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고향 정읍 옹동면의 역사이야기(2)
이석연,고향 정읍 옹동면의 역사이야기(2)
이석연을 버린 한나라당, 고건, 유성엽을 버린 민주당 참패
1923 내장사 윤세만 바우덕이 1948 제주도 4.3 전투 위안공연 옹동면농악 정읍사곡 멜러디
2011년 서울시장보궐선거 후보에 정읍 옹동면 촌사람 이석연을 버리고 한나라당 측근 나경원의원을 내 세워 민주당 박원순에게 넘어갔다
학살의 현장에서 태어나 가장가난한 민중운동의 청렴한 대변자 이석연을 버리고 귀족형 나경원을 시민이 거부했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고건 전 서울시장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보다 우세하였어도 자기측근 정동영을 세워 참패하고 지금 정동영은 국회의원도 아니다
옹동면 촌사람 유성엽의원을 민주당에서 입당조차 거부한 호남유일의 무소속 재선 중견의원이다
2007년 고건이 대통령 후보 1등 여론조사시에 고건은 옹동면 촌사람 유성엽을 중용하려 했다
민주당 입당에서 그 토록 무참히 배격당한 유성엽이 이제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전라도 유세에 가장 강하게 돕고 있다
'죽이려고한 서모에 대한 순임금 효성 이야기'
'아비가 자식을 버린 당금애기 효도이야기' 같은 현실이 전라도에 유성엽 의원 민주당 돕기로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이를 두고 말햇나 보다
중학교도 없는 정읍군 옹동면사람은 태인면이나.칠보면 학교로 타향 통학의 왕따고난!! 이석연 유성엽은 정치에서도 왕따 버려진 것이다
그래서 옹동면 사람은 정읍 전주에 가사는 태인면 칠보면 사람이라고들 거짓 말해야 했었다
학살과 왕따의 옹동면 고향 이석연 유성엽은 순임금처럼 오늘도 대통령 유세전에 목이 쉬어도 외친다
그래서 서울대에서도 미래 대선 후보 인재로 보고 잇다고도 한다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모두 섬이나 산골인것으로 보아 옹동면 사람 정치계 여야에서 버린 이석연 유성엽 양심의 이미지 시대가
오리라고 말한다
거짓말 경쟁 서로 욕설하는 시대는 미디어 발전으로 이제 마감한다
임진왜란에 옹동면 산성리 의병장 권극평이 진주성에서 농악소리로 신호하였고
조선왕조 실록을 임진난 풍파속에 유일하게 구해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 등재한 옹동면 안의였다
미국 군정청 통치 세계음악수준과 옥스포드 대학출신 나용균 정읍국회의원이 2000년 백제가요 정읍사 멜로디 농악으로 공연했다
1947 제주도 4.3 반란사건 제주국민위안 공연단으로 그 당시 소리를 정읍 옹동면 농악대 권오채 박판쇠 전광문의 구술로 재 구성한 그 소리를 1977년 재현하였다
2005년 유성엽이 정읍시장이 백제가요 정읍을 관현악 연주를 강력 지시 겨우 한번 연주하고 지금껏 연주는 없다
그래서 그후에 칠보중학교와 태인여중학교 농악단 교육의 소리로 듣엇는데 이제는 초중고 학교마저 음악 국악이 거의 사라저서
경연대회조차 지도교사 점수 조차도 없다
정읍군 옹동면은 왕따 된 이석연 유성엽이 고려 충열왕 시무비시대와 1948 나용균의원 시대 처럼 한국 최고의 문화를 누리는 시대를 기대한다
정읍군 옹동면은 고려시대 충열왕을 구타한 왕비 몽고공주를 배격 독살한 시무비 태인 능향시씨 고향이다
충열왕의 애첩 시씨 무비 능향시씨는 옹동면 능향마을이며 산성리 산성은 '능성' 즉 능성골로 불럿다
시무비 태인 능향시씨 가 몽고 공주를 독살시키고 이후에 이루어진 세력이 몽고 쿠빌라이 황제 황후로 기황후가
들어간다
이런 세력이 옹동면 능향 출신 미녀 태인시씨의 힘으로 능향 능성산성이 능향마을 앞산이다
세종대왕 승지 권채, 그리고 한글 용비어천가 작자 최항 안지
임진난 의병의 스승 정여립이 친족 거주지 상두산 옹동면 닥배미 마을
정읍군 김제군의 동래정씨 발원지는 닥배미 마을이다
임진난 조선왕조실록을 구출한 안의, 진주성과 용인전투 3의병장 모충사
담양가는 민유중은 산성리 다리를 건너다가 갈미 최씨 여아를 만나 칠보면 묵동. 반곡리 굴치고개로 넘어가서 담양에 부처되어
민씨 숙종왕후를 모시다가 미모에 반해 숙종이 숙빈으로 들여 영조를 낳아 영조4년에 최씨 고향사람 김도언을 병조좌랑을 삼아 이인좌 박필현의 반란으로 삼남지방이 점령되어 음죽현에서 반군을 격퇴하여 영조 정조의 문화시대를 이루었다
김도언 묘와 사당 후손의 집성촌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수약 마을로 지금까지 사용하는 가장오래된 지명 이름이다
호남의 여사당패 지강내 농악단패 연고지
1945년 8.15 해방후부터 1948년 까지는 문화 예술 최고수준 미국정부가 통치하는 시대로서 최초로 시행한 위문공연에술단이 옹동면 농악대로 선발되어 제주도 4.3 전투 현지에 파견 공연한사람이
박판쇠 문기수 최덕암 권오채 권영수 성금철등 옹동면 농악수들이 활동햇다
이농악을 1961 서울대음대 정회갑 음악교수가 녹음하여 김양곤 무용교수가 무용곡으로 책을 만들어 냇다
백제가요 정읍사 멜러디로 정읍농악이 성행 제주도 위문공연을 이런 음악 태평소 소리 엿는데
그 옹동면 농악은 기우제 성주푸리 무속노래의 순서와 유사하다
비세비세 비를비세
모악산에 올라 성주푸리로 빌고 상두산 절에 탑돌이로 빌고
물래봉에 올라 농부가로 빌고 산성재 풍두골에 풍년가로 빌고
능향성채 옹지읍에 돌아와서 강강술래 풍장치세
비세비세 비를비세
그 농악단이 서울시장 후보에 오른 가난한 집 이석연 고향!! 옹동면농악대 그 소리 계승 동영상이다
백제가요 멜러디의 반주 리듬이 정읍옹동농악에 이런소리로 남아잇었다
옹동면 서낭당 고개
1950년 6.25 전투시절 양민 학살 등으로 생존의 길은 오직 법관 뿐이라고 부모는 생각햇다
그래서 주민은 누구나 자식들에게 법관이 목표 그래서 전북지방에서 면단위로는 최다수 법관배출이 옹동면이라고 한다
현재 지방법원 정읍지원 법원장도 옹동면 옷밭골 권씨 출신 권혁중 판사이다
지금도 정읍 옹동면에는 중학교도 없는곳, 사법고시 도내 최다1위 합격율 고수한 옹동면의 슬픈역사
옹동면 북부지역은 태인중학으로 남부지역은 칠보중학으로 원거리통학 언제나 이들 태인 칠보패거리 텃세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고
이석연은 태인 중학교도 아닌 고입검정고시를 합격 해야하는 "고등공민학교'를 다닌 MB보다도 더 가난한 산골아이였다
농악의 천국 정읍군 옹동면에는 1950년 멋 모르고 남노당에 연루된 무고자 6.25 혼란기 맞아 ㅂ순경이 멋대로 죽이는 대량 학살에 다수 산으로 도망치고 빈집이 많앗고 왕따 천대의 지역 무법천지 옹동면 사람들은 오직 면민이 살길은 오직 법관이 되는 길 뿐이엿다
이석연의 옹동초등 학교 담임교사였던 김영대(퇴직)교사는 그 당시 의무경찰로 ㅂ순경의 행위를 직접 본 이야기다 ㅂ순경이 술만 마시면 조사중인 양민을 사살 60명에 이르러 옹동면 지서장도 말리지 못하는 ㅂ순경이 학살 목격자도 생존한다
3000년 한국음악을 지킨 옹동면은 이처럼 6.25 좌우파 쌍방 학살로 황페하고 살길찾아 사법고시 다수 합격자 옹동면이 되어 버렸다
1945년 해방시대는 미국이 서양 로마제국 음악통치식 예술을 이용한 계몽 정치를 했다
조선은 북한이나 ㅂ순경처럼 죽이는 형벌 공포정치에서 예술로 국민의 인심을 얻어 다수 선거로 통치한 미국은 그리스 로마제국의 역사 전통 음악 웅변 의학 전투를 학교교육이 유럽전통이였다
그러나 조선은 공자맹자 충효맹종시키는 군주와 노예관계 교육 위주 주자학만 가르치고 국민을 위한 예술 음악은 전혀없었다
정읍 농악은 당나라 현종시대 로마제국 터어키 주둔 군장 백제 항복군 허기 장군이 756년 신라국으로 악공을 데리고 와서 산신당에서 정읍사 노래 멜로디 피리소리에 그 리듬박자로 농악(풍악)을 만들어 지금에 이른다
서양의 부라스군악 밴드와 같은 멜로디를 미국이 발견한것이다
그래서 로마시대부터 서양정치 도구였던 음악공연을 미국이 한국음악에선 ‘농악’으로 활용 그 첫 번째로 옹동면 농악대가 미국과 이승만이 사용하였다
그 당시 청산리 전투를 이끈 이범석 장군이 자주 정읍 내장산등 요새지 산악에 사냥을 하며 답사를 자주하면서 정읍농악의 국민 위안 및 군사위문 공연으로 활용을 이승만과 미군청에 주청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이듬해 옹동면 사람 권정연이 제주도 제1훈련소 전투 운전병으로 위문활동을 하여 그 농악을 보고 저런 멜로디 피리소리가
울리는 농악치는 마을에서 살고 싶어서 지금의 K_POP에 매료되어 있듯이 1953년 미모의 제주여고생이 권정연에게 무작정 따라 달려 와서 옹동면에서 살았다
필자가 보아도 그 당시 여고생이 옹동면에는 하나도 없는데 그녀는 잘생긴 8등신 체격 제주도 처녀로 지금은 부천에서 할머니로 산다고하였다
그리고 제주사람 마부 박언영 일가족등이 말과 마차를 가지고 이 농악에 옹동면 농악에 매료되어 옹동면으로 이사 와서 살앗다
미국이 제주도 4.3 반란군 위급한 시기에 서양식 국민음악 한국음악 위안팀으로 찾아내 가장 뛰어난 멜로디가 유창한 한국고유농악 옹동면 농악이였다
그런 한국예술이 지금도 고령에 계승되어 이런 소리로 옹동면과 원촌 민속마을 무성서원에서 멜로디를 이어간다
판소리 옹동면 청년 왕기철 왕기수 3형제가 서울로 가서 판소리 중심축을 잇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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