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예의지국은 허기(奇), 안록산 토벌군에게 당현종이 내린 글
동방 예의지국은 허기(奇)안록산 토벌군에게 당현종이 내린 글 | 삼한시대/가야국 태인허씨 |
오경 2010. 1. 18. 11:40
http://blog.daum.net/nongaak/7090612
동방 예의지국은 허기(奇), 안록산 토벌군에게 당현종이 내린 글
태인허씨 이자겸 조상 '허기'의 공로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 천국 조선국 역사
동방예의지국 사람 '허기' 태인허씨 시조 허왕보굴이 저 청산 가운데 꼭대기에 있다
중국에서 한국을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국사 국어시간에 그 토록 우리자랑으로 외치고 가르첬다
그런데 왜 그 본문 글을 국사학자 들은 숨겼나
그 東方禮義之國 당나라 현종의 친필을 아래와 같이 원문과 함께 신라 경덕왕 15년 글 '이기' 정체를 소개 한다
禮樂名義
경덕왕 十五年 春二月 上大等金思仁 以比年災異見 上疏極論時政得失 王嘉納之
王聞玄宗在蜀 遣使入唐 泝江至成都 朝貢 玄宗御製御書五言十韻詩 賜王曰 嘉新羅王歳修朝貢 克踐 禮樂名義 賜詩一首 四維分景緯 萬象含中樞 玉帛遍天下 梯航歸上都 緬懷阻靑陸 歳月勤黄圖 漫漫窮地際 蒼蒼連海隅 興言名義國 豈謂山河殊 使去傳風敎 人來習典謨 衣冠知奉禮 忠信識尊儒 誠矣天其鑑 賢哉德不孤 擁旄同作牧 厚比生蒭 益重靑靑志 風霜恒不渝 帝幸蜀時 新羅能不遠千里 朝聘行在所 故嘉其至誠 賜之以詩 其云 益重靑靑志 風霜恒不渝者 豈古詩 疾風知勁草 板蕩識貞臣之意乎 宣和中 入朝使臣金富儀 將刻本入京 示舘伴學士李 李上皇帝 因宣示兩府及諸學士訖 傳宣曰 進奉侍郞所上詩 眞明皇書 嘉嘆不已 夏四月 大雹 大永郞獻白狐 授位南邊第一
'당현종이 촉지방에 있다는말을 듣고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당현종에 상소를 올렸다
당현종은 5언 10운시를 써주며 말했다
신라왕이 해마다 조공을 잘하고 예악및 대의명분을 훌륭히 실행하므로 시를 지어주노라
산넘고 물건너 당나라 서울에 찾아왔다 생각하나 동방의 길이 막혔는데 신라는 당나라를 위해 힘쓰네
아득히 먼 곳(장사현)의 끝 한구석의 자리에
대의명분 지키는 나라라고 일컬어지니
산 다르고 물 다르다고 어찌 말하랴
사신은 돌아가 당나라 풍교를 전하고 사람들은 찾아와 배워가는구나
의관 예절에 맞출 줄을 알고 충성스럽고 신의 지키며 학문을 존중할 줄 아는구나
그 성실함 하늘이 굽어보고 현명함이 아름답다
깃발세우고 우리백성을 구하니 보내준 조공선물 정성이 넘치누나 그 푸른 지조 더욱소중히 하여 영원히 변치 말라
당현종이 촉지방 (장사현)에 신라가 천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당현종 행재소까지
찾아갔으므로 그 지성을 가상히 여겨 시를 지어준 것이다
훗날 고려사신 ‘김부의’가 송나라 휘종에게 이 글씨 판본을 가지고 변경에서 접대관 이병은 이 글을 송 휘종황제 에게
가져가서 보였더니 송너라 양부의 학사들이 보고 틀림 없는 당현종의 글씨라고 감탄했다 '
가야 망국으로 백제 정읍에서 가야국 독립운동을 한 허씨 허기를 신라사신으로 등용이 불가능하다 김부식 삼국사기 시대 왕족이
모두 허씨 외손들이다 그래서 이기 (허기)를 '신라사신'이라고 추겨올린 거짓말 칭호이다
백제가요 정읍사 주인공 '장사꾼'이 아니라 중국'장사'현에 있는 당 현종을 걱정하는 당 악공들의 정읍 음성향,
반등산 ,선운산,에서 충성가가로 불린노래가 정읍사
당현종 피난지 장사현에서 허기가 데려온 악사들이 살던 고창 장사고분 유물들
양귀비처럼 이런 화려한 금신발을 신고 노래하여 정읍사 노래가 보렴 육자배기 농부가 아리랑으로
변천되어 불려진다
http://blog.daum.net/nongaak/5004891 기사 참조 장사꾼이아니라 장사에 간 허기장군
고창군 아산면 장사고분출토물 사치스런 양귀비 같은 귀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진시황제 오두마차와 아래 돌로 만든 허기장군 모시기 위한 돌 오두마차를 비교
위의 진시황제 마차를 모방한 허장군 굴 앞에 대기한 돌 오두마차
허기장군이 당나라에서 잡아온 도공이 적은 가야고배 제사 그릇을 당나라 식으로 크게 만든 부안 출토물 비교 사진
가야국이 망하고 가야족이 백제로 가서 독립군이 된 태인허씨 허기(許奇)가 서해상에서 해적으로 유랑하는 시기였였는데 양자강으로 숨어 들어가서 당현종을 장사현 장가계 요새지에서 게릴라전으로 안록산 군대를 격퇴하였고 여기에 따라간 군사가 이곳 장사현 장량 가문에서 사성을 받아 장보고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장사현은 진시황제 때 대도시로서 잔 시황제가 타고 다닌 5두마차가 태인허씨 시조 탄생굴 허궁실 마을 ‘허왕보굴’ 앞에 만들어저 있고 백제가요 정읍사의 장사꾼도 '장사현'에 간 것을 장사꾼으로 폄하한 글로 지금 가르친다
장가계 장사현 이름 그대로 ‘장사현’은 고창군 무장현 이름 장사고산성도 남아 있고 김수로왕 토탬 거북을 상징하는 고인돌 마을이며 그 무장면 장사땅 고분에서 금관 금신발등 이 대량 출토되고 있다
이자겸의 땅 정읍사 노래 정읍 삼산동 음성향 고려 음성서 사신맞이 터 삼신산 연못
정읍 삼산동 음성마을 삼신산 3섬은 거북 종교신앙으로 김수로왕 이 우임금 부친 곤이 세발자라 비내리는 기우제 신으로
모신 토탬신당이다
태인 피향정, 남원강한루, 연못의 섬이 거북이며 태인 피향정이 장군봉 허장군 굴 밑에 원래 있엇는데 조선 태종이 태인으로 옮겼다
신라 경덕왕때 아찬으로 사신이 되어 당나라에 가서 공을 세워 당나라 당현종으로부터 이씨(李氏)의 성을 사성 받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허씨 허기(許奇)데 당나라 시기에는 이기로 사용했으나 당나라가 망하자 귀국하여 본성 허씨 허기로도 사용하여 후손 허사문이 견훤 또는 왕건을 돕다가 왕건의 사위가 되어 태인 허씨 허사문이 시조로서 시산군 벼슬이 되었다
그러다가 고려 현종왕이 글안군 침입으로 나주로 피난 가다가 태인에서 유숙하면서 금산사 승군세력과 태인허씨 허겸 세력이 가무고취로 유혹하여 허겸의 외손녀 3명을 현종의 왕비로 들이게 하여 허겸이
허씨에서 인천이씨로 환원하고 이자연 이자의 이자겸의 인천이씨 왕권시대로 이어젔다
그런데 김부식 김돈중 부자가 신라계 김씨로 가야 허씨계 무신세력을 천시하고 밀어내려 하자 인천이씨 이의방. 이의민. 이고. 허승이 '정중부 난'을 이르킨다
그러나 최충헌이 이들을 죽이고 세력을 약화 시켰으나 몽고의 침입과 삼벌초난을 막아낸 송군비 송송례 송인의 시대가 원나라 화친시대로 이어 진다
송씨는 여기 허씨 족벌인 인천이씨 이자겸등이 송나라와 외교권을 장악하였을 때 송나라 땅은 몽고의 침입으로 몰락 당하여 송나라 권력 호족들이 보물을 챙겨 배를 타고 도주하여 허기장군 참전시대부터 중국에서 한국을 잘 알고 지낸 허씨족 이자겸 통치하는 고려국으로 몰려들어 이자겸의 소유한 땅 정읍시 산내면 쌍치면등 지역에 망명하여 정착거주 시킨다
송씨, 채씨, 척씨,등을 망명자를 호족세력 사병으로 소속시켜 산내면 운주산에 안주 시킨다
그 후에 이들 사병이 송씨로서 송군비 장군이 되어 입암산성 몽고군과 전투에 몽고군 고위 관리를 체포하여 중국어를 잘하는 이들이 몽고인과 대화하고 손잡고 송인의 딸이 원황제 가문과 혼인하여 다시 허씨와 이씨등이 송씨 세력 충열왕시대 몽고공주에 대항하는 충열왕 본처 허공의 딸 허씨 왕비로 생존 한다
그러다가 공민왕이 송씨를 숙청하여 이씨 들이 다시 산골오지로 숨어 들어가 함경도에서 살다가 동족 이성계가 왜적을 치는 공훈으로 공민왕으로부터 숙청된 그 세력이 다시 모여 이씨 조선국이 되었다
호족 송씨세력 송인, 송영방, 시무비 등이 서원후 왕영을 충선왕비 몽고공주와 결혼시키려 하다 함께 죽었다 그 서원후 왕영의 후손 공양왕을 세우고 공양왕을 이성계가 동족이라고 세웠으나 이성계의 욕심이 더 커저서 왕위를 찬탈하여 조선태조가 되었다
여기서 왕이 되려고 태종이 명나라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으려고
태산(태인)군을 이성계파 이화 허씨 송씨 이자겸 이씨 세력이라 하여 군을 페지하여 태인으로 군청을 옮겼다
이화(李和,?~1408)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태조의 이복동생으로 이곳에서 살았다
이방원이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친 이성계파 이화 등 태인허씨를 숙청하여 피난 양천허씨 이씨 등으로 변성하여 살기도 하였다
세종 문종시대 까지 지내다가 수양대군이 태인으로 가서 가야금을 배우고 송씨 허씨 문화유씨 홍씨등 태인 세력으로 단종내각을 꾸민다
태인 허씨 족보 허사문은 견훤을 나주로 탈출 시키고 시산부원군 왕건의 사위가 되고
둘째 아들 허도(이허겸)가 인천이씨 시조 고려현종이 나주로 피난가다
태인에서 태인허씨 외손녀 3명이 왕비가 되어 이자겸 외손녀 공예태후 강종 왕비 이의방 딸까지....모두 허씨혈족 이다
단종왕비 부친 송인수와 유자광 부친 유규, 홍길동의 형 홍령 등이 참여 한다
유자광등 이들을 모두 모함으로 숙청한 중종시대부터 명나라 숭상의 동방예의지국으로 자랑해 왔다
그런데 그 예의지국을 받은 자가 이자겸 가문 태인허씨 허기장군이므로 이런 이름을 철저하게 감추어 한명회 사륙신 남곤 정철 이율곡 송사련 송익필 송시열 홍게희 남공철로 이어 최익현 이용구등 유교학파를 우상화 하려는 이병도 최남선 최현배등 교육학자들이
까지 조선 500년이 태인 허씨 허기를 고의로 숨겼거나 아니면 삼국사기 한번도 읽지 않고
학계를 장악하고 있엇다는 이야기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당현종이 나라를 구해준 고마음에 자존심도 버리고 자기 왕족 성을 허기에게 내려주어 허기(許奇)가 이기(李奇)로 불려 진다
동방예의지국은 거북을 종교신앙하며 나라잃고 바다에 떠서 거북을 모시는 신당을 거북선으로 만들어 안록산의 난 몽고의 침입 강화도 방어하고 조선 태종대에 임진강에서 보이고 세종시대 태인 탁씨 탁신이 제안한 전통가문의 기능을 이순신이 태인에서 터득하고 단시간에 거북선 복원이 된다
거북선으로 도와준 허기장군에게 ‘동방예의지국’이란 당 현종 말하였다
허기는 신라사신 아니라 떠돌이 해상군이 였는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는 시대는 고려왕비족 이자겸 가문 통치시대이기에 두려워서 신라사신으로 높여 거짓기록했다
씨름장사대회 선출된 장사사 허장군을 모시는 전설이 일본시조 천조대신 모셔내는 '천석굴' 신화와
같고 478년 일본서기 기록에 대산성반란 사건이라고 대산군 이곳이름으로 사실기럭이 있다
진삼장은 당태종, 헤초는 당현종, 두황제의 모친이 두씨이다
당태종의 모친 두씨 사당에서 측천무후가 가무 무녀로 천하 일색이며 당현종의 두씨모친은 양귀비가 가무 무녀로 천하일색 두여인은 고종과 현종의 황후가 된다
천황 하늘님은 미녀가 춤과 노래로 맞이해야 비를 내리고 풍년에 만수무강을이룬다는 당나라종교 법칙이엿다
그래서 나라 최고의 미녀를 바치는 시대엿다
대대로 두씨황후 사당의 제사는 노래춤이 신라국 정읍에서 두씨황후를 모시는 곳이 현재의 허기장군 산제당 허왕두굴이 있다
당현종이 안록산의 난 피난길에 태자 이형에게 황위를 빼앗기자 돈황 청해 방위장군 허기를 수양아들로 삼고 동방예의지국 성왕에 봉하고 황위복위 를 위하여 양자강으로 탈출 완도. 정읍에서 정착했다
당현종의 아들이기에 허기 이름이 이기라고하여 삼국사기 경덕왕 조에 신라사신으로 동방예의지국 기록으로 김부식이 백제폄하기록하였다
그래서 태인허씨 이자겸 이의방 허승 이장용 충선왕비 허공의 딸 순비, 그리고 순비의 후손 공양왕과 이성계 조선태조 역시 허씨분파 로 허기의 후손이 된다
백제 고이왕때 산천제사에서 고취를 사용 하엿지만 세계최고 가무 성가대 양귀비 악공이 모두 이곳으로 망명 당현종의 황제복위를 가무로 기원햇다 후에 그 세력이 후백제 견훤 즉 당현종 수비대장 진현례 친족 진훤을 돕는다
그런데 당현종시대 돈황 실크로드 지역에서 혜초의 왕오천 축국전이 발견된 이유는 허기장군의 막강한 군사호위로 인도와 로마까지 여행하엿다는 이야기를
이곳 정읍 산내면에는 손오공 서유기 이야기 내용의 전설과 진삼장법사 이름 진삼동, 천계암 화개마을 문수동 수침동 용장사 운주산이있다
1971년 산내면 매죽리 매대마을에 사는 허방덕(당시50세)씨는 원숭이 같이 털난사람 손오공 모양으로 용궁에서 용을 낚앗다는 조룡수 전설이야기 전해 주엇다
원숭이 바위 위에 도통바위가 있는데 손오공 원숭이를 500년 바위로 눌러 두고 원숭이 하나 먹을 물과 과일(쌀)이 나오게 하여500년을
구속하고 당태종의 의형제 진삼장(진현장)이 이곳으로 지날때 진삼장의 부하로 잡귀 요괴를 막아내는 행동을 하게된다
도통바위의 전설은 과일과 물이 하루 식사분량 쌀이 나오는 굴인데 근래에 욕심쟁이 스님이 부지깽이로 많이 쑤셔서 쌀이 막혔다고
이곳에 대대로 살던 손씨 손점동 손공술씨가 전해 주었다
이곳 에 사는 손씨는 밀양손씨로서 임진난의 손홍립, 동학군 손화중 등 친족들이 진삼장의 이름 진삼동에서 살았다
진삼장의 인도여행을 신라 약소국 혜초가 무력한 힘으로는 절대 불가한 위험한 행로를 허기(허씨 인천이씨 중시조.) 유일하게 기록까지 남긴 것과 허기장군의 산신제당 이름이 당태종과 당현종의 두분모친 두씨 사당으로 허왕두씨 사당 산제당이 허씨궁궐이름 허궁실 마을에 있다
혜초의 친족이 두씨나 진씨 삼장법사의 부족이나 아니면 사제간으로 가까운 신라인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지명을 남긴것으로 보인다
백제 가야족이 용장사 절에서 변장 요술 전투 술법을 배워 조룡수 용궁에서 최고의 요술무기 여의봉을 탈취 천계(당나라)를 정복하고
당시 용 호랑이 소. 말. 닭 .쥐등 12지신 동물신과 요괴,그리고 미녀귀신의 유혹을 참고 넘어 인도에서 불경을 가저오는 이야기다
12지신 동물신 중에서 말은 사오정 원숭이는 손오공 돼지는 저팔개, 권렴장군이다
그당시 한국역시 백제는 비들기, 고구려는 꾀꼬리, 신라는 닭.말. 까치를 천신으로 신앙하는 시대여서 동물신앙시대 를 버리고 석가모니를 따르는 성경이라고 본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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