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윤씨의 한을 유자광이 풀어준다
한명회는 생명의 은인 유자광을 서거정과 함께 꾸며서 죽이려했다
서거정은 동서간인 남이장군의 원수 유자광을 모함하였다
연산군때에 문서가 발견되어 부관참시 되고 페비운씨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유자광은 군사 음악의 선구자이지만 남이의 동서친족인 서거정 남곤의 꾸밈으로 민족 최고악인으로 지금도 교육되고 있다
한명회(韓明澮, 1415년 ~ 1487년)는 수양대군의 모사로 활약하였으며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양대군의 즉위에 큰 공을 세웠다. 세조의 신임을 받아 지위가 영위정까지 오르고, 세조의 며느리 덕종왕비(인수대비) 까지 누이 혼인하여 또 딸 둘이 각각 예종(장순왕후)와 성종(공혜왕후)의 왕비가 되는 등의 영광을 누렸으며 고려시대 김치향, 이자겸 같은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덕종 예종이 일찍 죽고 어린 성종이 왕이되어 성종왕비(한명회 딸)로 권력을 이어서 행세하려하였으나 성종왕비(공에왕후)가 아들도 없이 죽었다
그러나 왕자 연산군 생모윤씨를 죽이고 어린 연산군을 한씨세력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종의 폐비 윤씨는 쉽게 넘어가는 인물이 아니여서 반대세력 일등공신 유자광을 동래로 유배시키고 페비윤씨를 사약 먹여 죽이라고 인수대비의 혹독한 압력으로 성종은 다급하여 유자광을 유배에서 풀려고도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페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처럼 페비윤씨를 죽이자 안심한 인수대비는 수렴청정(섭정;정치간섭)을 풀고 성종이 섭정없이 정치를 시작하고 유자광도 유배에서 풀려난다
유자광은 끝까지 세조임금을 하늘같이 아는 유자광인데 유자광이 말하기를 "한명회가 진시황제 사후에 왕자를 죽인 조고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을 “노산군(단종)을 죽인 세조”라고 바꾸어 비유하여 한명회 세력이 꾸며서 임사홍 유자광 세력을 모조리 유배시켰다
이 기간에 유자광의 친동생 둘이 이상하게도 죽었다
성종이 유자광을 석방하려도 거대한 한명회 세력들이 떼로 나서서 반대하였다
성종은 강하게 명하여 유자광이 석방되었고 유자광은 위험한 벼슬을 포기하였고 노모를 모시러 낙향한다고 사퇴하려 말하였다
성종은 극구 말리며 유자광에게 특별히 노모까지 상경시켜 음식도 내려주고 서울에서 벼슬을 고집한 이유가 그랬다
(훗날 중종반정의 때에도 유자광의 부하를 사헌부에서 모두잡아 갔다 그래서 낙향한다고 하였으나 중종이 성종처럼 허가하지 않아서 그대로 있다가 유배되고 모든 손자까지 도 전라도에 살지 못하게 하여 평창에서 의문사하였다)
성종은 이처럼 남원사람 유자광을 중용하고 인근지역 함양의 김종직 거창의 신수근을 보강하여 인수대비, 한명회 세력을 막아보려고 했다
유자광은 부하 신수근의 부친 과 남이장군의 모반에 출두하여 체포한 일등공신로 자기친족을 왕비로 들이지않고 신수근의
딸을 성종후궁으로 들여서 중종을 낳앗고 연산왕비도 들였다
유자광의 친족을 왕비로 넣지 않는 청렴정치가인데 서거정 남곤 남공필이 대를이어 유자광을 간신으로부각시키고 남이를
충신으로 위장했다
인수대비 한씨세력과 남이 서거정의 조직후계들이 유자광 죽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한 신수근 임사홍에 의하여 폐비윤씨의 복수전을 전개하여 페비윤씨의 한을 풀엇다
그래서 유자광 고향사람 신수근의 딸이 성종후궁이 되어 중종을 낳았고 또한 연산군 신씨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서거정이 권람의 같은 사위이며 동서간인 한명회에 밀착하여 남이장군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서거정과 남이장군은 권람의 사위이며 동서간이다
역적 남이의 장인인 권람은 장인이라고 무사하고 기타연루자는 모두 삼족을 죽였다
한명회는 생명의 은인 유자광을 서거정과 함께 단결하고 꾸며서 죽이려했다
연산군때에 그 사초기록 문서가 발견되어 부관참시 되고 페비운씨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역사학자들이 한명회 김족직계보 후예로 한말 이용구계로 그후손이 장악하여 남이를 충신으로 둔갑하고 충신 유자광을 간신조작하는 악인으로 유지한 이유로 본다
유자광은 군사 음악의 선구자이지만 남이의 동서친족인 서거정 남곤의 꾸밈으로 최고악인으로 교육되었다
그래서 한명회와 김족직의 세력에 붙어서 유저광 전을 짓고 흑색선전의 글을 많이 썼다
이글을 후에 남이장군의 친척 남곤이 유자광전을 지어 퍼트렸다
한명회를 죽이려는 목적의 구테타였는데 이를 신고하여 남이장군이 체포되어 죽게되자 서거정과 님곤 세력의 유자광 죽이기 선전대가 된다
그 서거정이 지은 글을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고하였는데 여기서 한명회의 죄목이 공개 된다
유자광 죽이기 서거정 지음의 기록을 조선실록의 서기들이 인용하여 실록 사신란에 기록했다
유자광을 아래의 기록을 판사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거짓역사를 알게한다
연산 7년(1501 9월 17일
유자광이 서거정의 저술에 대해 상소하다
유자광(柳子光)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서거정(徐居正)이 저술에서, 신이 한명회(韓明澮)의 부도(不道) 죄를 다스리기를 청한 일에 대하여 갖은 말로 신을 헐뜯었으니, 모르겠으나 서거정은 감히 한명회에게 부도 죄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 저술에 어째서 도리어 신이 속여서 상소했다고 하는 것입니까? 한명회는 성종(成宗)을 가리켜 신하로서는 도저히 입밖에 낼 수 없는 크나큰 부도의 말을 했고, 정희 왕후(貞熹王后세조왕비) 에게 청하여 정권을 성종께 돌려서는 안된다고 했으니, 한명회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때는 한명회의 권세가 두려워서 비록 대간일지라도 감히 의견을 남김없이 말하여 처벌하기를 청하지 못했는데, 신이 홀로 분연히 몸을 돌아보지 않고 누차 글을 올려서 법에 의해 조치하기를 청했던 것입니다. 성종께서도 신에게 죄가 있다고 하지 않았고 대간도 또한 신을 그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한명회의 죄를 다스리는 것은 본래 그 직분(職分)입니다.
서거정이 신에게 군상을 속이는 상소를 했다고 저술로 신을 헐뜯은 것은, 서거정이 한명회와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유학(遊學)했고 그 교분이 매우 가까워서 한명회가 있는 것만 알고 조정이 있는 것은 몰랐기 때문이니, 서거정이 저술로 신을 헐뜯은 마음은 한명회의 부도한 마음과 부합되는 것입니다. 만약 서거정을 옳다고 한다면 군부(君父)에게도 부도한 사람이 무엇인들 두려워하겠습니까? 서거정의 글을 증거로하여 신의 죄를 얽는 사람은 또한 서거정·한명회가 있는 것만을 알고 조정 군신의 분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서거정이 한명회의 마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삼아서 저술로 신을 헐뜯은 것이 바르고 그름을 가리소서. 바르고 그른 것이 이미 가려지면 한명회의 부도한 죄와 서거정의 저술의 잘못이 자연히 환하게 드러날 것이니, 누가 능히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여 신의 죄를 꾸며 법망에 끌어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대체로 신의 죄를 꾸며 만드는 것은 모두 이와 비슷하니, 신은 적이 원통합니다.
서거정의 저술에, 또 신더러 권세에 붙어 요행히 맹부(盟府)) 에 참여했다고 말한 것은 무슨 일입니까? 무자년(남이 역모날자) 에 신이 병조 참지로 있었고 신승선(愼承善)이 참판으로 있었는데, 그 해 9월에 세조께서 승하하여 재궁(梓宮)) 이 빈소에 있었습니다. 남이(南怡)가 몰래 흉도들과 결탁하고, 강순(康純)은 전조(前朝)) 때 반란을 일으킨 정중부(鄭仲夫)의 전기(傳記)를 찾아 읽고서 조정을 경복시키려는 계획이 기일 이미 임박했는데, 뜻밖에 그 계략이 신(유자광)에게 누설되어, 신은 반역 사실을 듣고 곧 창황히 말을 달려 빈소 옆에서 상주하였으니, 그때가 2경(二更)이었습니다. 그 날 밤에 신승선(愼承善연산군장인)이 마침 내병조(內兵曹)에 입직하였는데, 예종(睿宗)이 놀라고 동요하여 신과 신승선에게 명하여 대궐 안에 경계를 펴고 시위군(侍衛軍)을 조처하여 남이(南怡) 등의 일당을 매우 많이 잡았고, 모두 법에 의하여 죄를 다스렸습니다. 예종(睿宗)께서는 논공(論功)할 때에 신(유자광)을 첫째로 삼았고, 신승선을 그 다음으로 삼았으니, 신은 권세에 붙어 요행으로 맹부(盟府)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무릇 귀와 눈이 있는 경향의 온 나라 사람들이 어느 누가 이를 몰랐겠습니까. 산천(山川)과 귀신도 또한 응당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며, 하늘에 계신 종묘 사직의 열성조의 신령도 환하게 내려다보셨을 것입니다. 하물며 인수대왕 대비(仁粹大王大妃)) 는 몸소 이 변란을 겪으셨는데,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서거정은 어떠한 간사한 사람이기에 신을 가리켜 권세에 붙어 요행으로 맹부에 참여했다고 저술(유자광전)에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공론이라 핑계하고 신의 죄를 꾸며 만들게 하는 것입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서거정의 저술(유자광전)의 바르고 그릇된 것을 가리소서. 그릇되고 바른 것이 이미 가려지면 신의 죄 없이 당한 원통함을 풀 수 있을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신의 전복[鰒]을 페하께 진상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나리를 바치는[獻芹] 정성) 이 염두에서 솟아나왔기 때문입니다. 신이 사옹원(司饔院)) 의 노신(老臣)으로서 우연히 공무로 출행했다가 대낮에 전복을 가지고 진상한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조종(祖宗) 때에도 대신들이 모두 사사로이 진상했다 합니다. 세조(世祖) 때의 정승 구치관(具致寬)은 청백(淸白)과 도덕이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으나 집에서 빚어 만든 맛있는 술을 끊임없이 진상했으며, 세종(世宗) 때의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은 문장과 도덕이 세상에 모범이 되었으나 사사로이 두부(頭腐)를 진상했다 하니, 그것이 모두 심술의 욕심에서 나와 세종과 세조께 무엇을 요구하느라고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그 당시에도 구치관과 변계량의 심술이 바르지 못하다고 논박한 일이 있었으니, 전하께서 살펴 주시기를 삼가 바라옵니다.
신은 나이가 지금 63세이므로 죽을 날이 멀지 않아, 밤중에 자지 못하고 손가락을 꼽아 가며 평생 일을 세어보았습니다만, 가정에서는 불효한 행실이 없었고 나라에서는 불충(不忠)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다만 타고난 성질이 고지식하므로 나라의 은혜에 감격하여, 젊었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남의 악한 것을 보면 숨김없이 말하고 남의 잘못을 들으면 숨김없이 알렸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혼자서 행하여 형상이 외롭고 남의 싫어하는데 부딪쳐 원수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천안(天安) 지방의 사람들은 또한 김종직(金宗直)·김일손(金馹孫)의 옥사가 신으로 인하여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칼과 화살로 신을 쏘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밖의 원수들이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매양 마음이 싸늘해집니다. 만약 성명이 위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신이 어찌 지금까지 성명(性命)을 보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서거정의 저술의 바르고 그른 것을 가리소서. 그리고 신을 논박하는 사람이 만약 한명회의 부도(不道)한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고, 서거정의 저술이 본받을 만하다고 말하거나, 또 구치관과 변계량의 심술이 바르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신은 마땅히 할 말이 없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삼가 살펴주소서.”
여기 유자광이 성종에게 상소문으로 말하는 서거정의 말이 모두조작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측천무후도 죽음에서 유언으로 묘비에 글을 남기지 말아라고 하였다
유자광전 의 책은 남곤이 죽음에 유언으로 모두 불태우라고 하여 없어�다
이처럼 모두 당나라 측천무후의 역사책을 각본으로 그대로 실천한 한명회 딸 인수대비가 페비윤씨를 죽였으나 후회한점없이
지금도 초,중,고,대학의 교육에서 유자광 악인으로만 가르친다
권희덕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