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희맹선생 성지및 신도비
도심안
2023. 9. 11. 01:09
강희맹선생 성지및 신도비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로 등극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63년 중추원부사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464년 부윤으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서 차석,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서 3등, 등준시(登俊試)에서 차석을 차지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다. 1468년(예종 1) 남이(南怡)의 옥사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으로 진산군(晉山君)에 책봉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고, 지춘추관사로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편찬하였다. 강희맹선생묘경기 시흥시 하상동 산2. 경기기념물 제87호. 조선전기의 문신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인 강희맹(1424∼1483) 선생의 묘.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가운데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농학자였던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꽃 씨를 관곡지에 심은 뒤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姜希孟(강희맹) 1424(세종6) ~ 1483(성종14) 病餘獨吟(병여독음) 병후 홀로 읊조림 南窓終日坐忘機(남창종일좌망기) 남창에 진종일 시름없이 앉았으니 庭院無人鳥學飛(정원무인조학비) 인기척 없는 뜰엔 새새끼 포록포록 細草暗香難覓處(세초암향난멱처) 부드러운 풀향기 어디선가 그윽한데 淡烟殘照雨霏霏(담연잔조우비비) 엷은 연기 석양에 비치고 비는 부슬부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