뛰어넘어 학문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여자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리학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 후기 성리학 연구자이기보다는 성인이 되기를 지향한 여성 도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강정일당은 60년을 살다 순조 32년인 1832년에 눈을 ... 그녀가 살았을 때는 평생 가난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죽어서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 매산 홍직필이 묘지명을 쓰고 강원회가 행장을 썼으며 송치규가 비문을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 이런 호사는 그녀의 죽음을 당대의 학자들이 큰 도학자의 죽음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마 조선시대의 여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학문적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간지에 난 그녀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녀의 시가 다른 여류한시작가들과 달리 매우 도학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점을 무시하면 시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강정일당 작품의 특징입니다. 또다른 위시의 해석입니다.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한번 다시 naver 지식 in 검색으로 정리 하여 드립니다^^ 萬木迎秋氣 / 만목영추기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수많은 나무/萬木에 가을의 기운/秋氣을 맞이했다/迎와 뒤에 매미울음/蟬聲 이 석양을 흐트러 뜨렸다/亂것과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여기서 '氣'라고 하는 것은 세번째 구절의 '物性'이라는 단어와 함께 학자적 향취를 깊게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기질, 혹은 물성은 그저 기운이나, 성질 등으로 번역될 성질의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세번째 구절과 네번째 구절도 서로 조응하고 있습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가을매미 음을 듣다-聽秋蟬 作:강정일당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木迎秋氣 /만목영추기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物性을 느끼려 고요히 생각에 잠겨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홀로 林下에서 방황한다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어떠세요, [음악정원]님들 시의 느낌이 잘 전달되나요? 먼저 강정일당/姜靜一堂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죠? [[네이버 참고 자료와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에서 옮겨 정리하여 올립니다.]] 강정일당은 조선후기 "제2의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여성 실학자이자 문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셨읍니다. 먼저 그분의 행적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영조 48년인 1772년 제천에서 태어난 정일당은 진주 강씨로 강희맹의 후손이랍니다. 1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마저 기울었던 탓에 여러모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그러나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합니다.^^ 어린 나이로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갔는가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몸이 상할 정도로 애통해 하며 3년상을 치르기까지 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정일당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로 파평 윤씨인 윤광연과 결혼했습니다. 명문가의 자제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녀는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하여. 그것도 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라네요. 일단 공부를 시작하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쳐 그녀는 곧 경서에 두루 통하고 능한 시문을 구사하여 당대에 높은 문명을 떨쳤음에도 재주를 드러내기를 꺼려 이직보가 그의 시 한수를 보고 매우 칭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저술을 일체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얼마나 존경스러운가요.. 이렇듯 강정일당이 자신의 실력을 세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아내 이상으로 생각하고 학문적 동반자로 인정해준 남편의 공이 무엇보다 컷다는 군요^^ ^^;; 남존여비사상이 범접하지 못할 규범으로 인식됐던 시대에도 윤광연은 부인이 자신보다 나은 점을 인정했고 그를 십분 활용하도록 장려했던 모양입니다 ^^<=대단하지요^^ 정일당은 학문을 한 지 20여년 만에 경지에 이르고 조선시대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학자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시는 다른 여성들의 작품과 달리 대부분 성인의 도와 학문 수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일당이 이르기를 '내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야 애초 남녀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여자라도 노력한다면" 역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법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졍먈졍먈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면대해 하기보다는 편지를 써 전했는데 <=멋스럽죠^^ 남편에게 보낸 이 같은 편지 의 한 귀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정일당은 여성성을 뛰어넘어 학문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여자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리학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 후기 성리학 연구자이기보다는 성인이 되기를 지향한 여성 도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강정일당은 60년을 살다 순조 32년인 1832년에 눈을 ... 그녀가 살았을 때는 평생 가난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죽어서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 매산 홍직필이 묘지명을 쓰고 강원회가 행장을 썼으며 송치규가 비문을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 이런 호사는 그녀의 죽음을 당대의 학자들이 큰 도학자의 죽음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마 조선시대의 여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학문적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간지에 난 그녀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녀의 시가 다른 여류한시작가들과 달리 매우 도학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점을 무시하면 시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강정일당 작품의 특징입니다. 또다른 위시의 해석입니다.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한번 다시 naver 지식 in 검색으로 정리 하여 드립니다^^ 萬木迎秋氣 / 만목영추기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수많은 나무/萬木에 가을의 기운/秋氣을 맞이했다/迎와 뒤에 매미울음/蟬聲 이 석양을 흐트러 뜨렸다/亂것과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여기서 '氣'라고 하는 것은 세번째 구절의 '物性'이라는 단어와 함께 학자적 향취를 깊게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기질, 혹은 물성은 그저 기운이나, 성질 등으로 번역될 성질의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세번째 구절과 네번째 구절도 서로 조응하고 있습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어떠세요, [음악정원]님들 시의 느낌이 잘 전달되나요? 먼저 강정일당/姜靜一堂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죠? [[네이버 참고 자료와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에서 옮겨 정리하여 올립니다.]] 강정일당은 조선후기 "제2의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여성 실학자이자 문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셨읍니다. 먼저 그분의 행적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영조 48년인 1772년 제천에서 태어난 정일당은 진주 강씨로 강희맹의 후손이랍니다. 1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마저 기울었던 탓에 여러모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그러나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합니다.^^ 어린 나이로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갔는가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몸이 상할 정도로 애통해 하며 3년상을 치르기까지 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정일당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로 파평 윤씨인 윤광연과 결혼했습니다. 명문가의 자제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녀는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하여. 그것도 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라네요. 일단 공부를 시작하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쳐 그녀는 곧 경서에 두루 통하고 능한 시문을 구사하여 당대에 높은 문명을 떨쳤음에도 재주를 드러내기를 꺼려 이직보가 그의 시 한수를 보고 매우 칭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저술을 일체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얼마나 존경스러운가요.. 이렇듯 강정일당이 자신의 실력을 세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아내 이상으로 생각하고 학문적 동반자로 인정해준 남편의 공이 무엇보다 컷다는 군요^^ ^^;; 남존여비사상이 범접하지 못할 규범으로 인식됐던 시대에도 윤광연은 부인이 자신보다 나은 점을 인정했고 그를 십분 활용하도록 장려했던 모양입니다 ^^<=대단하지요^^ 정일당은 학문을 한 지 20여년 만에 경지에 이르고 조선시대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학자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시는 다른 여성들의 작품과 달리 대부분 성인의 도와 학문 수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일당이 이르기를 '내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야 애초 남녀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여자라도 노력한다면" 역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법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졍먈졍먈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면대해 하기보다는 편지를 써 전했는데 <=멋스럽죠^^ 남편에게 보낸 이 같은 편지 의 한 귀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정일당은 여성성을 뛰어넘어 학문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여자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리학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 후기 성리학 연구자이기보다는 성인이 되기를 지향한 여성 도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강정일당은 60년을 살다 순조 32년인 1832년에 눈을 ... 그녀가 살았을 때는 평생 가난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죽어서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 매산 홍직필이 묘지명을 쓰고 강원회가 행장을 썼으며 송치규가 비문을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 이런 호사는 그녀의 죽음을 당대의 학자들이 큰 도학자의 죽음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마 조선시대의 여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학문적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간지에 난 그녀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녀의 시가 다른 여류한시작가들과 달리 매우 도학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점을 무시하면 시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강정일당 작품의 특징입니다. 또다른 위시의 해석입니다.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쓸쓸한 숲 속을 혼자 헤맸네" 한번 다시 naver 지식 in 검색으로 정리 하여 드립니다^^ 萬木迎秋氣 / 만목영추기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수많은 나무/萬木에 가을의 기운/秋氣을 맞이했다/迎와 뒤에 매미울음/蟬聲 이 석양을 흐트러 뜨렸다/亂것과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여기서 '氣'라고 하는 것은 세번째 구절의 '物性'이라는 단어와 함께 학자적 향취를 깊게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기질, 혹은 물성은 그저 기운이나, 성질 등으로 번역될 성질의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세번째 구절과 네번째 구절도 서로 조응하고 있습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萬木迎秋氣 / 만목영추기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수많은 나무/萬木에 가을의 기운/秋氣을 맞이했다/迎와 뒤에 매미울음/蟬聲 이 석양을 흐트러 뜨렸다/亂것과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여기서 '氣'라고 하는 것은 세번째 구절의 '物性'이라는 단어와 함께 학자적 향취를 깊게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기질, 혹은 물성은 그저 기운이나, 성질 등으로 번역될 성질의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세번째 구절과 네번째 구절도 서로 조응하고 있습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수많은 나무/萬木에 가을의 기운/秋氣을 맞이했다/迎와 뒤에 매미울음/蟬聲 이 석양을 흐트러 뜨렸다/亂것과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여기서 '氣'라고 하는 것은 세번째 구절의 '物性'이라는 단어와 함께 학자적 향취를 깊게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기질, 혹은 물성은 그저 기운이나, 성질 등으로 번역될 성질의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세번째 구절과 네번째 구절도 서로 조응하고 있습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物性을 느끼려/感物性 고요히 생각에 잠겨/沈吟 홀로/獨 林下에서 방황한다/彷徨. ^^ ^^;;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사실 임하/林下라는 것은 숲 아래나, 숲 속이라는 것보다는 벼슬이나 관작을 버리고 유유히 즐기는 선비의 거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학자적 비판적 시각을 의미하죠. 그럼 위의 1, 2구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나무마다 매미들이 가득히 달라붙어 노래를 하니 석양의 노을마져 일그러지네 매미들의 시끄러움을 느끼려 홀로 생각에 잠기노니 홀로 그 울음을 탄식하노라"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
이제 뭔가 은밀한 비유와 상징들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채셨는지요. 가을이라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시끄럽게 울어댑니다.(제가 다니는 청계산의 풍경과 꼭 같슴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장 고즈넉할 시간이어야 할 땅거미질 무렵의 붉은 노을조차 이지러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일당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객관의 대상(물성)으로 치환시키고 고요히 대상을 관조합니다. (부처님 법 아는이 세상일에 물들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그 매미들의 범주와 동떨어진 자신의 거처(임하)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떠신가요 음악정원님들. 저는 탄식이라 말하고 싶지만 정일당은 그 감정을 끝내 방황이라는 단어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당대의 남여존비의 사회 속에서도 남성유학자들에게서조차 칭송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시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가 있지요. 매미라는 상징을 통해 은유하는 작자의 사회적 시선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지요. 아마 여류가객으로선 독보적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전문 옮겼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영춘" 의 가람기획 [강정일당]과 네이버(시인학교)에서 옮겨 두서없이 정리하여 드렸습니다.]] 말주변은 어리버리~하구 글주변 버벅거리기 일수인지라 제대로 옮겼는지 연결을 제대로 했는지..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곡해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읽고 느껴 옛사람의 지혜를 빌어야 하는데 좋은 시간이고 좋은 마음이야 하는데 무슨 겉멋에 이러는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음악정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길 축원 하오며 oom" 合掌"꾸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