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심양瀋陽)은 랴오닝성(요녕성遼寧省)의 성도이며 동북 삼성, 만주벌판의 중심도시다.
만주족은 만주어로 '무크덴'이라 부르며 칠천년의 역사도시의 자긍심이 높다.
선양은 중국 위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에는 고구려에 속해 있었고
장춘, 하얼빈과 더불어 한민족 고구려와 발해의 중심도시였다.
원래는 고조선의 활동무대였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심양을 발판으로 대륙을 정복했다.
심양을 장악한 몽골족은 원나라를 세워 중원을 재패하고 유럽을 손아귀에 넣어
명실공히 세상을 평정했다. 징기스칸의 이름으로,
심양을 틀어 쥔 고조선(한민족)은 왜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했는가,
고구려와 발해는 무슨일로 요동에서 멈춰서
황하 강물에 배 띄우지 못했고 대륙의 가슴팍에 삼족오 깃발을 휘날리지 못했는가,
정묘호란 후 인조의 세아들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한반도 조선왕조 수치의 역사도 함께한 선양(심양)이고 또 무크덴(봉천)이다.
결사항전을 주장해 청나라에 잡혀왔던 홍익한, 오달제, 윤집은 깨끗이 참수당했다.
17세기 초, 명나라에 승리한 만주족의 누루하치는 후금이라 개국하고
심양을 봉천(奉天)이라 개칭하고 도읍으로 삼았다.
그 후 청나라로 이름을 고친 후금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화을 접수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겨가지만 봉천은 봉천부라 칭하고 제2의 수도 대접을 받았고
현재에도 청의 황궁인 선양고궁이 남아 있다.
청조 멸망 후에는 선양 군벌의 거점이 되었고, 이름도 심양으로 개명했지만
만주사변이 일어나 일본의 관동군에 점령되면서 봉천이라 또 이름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만주사변을 '918 사변'이라 부르며 9월 18일을 국치일로 생각한다.
일제 식민지 한반도의 독립 지사들이 망명하여 활동했던 시기에는 '만주 봉천'으로 더 알려져있다.
이차세계대전, 일본의 패전 후에는 심양이라는 이름으로 회복하였다.
한족의 입장에선 봉천이라는 지명은 만주족인 청나라의 도읍이었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만주사변으로 강점되었던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수도 이름인 봉천을
심양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이름인 심양과 봉천(선양, 펑톈 )은 역사의 전환기, 격동기의 정치적 수사다.
명나라가 들어선 이후로 '심양'이라고 불려오다가 만주족의 청나라가 '봉천'이라고 개명한 후
일제의 만주국 시절에도 봉천이라고 불렀기에 외세가 개명한 이름
봉천이란 글자에 자못 감정적인 심사가 강한 중국인들이다.
한족의 입장에선 봉천이라는 이름은 두 번이나 외세에 의하여 개명되었던 지명이고
만주족의 처지에선 사라져버린 종족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인 '무크덴(봉천)'이라
중국 여행 중에 "한족을 만나면 선양, 만주족을 만나면 평톈"이라 부르는 것도
괜찮은 처세이리라. 그들도 고구려 역사를 훔치려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여간 북방계와 남방계의 격전지 요동반도를 포함한 요녕성의 성도
심양(봉천)의 주인은 남방계인 한족인 것은 현실이다.
북방계를 대표하는 만주인, 몽골인, 조선인들은 분발 할 일이다.
옛 봉천은 현재의 지역 개편을 통해 랴오닝 성과 지린 성으로 개편, 흡수되었다.
오늘자(2009. 11.6)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대한민국 제 오, 육, 칠, 팔, 구대 대통령
박정희씨 친일행적의 백미인 혈서사건의 본고장, 심양이고 봉천이다.
보라, 그이의 비장함을.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
그러니까 박정희씨가 혈서로 입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청(만주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에게
금장시계까지 받아 후일 일본사관학교에 편입하게되는 '만주군관학교의 심양'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군의 삼부중 하나인 정의부가 설치되어
항일투쟁 '대한 독립군의 본거지인 만주 봉천'인 것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장수 대통령으로 박정희씨의 개인적 공과는 별개로 치고서 말이다.
대단한 대통령이든 불행한 대통령이든 개인사는 차치해 두고서 말이다.
한반도에서 평범한 대통령, 행복한 대통령, 시민대통령의 출현이 언제나 가능 할지, 애석한 일이다.
중원으로의 진출, 중화를 장악해 베이징으로 천도하기까지
누루하치에서 청태종까지 도읍한 실제로 보는 심양의 청나라 황궁은
생각보다 규모도 컸고 세련된 건출물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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