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을 유자광이 왜 잡으려 하지 않았나
홍길동을 유자광이 왜 잡으려 하지 않았나 그리고 죽이지 않았다
홍길동은 유자광 고모의 시동생이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에 유자광은 홍길동과 같은 서손으로 고모부 홍령의 집에서 어린시절을 자주 만남으로 보인다 유자광은 여악 노비의 아들로서 본집에서는 천대를 받아서 피하려고 친절한 고모집 (정읍산내)에서 보냈다 홍길동은 서자로서 벼슬이 막혀서 벼슬은 못하였기에 부정한 인수대비의 세도 를 꺽는 산적으로 위장된 의적이라 생각한다 유자광은 군사작전 전문가로 유능한 산적이나 무술에 뛰어난 사조직의 무력으로 인수대비의 세력을 막으려했다 정읍사람 유자광의 작전술이 정읍에 전승되어 갑오동학교도 종교세력을 대원군이 전봉준을 홍길동처럼 조정하여 부정과 왜적을 막으려했다 정읍 산내에서 김개남 장군이 체포되었을때 대원군의 명을 받았다고 하여서 관군이 이 사실을 감추기위해서 재판없이 처형했다
사실 페비윤씨 의 한을 풀기위하여 막강한 인수대비 한씨세력을 홍길동이 기를 꺽어 놓은 예비작업 같았다 영상의 벼슬로 행동하려고 옥정자(상모에 새를 조각한 꼭지를 단 관모)를 쓰고 홍대를 입고 벼슬행세를 하였다 어쩌면 연산군이 묵인하는 인수대비 세력척결의 행동대로 보인다 고 연산군이 완전 세력을 장악한 뒤에야 임사홍이 나서서 증거를 보이고 페비윤씨의 복수를 한다 결국 일본 오끼나와에 이주하여 살았다는 유적이 남아있다 홍길동은 도적과 다르게 행동하였다 도적의 행동으로 빈민을 도운 의적이였다 군사작전의 전문가이며 음악으론 악학괘범을 만들었기에 그 연산군왕은 군사훈련의 사냥을 대신을 이끌고 강행했다 그리고 천대 받는 노예급의 예능 음악인을 벼슬을 높엿다 한명회 인수대비의 한씨 세력장악으로 대신들의 부정비리가 만신창이 된 부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자광이 뜻대로 탐관오리의 비밀을 알고 대낮에도 그들 재물을 탈취하여 빈민을 도왔다 페비윤씨의 죽음에 실신해 버린 연산군을 막을 길이 없어서 중종반정을 하려는 유순· 박원종· 유순정·이 유자광의 도움 약속을 받고야 반정을 성공했다 그 이유는 홍길동 이외에도 김포에 산적 미륵과 당래가 있었다 이들 김포 산적이 외곽에서 진군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이미 이장곤을 등용하였으나 연산군이 죽이려는 것을 알고 함경도로 비밀리 보냈다 그래서 중종반정은 유자광이 최고 1등 공신이였다 그래서 홍길동을 잡으려는 데서는 유자광이 전혀 언급이 없다 오직 인수대비 오빠 영의정 한치형이 적극 홍길동을 잡으려 했다 연산 6년(1500 ) 12월 29일 홍길동의 죄를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권농 이정들을 변방에 보내기로 하다 의금부의 위관(委官) 한치형(韓致亨;인수대비 사촌오라비)이 아뢰기를, “강도 홍길동(洪吉同)이 옥정자(玉頂子)와 홍대(紅帶) 차림으로 첨지(僉知)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官府)에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그 권농(勸農)이나 이정(里正)들과 유향소(留鄕所)의 품관(品官)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체포하여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변방으로 옮기는 것이 어떠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알았다.”하였다.
군사전문가 유자광은 홍길동 이외에도 주요지역에 홍길동과 동조했거나 연합체로 보이는 군사력 산적들이 유자광의 지휘로 중종반정에 호응하여 성공햇다 그러나 여기서도 유자광을 이용하고 토사구팽으로 반정공신인 유순·박원종·유순정·이 유자광을 구하지 않고 버렸다 서자 천인을 등용시킬수가 없기 때문에 강도로 위장시켜 인수대비의 세력을 공초에 떨게하였다
유자광은 군사전문가로 자기와 같은 천인으로 무술에 뛰어난 자들을 찾아내어 등용하기를 요구했다 유자광이 등용시킨 무술가 박영문과 박영창이 천인 백정계급인 당래와 미륵의 무술 실력을 이용하여 중종반정에 출동시키고 공신에 등록했다
중종 2년(1507 ) 3월 28일( 유순·박원종 등이 백정 당래·미륵의 일을 의논하다
영의정 유순·좌의정 박원종·우의정 유순정·무령군 유자광이 아뢰기를,
“백정(白丁) 당래(唐來)·미륵(彌勒) 형제가 원종 공신(原從功臣)에 참여되어 있는데 그들은 날래고 용맹스럽기 짝이 없으며, 또 겁탈하는 일이 많아서 강도란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숨고 나오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국가에서 죄를 풀고 포도장(捕盜將)에 붙여주면 도적들을 다 잡겠다.’고 합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이미 원종 공신에 기록하였으니, 다행히 죄를 풀고 충찬위(忠贊衛)에 소속시키든가 혹은 포도장으로 소속시켜 도둑의 내막을 잘 아는 것을 이용하여 그들을 잡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당래·미륵은 강도로서 박영창(朴永昌)이 김포 현령(金浦縣令)이 되었을 때 신임을 받았는데 정국(靖國)중종반정) 에 할 때에 박영문(朴永文)이 두 사람이 용맹하다고 천거하여 일을 시켜 원종 공신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강도를 충찬위에 소속시켜 대궐 안에 섞여 있게 할 수는 없다. 다만 포도장에 소속케 하여 숙지(熟知)라 칭명하여 도둑을 잡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고, 또 삼공에게 전교하기를,
“근래 나인과 환관들로서 범람한 일이 있는가? 경들이 들은 것이 있으면 다 말하고 숨기지 말라.” 하니,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하나 다만 신 등이 아직 들은 것이 없습니다. 범람한 일이 있다면 신들만이 아뢸 것이 아니라 대간도 말을 할 것입니다.” 하였다. 유자광이 살려 준 한명회나 반정에서 도움을 받은 박원종 유순정이 모두가 합동으로 자기의 영화를 위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이들 후손이 대대로 세력을 잡고 자기 조상의 비리를 덮기 위해서 서거정이 지은유자광전을 선비 필독서로 활용하여 드믄 군사전문가 충신을 간신로 배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