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비와 조조가 정말 한판 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5

도심안 2009. 10. 4. 16:07
유비와 조조가 정말 한판 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5
| 04.12.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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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
유비와 조조가 정말 한판 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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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우선 질문 내용이  유비 대 조조의 일기토를 말씀하시는지
아니면 군대 vs 군대인지..
 
삼국지는 역사를 바탕으로한 '소설' 입니다
 
나관중 씨가 나중에 정리한건데요.
 
내용이 '한' 을 중심으로 되있어서 쫌..
 
소설에 만약 싸우장면이 있었으면
 
유비가 이겼을 거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조조가 이길듯 해요.
 
소설 내용에 보면  유비는 덕이 많고 무예는 그다지 뛰어나지않지만
 
조조는 장수로 쳐도 으뜸이죠......
(1:1 장수전 을 기준으로)
 
하지만 유비군과 조조군하고 진짜 정마로 한판 붙어쓰면 글쎄요...
 
둘다 막상막하일듯..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우선 질문 내용이  유비 대 조조의 일기토를 말씀하시는지

아니면 군대 vs 군대인지..
 
삼국지는 역사를 바탕으로한 '소설' 입니다
 
나관중 씨가 나중에 정리한건데요.
 
내용이 '한' 을 중심으로 되있어서 쫌..
 
소설에 만약 싸우장면이 있었으면
 
유비가 이겼을 거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조조가 이길듯 해요.
 
소설 내용에 보면  유비는 덕이 많고 무예는 그다지 뛰어나지않지만
 
조조는 장수로 쳐도 으뜸이죠......
(1:1 장수전 을 기준으로)
 
하지만 유비군과 조조군하고 진짜 정마로 한판 붙어쓰면 글쎄요...
 
둘다 막상막하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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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조조는  산동 명문가의 자재로  태어나  어려서  출사하여  동탁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고향인  산동으로  낙향하엿다  한편유비도  유년은   불우햇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관우와 장비 얻음으로 써  장수로 명함을 내보엿으니  출발선상은 비슷햇다  그러나 조조는  인재를  끌어모으고  군사훈련을  충실히 시켜  산동지방을  장악하게되어  유명 호족으로 등장 하엿으나  유비는  화북의 실세 공손찬에  빌붙어  일개 관리로  만족하엿다  조조는  실세로서  동탁이 제거된뒤  혼란한 틉을타  한왕조를  장악하게되엇다  그무렵  유비는   공손찬 그늘에 벋어나 서주를  상속 받게 되엇다   한편   여포는 한왕실에서  쫏겨나  유랑하다  유비그늘로 들어오게  되엇고   유비가  원정나간 틈을 이용하여   여포가  서주를  차지하게될 만큼 유비는 모든것이 엉성하엿다  그후  형주로 이동하여   친척 유표 밑으로  들어가 일을 봐주엇는데  유표가  갑자기 죽자  반란을 일으켜  형주를 차지하엿다   그후 조조의  100만대군이   유비를 공격해오자  군사 제갈공영을   손권한태 볼모로  보내고  오나라의 구원병을 받아  조조군을 막아내게되엇다   그리고  오나라군대가 조족의 군대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쇠약한틈을 이용해 형주 주변을  점령하게되엇다
 그후  유비는  친척 유장이   티벳지역에서    자주  유목민족이 침략해오자  구원을 요청하엿다   그래서 10만 대병을 이끌고  촉한지역으로   들어가게되엇고   유목민족을 막기위해  촉의 군사지도를  입수하자   유장을  죽이고  촉의 왕이되엇다  이래서  삼국지가 시작되엇는데 유비는 친척들  땅을 뒤통수  쳐서 빼앗아다  그리고는 양보햇다고  거짓말을 햇다  희대의  사기꾼이다  그런데
조조는  스스로 군대를 일으켜   한왕조를 구해ㅅ으나   주변의  무립의 고수를 막는 과정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위해   한왕조를  위나라로 교채하고   적법절차에의해  와위에 올랏다  유비나  손권은  사기를 쳣다  조조는 후한의  황제로부터  황위를 게승한 반면  유비는  전한의  옥쇠를 찿앗다는 명분으로  자기의 정통성을 강조하엿고  손권은    신한 의  천부경의 소유로  왕위에 올랏다
 
 
삼황오제시대[천황 지황  태황......]------ 한국은 환국
하나라------- 한국은 웅국 배달국
은나라--------한국은 고조선 시작
주나라------- 기자조선 시작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초한
 한나라는  [
전한 /유방 부터  신한까지-----한국은 고조선과 부여/그후 동이시작
 신한/왕의외척 왕망이  잠시왕을함
후한/ 신한의 왕망을 몰아내고   유씨가  복위
위/유씨를 몰아내고   조조가 왕이됨----------- 삼국시대[위촉오등  여러세력이 잇음]/한국은 동이[부족국가]
 진/조조의  후선을 몰아내고  사씨가 와이됨-- 한국은 동이[부족국가 
 남북조/한족[북조의일부는  북방 유목민 ]----한국은 고구려와삼국시대
수당 /한족[북방에는 고구려와 발해]------- 삼국시대와  남북조 시대
송/ 한족[북방에는 요와 금] --고려
원 [몽고족국가]------고려
명 나라[한족국가]------조선
청 [여진족국가]-------조선
중화민국/한족국가[ 일제의 침략과 군벌  공산당  만주국 잔존]---- 한국은독립운동시대
중화인민공확국/ 통일중국다민족국가[ 대만에 중화민국 ]------ 남북분단시대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조조는  산동 명문가의 자재로  태어나  어려서  출사하여  동탁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고향인  산동으로  낙향하엿다  한편유비도  유년은   불우햇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관우와 장비 얻음으로 써  장수로 명함을 내보엿으니  출발선상은 비슷햇다  그러나 조조는  인재를  끌어모으고  군사훈련을  충실히 시켜  산동지방을  장악하게되어  유명 호족으로 등장 하엿으나  유비는  화북의 실세 공손찬에  빌붙어  일개 관리로  만족하엿다  조조는  실세로서  동탁이 제거된뒤  혼란한 틉을타  한왕조를  장악하게되엇다  그무렵  유비는   공손찬 그늘에 벋어나 서주를  상속 받게 되엇다   한편   여포는 한왕실에서  쫏겨나  유랑하다  유비그늘로 들어오게  되엇고   유비가  원정나간 틈을 이용하여   여포가  서주를  차지하게될 만큼 유비는 모든것이 엉성하엿다  그후  형주로 이동하여   친척 유표 밑으로  들어가 일을 봐주엇는데  유표가  갑자기 죽자  반란을 일으켜  형주를 차지하엿다   그후 조조의  100만대군이   유비를 공격해오자  군사 제갈공영을   손권한태 볼모로  보내고  오나라의 구원병을 받아  조조군을 막아내게되엇다   그리고  오나라군대가 조족의 군대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쇠약한틈을 이용해 형주 주변을  점령하게되엇다

 그후  유비는  친척 유장이   티벳지역에서    자주  유목민족이 침략해오자  구원을 요청하엿다   그래서 10만 대병을 이끌고  촉한지역으로   들어가게되엇고   유목민족을 막기위해  촉의 군사지도를  입수하자   유장을  죽이고  촉의 왕이되엇다  이래서  삼국지가 시작되엇는데 유비는 친척들  땅을 뒤통수  쳐서 빼앗아다  그리고는 양보햇다고  거짓말을 햇다  희대의  사기꾼이다  그런데
조조는  스스로 군대를 일으켜   한왕조를 구해ㅅ으나   주변의  무립의 고수를 막는 과정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위해   한왕조를  위나라로 교채하고   적법절차에의해  와위에 올랏다  유비나  손권은  사기를 쳣다  조조는 후한의  황제로부터  황위를 게승한 반면  유비는  전한의  옥쇠를 찿앗다는 명분으로  자기의 정통성을 강조하엿고  손권은    신한 의  천부경의 소유로  왕위에 올랏다
 
 
삼황오제시대[천황 지황  태황......]------ 한국은 환국
하나라------- 한국은 웅국 배달국
은나라--------한국은 고조선 시작
주나라------- 기자조선 시작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초한
 한나라는  [
전한 /유방 부터  신한까지-----한국은 고조선과 부여/그후 동이시작
 신한/왕의외척 왕망이  잠시왕을함
후한/ 신한의 왕망을 몰아내고   유씨가  복위
위/유씨를 몰아내고   조조가 왕이됨----------- 삼국시대[위촉오등  여러세력이 잇음]/한국은 동이[부족국가]
 진/조조의  후선을 몰아내고  사씨가 와이됨-- 한국은 동이[부족국가 
 남북조/한족[북조의일부는  북방 유목민 ]----한국은 고구려와삼국시대
수당 /한족[북방에는 고구려와 발해]------- 삼국시대와  남북조 시대
송/ 한족[북방에는 요와 금] --고려
원 [몽고족국가]------고려
명 나라[한족국가]------조선
청 [여진족국가]-------조선
중화민국/한족국가[ 일제의 침략과 군벌  공산당  만주국 잔존]---- 한국은독립운동시대
중화인민공확국/ 통일중국다민족국가[ 대만에 중화민국 ]------ 남북분단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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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삼국지는 한에 중국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중국인들의 의식구조가 반영돼 유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를 해 놨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조는 단지 간사하고 인품도 떨어지는 이로 묘사해 놨구요.
 
그러나 조조는 군사적인 재능이나 경제적인 능력 면에서 유비에 앞섭니다.
조조의 우수한 점은 둔전제의 실시에 있습니다.
둔전제는 군사제도와 농업정책을 접목시킨 것입니다.
즉, 병사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는 주둔지에서 농경을 담당해 기본적인 군량미를 조달하게 함으로써 재정 부담을 완화한 것입니다.
 
당시 동탁 등이 군율에 문제가 있어 약탈병의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많은데요, 이것은 기본적으로 병참체계가 미비한 당시의 사정 때문에 군량미 조달이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러나 둔전제의 실시로 인해 조조의 군사는 약탈병이 되지 않을 수 있어 조조의 세력권 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 국력의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돼 여기에서 국력이 판가름나는데 둔전제의 실시로 군량미 조달에 막대한 돈을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위나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했습니다.
이 제도가 우수하다는 것은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대까지도 이 제도가 계승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조가 세력권을 형성한 곳은 오늘날에도 중국 내에서 경제적으로 앞선 하남, 하북 등 중국의 중심 지방입니다.
반면 유비는 사천성에 갇혀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죠.
그 당시도 마찬가지고 이후 당대까지도 사천성은 중국의 변방으로서 수성에는 유리하지만 이 곳에서 세력을 떨쳐 일어나 중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죠.
 
명분을 떠나서 이러한 실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유비보다는 조조가 훨씬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고 판단돼 조조가 이겼을 거라 생각되네요.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삼국지는 한에 중국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중국인들의 의식구조가 반영돼 유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를 해 놨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조는 단지 간사하고 인품도 떨어지는 이로 묘사해 놨구요.
 
그러나 조조는 군사적인 재능이나 경제적인 능력 면에서 유비에 앞섭니다.
조조의 우수한 점은 둔전제의 실시에 있습니다.
둔전제는 군사제도와 농업정책을 접목시킨 것입니다.
즉, 병사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는 주둔지에서 농경을 담당해 기본적인 군량미를 조달하게 함으로써 재정 부담을 완화한 것입니다.
 
당시 동탁 등이 군율에 문제가 있어 약탈병의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많은데요, 이것은 기본적으로 병참체계가 미비한 당시의 사정 때문에 군량미 조달이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러나 둔전제의 실시로 인해 조조의 군사는 약탈병이 되지 않을 수 있어 조조의 세력권 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 국력의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돼 여기에서 국력이 판가름나는데 둔전제의 실시로 군량미 조달에 막대한 돈을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위나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했습니다.
이 제도가 우수하다는 것은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대까지도 이 제도가 계승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조가 세력권을 형성한 곳은 오늘날에도 중국 내에서 경제적으로 앞선 하남, 하북 등 중국의 중심 지방입니다.
반면 유비는 사천성에 갇혀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죠.
그 당시도 마찬가지고 이후 당대까지도 사천성은 중국의 변방으로서 수성에는 유리하지만 이 곳에서 세력을 떨쳐 일어나 중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죠.
 
명분을 떠나서 이러한 실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유비보다는 조조가 훨씬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고 판단돼 조조가 이겼을 거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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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조조의 위나라는 중원지역 (지금의 양자강 이북 지역,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한 평야 지대)에 자리한 세력이고, 유비의 촉한은 익주(지금의 사천성)에 자리한 세력입니다.
 
군사력 및 경제력, 인구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위가 오, 촉보다 월등했던건 사실입니다.
 
오나 촉이 몇십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요인은, 촉은 먼저 위에 전쟁을 걸었다는 점, 오나라는 장강(지금의 양쯔강)을 방어선으로 그나마 위에 쉽게 멸망하지 않은 겁니다.
 
위나라가 쉽게 촉과 오를 멸망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내분입니다.
 
소설과는 동떨어진 얘긴데, 조조는 당시 능력위주의 인재등용을 하였습니다. 오와 촉이 각각 자신들의 지역 유지들을 지배층 및 관료로 삼은 반면, 위는 주로 인물의 재능을 보고 관료로 임용하였습니다. 이에는 조조의 출신 배경도 한 몫을 하죠.
 
조조가 위왕이 되면서 부터, 위나라는 건국성씨인 조씨와 사마씨의 권력다툼의 장이 됩니다.
 
이러한 알력은 위의 대장군 조상과 사마의 사이에서 고평릉 사변이라는 변란으로 조상일파가 사마씨에게 숙청을 당하면서 사마씨가 정권을 잡게 되어 끝나고, 사마씨가 정권을 잡은 위는 내분을 끝내고 오와 촉 중 먼저 오랜 북벌과 정치적 문란으로 어지러운 촉을 먼저 치게되고, 약 20년후 사마씨가 위를 찬탈하고 진을 세운후 결국 오도 멸망시키게 됩니다.
 
한마디로 단정짓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위의 내분이 그런 세력싸움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고 봅니다.
 
결국 위가 이기겠지요... 결국 정치적 안정과 국력의 문제이지만요..
 
유비가 세운 촉한은 그냥 지방정권일 뿐입니다. 소설상에서는 어떠한 정통성을 갖는것처럼 보여 그 세력이 대단해 보이지만, 위의 국력에 비하면 형편없는, 멸망이 예정된 세력이었습니다.
그나마 손권의 오가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춘 세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또한 강남세력과 결탁하여 이루어진 세력으로 지방정권으로만 만족해야 했을뿐 중국통일은 당연히 어려웠습니다.
 
오와 촉은 시대를 탄 지방정권일 뿐이며, 이는 소설속에서 그 세력이 매우 부풀려 커진 것입니다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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