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원로 목사의 자결, 장로 정권의 대결

도심안 2009. 6. 7. 22:01

원로 목사의 자결, 장로 정권의 대결

시사비평 2009/06/07 08:14 손석춘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위협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고, 우리는 방어 수위를 높여가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를 늘 주장하던 북한이 동족인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이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의 ‘대결주의’가 물씬 묻어난다. 국민 대다수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진보세력마저 남북관계의 전개과정에서 한 발 물러서있던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보라. 현충일 기념식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연합 항공작전지휘통제부를 찾았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16년 만의 ‘방문’에는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도 동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협력 잘하는 게 전쟁 억지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댔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 뒤 남북공동선언마저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으며 북을 자극하고 ‘한미동맹’만 부르짖은 게 오늘의 상황을 빚은 가장 큰 요인인 데도 그의 진단과 전망은 정반대다.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이 ‘대결’을 부르대던 바로 그 날, 통일운동을 벌여온 강희남 목사가 ‘자결’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초대의장을 지낸 강희남 목사는 전북 전주의 자택에서 목을 매며 유서를 남겼다.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고 호소했다.

강 목사는 이미 5월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붓으로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라고 썼다.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데 맞서 목숨을 던지겠다는 결기였다.

그래서다. 참담한 마음으로 향을 피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어두운 아침’에 쓴다. 대결주의로 치닫는 남북관계에 통일운동을 벌여온 고인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고인과 함께 통일운동을 해 온 범민련 관계자들을 이명박 정권은 이미 감옥에 가뒀다. 고인의 마지막은 얼마나 스산했을까.

‘민족의 제단’에 목숨 던진 강희남 목사

물론, 나는 통일운동에서도 노선 차이는 있고 그 차이는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대결주의로 치닫는 저 무모한 정권 앞에서는 손을 잡아야 옳지 않은가. 진보세력에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이라는 ‘공통분모’를 늘 강조해온 까닭이다. 강 목사가 목숨을 끊은 날,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을 다시 새겨보자.
“북한의 위협으로 남북긴장이 고조될수록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 하나가 돼야 합니다. 튼튼한 안보를 위해서는 빈틈없는 국방태세도 매우 중요하지만 내부의 단합과 화합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떤가. 군부독재의 수법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남북 대결주의로 긴장을 조성하고, 그 긴장을 빌미로 ‘내부 단합과 화합’을 강조한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이라는 말도 똑같다. 과연 북이 지금 남침 의지라도 있단 말인가?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 앞에서, 과연 그게 대통령이 할 말인가?

국민 내부를 찢어놓을 대로 찢어놓고, 남북관계도 파탄을 내놓고, 언죽번죽 “화합”을 들먹이는 장로 대통령에게 원로 목사의 자결은 어떻게 다가올까? 과연 그가 ‘회개’할 수 있을까? 아니 성찰이라도 할 수 있을까? 고인의 원혼 앞에서 민주시민과 나누고 싶은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