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군 옹동면 매정리 내동, 최창조
동학 신앙 때 천상보좌의 상제님을 알현한 김경학
1 김경학(金京學)은 태인 사람으로 대부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학문에 열중하더니
2 동학 접주였던 셋째 형 경은(景恩)을 따라 동학을 신앙하니라.
3 그 후 칠보산 줄기인 태자봉 아래 백암리(白岩里)로 이거하여 훈장을 하다가 47세에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니라.
4 일찍이 경학이 석 달 동안 시천주주(侍天主呪) 수련을 하던 중 꿈에 천상에 올라가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뵈온 일이 있었는데
5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6 경학이 일찍이 상제님을 뵙던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곧 그때 뵌 상제님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아뢰니
7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옥황상제니라.” 하시니라.
8 경학은 상제님을 만난 후로 오직 상제님께 절을 올릴 뿐 다른 곳에 가서는 절을 하지 않으니라.
(증산도 道典 3:174)
1절 174:1 김경학(金京學, 1862∼1947). 본관 김해. 족보명 연상(演相), 자(字) 경학(景學), 호는 시은(市隱). 경학(京學)은 도명(道名)이다. 부 형태(瀅兌)와 모 김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부인 은(殷)씨와의 사이에 용주(龍胄) 등 3남 1녀를 두었다. 13대째 원백암 마을에서 살며 어릴 때 김경학 성도를 직접 본 박기만(1927∼ )의 증언에 의하면, 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며 얼굴 혈색이 좋고 하얀 수염이 길게 난 멋쟁이 노인이었다고 한다.
1절 174:1 대부호. 김경학 성도의 맏형은 태인 칠천 석 중 이천 석을 경영하였으며 집도 2,700평으로 태인에서 가장 컸다.(김경학 성도 둘째 형의 손자 김완수(1933~ ) 증언)
3절 174:3 칠보산. 정읍시 칠보면, 북면, 상동에 걸친 산(472m). 일곱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칠보임학(七寶林壑)이라 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다.
그 날로 상제님을 따르니라
1 상제님께서 백암리 김경학의 집에 계실 때 하루는 사랑에서 “물 한 그릇 떠 오너라.” 하시어
2 그 물을 문밖에 뿜으시며 “해인사에서 큰불이 날 것을 껐느니라.” 하시니라.
3 또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문을 열고 산을 쳐다보시더니 “아, 여기도 명당 하나가 있구나.” 하시거늘
4 경학이 “명당을 가르쳐 주시면 그곳에다 묘를 쓰겠습니다.” 하니
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묘를 쓴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하시니라.
6 하루는 경학을 조용히 방 안으로 부르시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으시기를 “경학아, 네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7 경학이 “한 삼백 석 거리는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8 말씀하시기를 “돈이 많으면 돈에 정신이 팔려 나의 도를 믿지 않게 되나니 나를 좇으려면 먼저 망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9 이에 경학이 작심하여 삼백 석지기 논을 팔아 성금으로 바치고, 그 날로 아예 걷어붙이고 상제님을 따르니라.
(증산도 道典 3:175)
2절 175:2 해인사. 경남 합천군 가야산(伽倻山) 자락에 있는 절. ‘해인사’라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다.
3절 175:3 명당. 백암리는 태자봉 장군대좌혈을 비롯해 그 일대가 군대가 주둔해 있는 형국이며 근처엔 비화부벽혈(飛花附壁穴)이 있다고 한다.
새울 사는 최창조의 입문
1 태인 새울에 사는 최창조(崔昌祚)는 대농(大農)에 금광을 운영하여 살림이 유족한 부자라.
2 하루는 창조가 이웃 마을에 사는 김경학이 전심(專心)하여 상제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경학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그 양반을 그리 따라다니는가?” 하니
3 경학이 대답하기를 “그분 말씀을 들어보면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온다는데, 도술이 어찌나 높은지 귀신도 마음대로 부린다네. 그분 조화가 말도 못하네.
4 그분은 참으로 하느님이신 게 틀림이 없네.” 하며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침이 마르도록 말하니
5 창조가 귀가 솔깃하여 경학에게 청하기를 “나도 그분을 따를 수 있는지 한 번 여쭤 봐 주게나.” 하니라.
천금도통 최창조
6 상제님께서는 누가 따르고자 하면 대개 “나를 따르는 거야 제 마음이지, 내가 따르라 마라 하겠느냐.” 하시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데
7 경학이 상제님께 나아가 “저기 새울 사는 최창조가 선생님을 따르고자 하니 받아 주시지요.” 하고 여쭈니
8 상제님께서 이미 아시고 “창조는 부자가 아니냐? 고폐금(告幣金)을 많이 바치라고 해라.” 하시는지라
9 경학이 여쭈기를 “얼마나 바치라고 할까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일신천금(一身千金)이니 고폐금 천 냥을 바치라고 해라.” 하시니라.
10 상제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꼭 그렇게 전해라잉. 저 돈 아끼는 거나 내가 도(道) 아끼는 거나 매일반이라고 그래라잉.” 하시거늘
11 경학이 창조에게 상제님의 말씀을 전하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조가 이르기를 “일신천금인데 그것도 못 하겠는가?
12 내 천 냥을 바치고 당장 입도하고말고.” 하며 기꺼이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니라.
13 이에 곧바로 인부 열 사람에게 각기 백 냥씩 천 냥을 지우고 경학과 함께 상제님을 찾아뵙고 따르기를 청하니
14 상제님께서 그 정성에 감탄하시고 무릎을 치시며 “천금도통 최창조(千金道通 崔昌祚)로다!” 하시니라.
15 이로부터 상제님께서 백암리와 새울을 오가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176)
*** 176장 나승렬 증언.
1절 176:1 새울. 현재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 있는 상일, 중일, 흥이, 흥삼의 네 마을을 가리킨다. ‘새’는 봉황(鳳凰), ‘울’은 둥지를 의미하며, 봉황이 둥지를 틀고 앉아 알을 품은 형국으로 제3변 결실도운의 큰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1절 176:1 최창조(崔昌祚, 1865∼1935). 본관 경주.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에서 부 주한과 모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상제님을 추종하던 시기(43세 입문)에는 새울에서 살았다. 2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장창엽과의 사이에서 아들 상열을, 최씨와는 3남 3녀를 두었다.
9절 176:9 일신천금. 옛날에 관리들이 천 냥을 횡령하면 사형을 당한 데서 유래한 말. ‘천 냥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목숨 값’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