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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새 앨범 발매한 가수 이은하 싱글 예찬

도심안 2009. 8. 15. 09:31

15년 만에 새 앨범 발매한 가수 이은하 싱글 예찬

가수 이은하가 15년 만에 새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 요즘 한참 인기 있는 장르인 트로트도 아니고, 기존에 이은하가 해왔던 스타일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다. 세월이 흘러도 열정적인 모습 그대로인 그녀. 멋지고 당당한 싱글 이은하를 만났다.


평생 한길, 가수의 이름으로
오랜 기억 속 이은하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무대를 압도하던 카리스마,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맛깔 나는 목소리, 가슴 먹먹하게 했던 울림. 그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 한켠에는 그녀의 노래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을까.

“사실 20대들은 이은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30대들이 ‘아, 이은하’라고 기억해주시면 고맙고요. 나를 기억해주는 후배들도 고마워요. 조성모, JK김동욱 등 제 노래를 기억하고 리메이크한 후배들이 있기에 아직까지도 내 노래가 불려지거든요. 젊은 친구들은 제 이름은 몰라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란 노래는 알잖아요. 기분 좋아요.”

이은하는 10대 가수왕을 무려 세 번이나 할 정도로 대스타였다. 히트곡도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가요계는 빠르게 변했으며 새로운 스타를 끊임없이 배출했다. 그렇게 이은하는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나 했다. 그러나 그녀는 노래를 한 번도 그만두거나 쉬지 않았다. 예전처럼 TV에 자주 나오지 않았지만 매년 디너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만나왔고, ‘불량주부’, ‘인어아가씨’ 등 드라마나 영화 OST에 참여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7~8년 전에는 신인가수들을 키워보려고 했어요. 매니저 입장이 된 거죠. 그들이 방송이 있으면 따라다니곤 했죠. 그런데 그 조바심이라는 것이 말도 못해요. 차라리 내가 대중 앞에 서고, 노래하는 게 낫겠더군요. 특히 생방송에서는 더 하죠. 말 한마디라도 잘못할까 봐 속은 타들어가고요. 잠깐 그 일을 하면서 매니저들의 고충을 알겠더라고요. 그 입장 되보지 않으면 정말 몰라요.”

그러나 신인가수를 양성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은하는 일본 진출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공연도 몇 번 해봤지만, 젊은 한류스타들과 달리 30, 40대 가수가 설 수 있는 자리나 기회도 흔치 않았다. 시련에 부딪쳤지만 그녀는 노래를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오직 노래뿐이었다.

“열두 살에 데뷔해서 노래하고 산 날이 더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보통 연예인들이 나이 들면 부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노래만 했어요.”

가수로 살아온 날이 더 많았던 그녀. 그렇기에 그녀에게 팬은 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제가 해마다 디너 콘서트를 하면 저를 정말 좋아했던 분들이 찾아오세요. 제가 활동하지 않더라도, 제가 섰던 무대의 자료가 있으면 그걸 스크랩해서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계시죠. 그분들이 제 산증인들 같아요. 무척 소중하죠. 그분 추억 속에 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건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소중한 기억이죠.”


새로운 시도가 담긴 15년 만의 앨범
이은하가 무려 15년 만에 새 앨범 「컴백」으로 돌아왔다. 그녀와 함께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가요계에 컴백을 선언하고 앨범을 발표했지만, 이은하의 컴백은 이보다 더 특별하다.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3, 4년 전부터 앨범을 발표하고 싶었는데 부담감이 무척 컸어요. 제 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 어려웠죠. 사실 나름 첨단을 걷는 음악을 많이 해봤는데, 신인은 가능하지만 기성가수에게는 허용이 안 되는 면이 있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한풀 접고 보는 것 같아요. 오래된 사람이라고요. 제가 컴백한다고 했을 때, ‘트로트를 하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트로트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제가 처음 시작한 장르가 트로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이은하가 준비한 음악은 어떤 것일까.
“어떤 장르로 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유럽을 가게 되었죠. 그곳에서 ‘트랜스’라는 음악을 접하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홍대에서 하는 젊은이들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트랜스는 음악을 진정으로 아는,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음악이더라고요. 보이 조지 같이 옛날 가수들이 그런 음악을 하고 있어요. 일렉트로닉 음악이 리듬을 많이 쪼개잖아요. 리듬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 바로 연륜이거든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생각했죠.”

이은하에게 음악은 아직 시도하고,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은 영역이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젊은 음악가를 뛰어넘는다.

“적어도 오래된 가수가 선배로서 다시 가요계에 나올 때 기존의 음악을 좇기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죠. 욕심이 많은 거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바로 R&V다.
“리듬 앤 블루스를 R&B라고 하잖아요. 리듬 앤 보이스라고 해서 R&V를 만들었어요. 리듬 위에 내 목소리를 깔면 리듬 앤 보이스죠. 나름 과감한 시도예요. 저는 지금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 ‘음악이 내 남편이고 자식’
이제 40대 중반인 이은하는 아직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그녀에게는 음악이 남편이고, 자식이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동시에 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 낳고 사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집에만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것도 있잖아요.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남자친구 있어요?’ ‘왜 결혼 안 해요?’예요. 그런데 정말 인연은 내가 잡는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노래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아직은 자유롭게 노래하는 것이 더 좋다는 그녀. 그러나 언제 어디서 인연이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는 자유로운 싱글 생활이 행복하다.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싱글이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신인가수와 신인 탤런트를 키우고 있는데, 노래하랴, 그 친구들 돌보랴 한가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어디든 항상 다섯 명 이상 함께 다녀요. 먹으러 가고, 놀러 갈 때는 항상 함께하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아요.”

그녀가 싱글이라 외로울 때는 딱 한 번. 식구들이 모이는 명절 때다.
“부모님이 서울에 사시니까 명절이면 아침에 가서 뵙고 오는 게 다예요. 명절 때는 유난히 만날 사람도 없잖아요. 그래서 명절이 되면 아예 외국으로 나가는 편이에요. 골프 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기는 좋아요. 골프는 많이 걷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고요. 여러모로 좋은 취미인 것 같아요.”

그녀에게 의외의 취미가 있었다. 뜨개질이나 바느질 등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죠. 뜨개질을 하거나 청바지를 잘라서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보거나 하는 일이요. 특히 뜨개질은 가을부터 목도리를 뜨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어요. 그러면 돈도 적게 들면서 친구들이 정말 좋아하는 선물이 되더라고요.”

그녀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물었다. 노래가 전부인 그녀에게 행복은 ‘노래’나 ‘무대’와 같은 단어였다.
“노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죠. 지난 3개월 동안 녹음을 하면서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는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무대에 서서 관객이 호응할 때도 마찬가지죠. 건강하게, 노래하면서 무대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