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여기 저의 장시 한 편을 올립니다. 읽어보시고 우리들의 강, 동진강을 더욱 사랑해 주십시요, 고향에서 장 지 홍 드림
[스크랩] 여기 저의 장시 한 편을 올립니다. 읽어보시고 우리들의 강, 동진강을 더욱 사랑해 주십시요, 고향에서 장 지 홍 드림 ★자유게시판
동진강 메들리(Ⅱ) 장 지 홍 - 강물 따라 흔적 따라 1 동진강의 발원지, 걸음마 처음 하는 어린애 같다. 상두산象頭山 국사봉 밑을 헤집으며 뒤뚱뒤뚱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안쓰럽다.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착하디착한 무녀리 농투성이들이 들꽃처럼 모여 사는, 전북 정읍시 산외면 녹두머리 황토마루를 자작자작 흘러내려오다가 종산리 여우치 마을 가까이 이르러 제법 큰 물줄기가 되어 진양조 허튼 한 가락을 쉰 목소리에 섞어 카랑카랑하게 쏘아 붓는다.
그러니까 여기는 동학농민군 총관령 김개남 장군이 임병찬 밀고로 붙잡혀서 압송押送 되던 피체지被逮地. 그날 밤 전주 천 초록바위를 흥건하게 적시어 흐르던 핏물이 지금은 도원천 시냇가에 만발한 복숭아 꽃잎에 물들었는지 장군의 단심丹心이 시리도록 눈이 부신다.
차마 눈 감지 못하네.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 농민군, 피진 함성이 들리는 전라도여 시리고 아픈 우리들의 어금니, 동진강이여. 우리들의 각성과 의분을 뿜는 물줄기들, 황토바람으로 실려와 연연세세年年世世 세세연연世世年年, 우리들의 비겁과 무능과 무심함을 꾸짖네. 이 나라 가장 후진 사람들의 눈물이 흘러와 동진강을 이루네.
2 향단 마을로 향한다. 능다리 취수구取水口에 모인 물이 가파른 산길과 돌길을 헤치며 내려와 목욕 천 냇물과 어울리어 호남 제일의 섬진강수력발전소, 일명 칠보발전소를 이룬다.
대쪽 같은 선비 의병장, 최익현이 병사를 모아 순창으로 진격했다는, 아흔 아홉 굽이 돌고 돌아가는 구절재, 그 전적지를 찾아 간다. 산내면 감투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에는 항일의병들 원혼이 서려있고 휘문 산을 주름잡아 설치던 빨치산 넋들이 국군과 경찰 의용학도병들의 피로 얼룩진 산하가 함께 곰삭아서 칠보 천으로 흘러드네. 세월 가면 잊힐까. 너 나 없이 한 통속으로 기氣가 막히는데 도도한 강물의 흐름 속에 상잔의 역사 호졸근히 젖어 있네.
3 여랑부원군 송현수의 영애令愛, 정순왕후가 14세 어린 나이로 단종 비에 간택 되어 고향을 떠나는 날, 동편 마을은 온통 축제祝祭 분위기였다.
태인 향교 무성서원 유림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 사람들로 기다랗게 이어지는 축하행렬, 꽃가마 연鳶을 호위하는 무사들의 말발굽소리, 풍악소리는 온산을 뭉갤 듯이 메아리친다. 강물은 출렁출렁 감돌아 걸음걸이 씩씩하게 왕비를 모시고 떠나간다.
4 무성서원을 옆에 끼고 강물은 북동쪽으로 평화롭게 흐른다. 춘 사월이라 햇빛 고아 좋은 날, 태산 군수 최치원은 한 잔 술 생각이 나는지 유상대에 홀로 납시어 자작시 한 수를 조용조용히 읊조린다.
潤月初生處 윤월초생처〈시냇가 달이 처음 비치는 곳〉 松風不動時 송풍부동시〈솔바람소리도 고요하구나. 〉 子規聲入耳 자규성입이〈귀촉도 새소리 들리니 〉 濔興自應知 이흥자응지〈그윽한 정취를 저절로 알겠네.〉
고운孤雲을 따르는 선비들이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하나 둘 씩 모여든다. 신잠과 정극인 송세림은 감은정感恩亭으로 후학들 단속에 나서고 정언충 김양묵과 김관은 후송정後松亭에서 경서 책거리에 신바람 났다. 첨벙첨벙 돌다리 건너는 학동들. 책 읽는 소리 웃음소리, 산새 지저귀는 소리.
강물이 소곤소곤 곰살맞다. 수청저수지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칠보 천 큰집 식구들과 반갑게 어울린다. 여기가 바로 태산선비문화 중심지, 유적 많기로 이름이 난 칠보면 시산리詩山里 아닌가. 강물은 조곤조곤히 불우헌의 상춘곡賞春曲을 읊으며 흐른다.
홍진紅塵에 무친 분네, 이 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녯사람 풍류風流랄 미칠가 못미칠가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만한이 하건 마난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모랄 것가
5 칠보면 축현리에 동학농민군 영솔장領率將, 최경선 장군의 묘비가 서있다. 장군의 실묘實墓와 함께.
장군의 태생지는 태인현 서촌면 월천리(현 북면 월천동) 대제학을 지낸 최성룡의 3남, 동학농민군 가운데 특이하게 양반출신으로 농민항쟁의 선봉에 서서, 녹두장군의 진정한 오른팔이었다.
동학군 제2차 봉기 때 일본군의 해안침투를 막기 위해 나주에 머물다가 원평.태인 전투에서 남하하는 일부 농민군을 규합하여 광주로 진격했으나 패퇴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남평을 거쳐 동복 벽성가에서 붙잡히니 오호 슬프다! 큰 별 하나 졌구나.
천팔백구십오 년 삼월 마지막 날, 광화문에 내걸린 봉두난발蓬頭亂髮 세 구의 시신,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은 눈 부릅뜬 체 뭉게뭉게 뭉게구름으로 피어난다.
장군들은 말한다. 우리를 우리답게 키워낸 것은 우리 정읍의 저 붉디붉은 황토의 뜨거움이었다고.
6 강물은 시원스럽게 백암리와 월촌 옆으로 흐른다. 옹동면 산성리 옷밭골 지나 골짝을 휘잡아 화엄사가 있는 갈미에서 잠시 걸음을 멈칫거린다. 성황산과 항가산이 손짓하듯 가까이 서보이고 동구내와 정동의 강물에서 잠시 한가함을 즐기는 청오리 떼들. 허위허위 거산 벌판을 질러가면 태산선비문화의 으뜸고장! 태인이 바로 여기구나.
국도國道 1호선이 지나는 대각교大脚橋 밑을 흘러간다. 조선 영조임금의 어머니, 최 숙빈淑嬪 전설이 물길 굽이마다 주저리주저리 영글어 있다. 둔촌 민유중이 영광군수로 발령 나서 가족들과 함께 부임지로 가는 도중, 자기 딸 또래의 숙빈을 여기 대각다리에서 만난다.
숙빈의 속명은 복순이, 아비는 최효원, 천출賤出이다 칠석리에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렵사리 지내다가 둔촌부인이 데려가 딸과 함께 키운다. 둔촌이 서울 내직으로 영전하고 딸(인현왕후)이 숙종비에 간택簡擇 되자 복순은 몸종으로 같이 입궐한다.
장희빈 풍파와 당쟁의 소용돌이에 인현왕후께서 폐위廢位되자 본디 품성이 자애로운 숙빈 최씨는 왕후를 위한 기도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런 지극정성이 마침 숙번熟蕃 도는 어심御心을 사로잡아서 숙종 19년(1693년) 사월 스무엿샛날, 후궁 제1직첩 숙원淑媛에 오른다. 이어 곧 왕자 영인 군을 낳으니 이분이 조선 제21대 영조임금이시다.
7 일천팔백구십사 년의 동짓달 스무 이렛날이다. 원평 구미란 전투에서 참패한 농민군은 소튼재와 범의골을 거쳐서 태인에서 마지막 결전決戰을 준비한다. 그러나 성황산은 이미 경군京軍 손아귀에 들었고 도리미산은 일본군 소좌 스즈키 부대가 최신식 화력으로 중무장하고서 성난 이리떼처럼 으르렁거렸다.
잔여병력은 오천여 남짓 되지만 원평 싸움 패전으로 거의가 부상자뿐이고 병사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정鼎재를 넘어 사슴골(鹿洞) 관동 독양골을 쳐서 항가산에다 겨우 진陣을 친다. 동짓달 칼바람이 진눈개비와 함께 살을 도려내는 듯 사납게 불어댄다. 김문행 유공만 문행민 측근참모들이 지친 몸으로 절뚝거리며 녹두장군을 보필한다.
일진일퇴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다. 오전 열시 무렵부터 장장 열두 시간 동안이나 피 말리는 혈투血鬪가 벌어졌다. 도창현 고개를 사이에 두고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력을 다한 처절한 승부 전戰이었다. 농민군 오십 여명이 생포되고 전사자는 삼백 사십 여명, 회룡포 열다섯 정과 조총 이백 여정, 다수의 탄약과 말 여섯 필이 연합군 수중으로 넘어갔다. 태인 고을은 완전히 불바다로 변한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속 지옥 같은 전투는 농민군의 참담한 패배로 막幕이 내렸다. 아아! 꺼져버린 농민군 횃불, 산산이 찢어진 보국안민輔國安民 깃발이여!
장군은 군대를 해산하고 치마바위 아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한다. “장군 아니 됩니다. 어서 여길 떠나야 합니다. 저 칠보 산과 입암 산만 넘으면 바로 순창 피노리입니다. 잠시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 합시다” 일행은 하염없이 흐르는 피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눈보라를 뚫고 절뚝이며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가며 마지막 격전지 항가 산을 떠났다.
8 기미년 태인 3.1운동은 성황산과 읍원정 오리五里 마을 모정에서 비밀 회합을 거치면서 3월16일(음,2월15일) 장날을 택해서 크게 떨쳐 일어섰다. 국장國葬에 참례參禮하러 서울에 간 김현곤 송연수 박지선 일행이 김성수 송진우 선생을 만나서 독립선언서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이에 송한용 송진상 오석홍 송영근 김진호 유치도 김수곤 송덕봉 김진근 백복산 김용안 최만식 김부곤이 거사擧事에 참여키로 뜻을 모은다. 인근 각 면 동지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한편 김현곤(당시 태인 면서기)은 등사판을 아예 김한용 집으로 옮겨다가 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었다.
거사 당일 태인 헌병 분견소의 정오 오포午砲를 신호로 성황산에서 읍원정에서 도창이 고개에서 저잣거리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 물결이,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태인 벌을 요동쳤다.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보통학교 교원과 학생들이 흔쾌히 동참한다. 가게는 모조리 문 닫아 철시撤市하고 고부 관내 헌병까지 합세한 주재소 순사들이 시위군중 저지에 나섰으나 마른 나뭇가지에 불붙듯 의분에 떨쳐 일어선 군중들은 누구 하나 흩어지지 않았고 성황 산과 항가 산 동진강변에 모여서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자 태인 3개 산 9개의 산봉우리에서 일제히 횃불이 타오르며 독립만세 함성이 우레처럼 터져 울렸다.
9 대각교는 큰 대(大) 다리 각(脚) 교량 교(橋), 큰 다리 흔히 대각다리라 부르지만 증산교 미륵불교 대순진리회는 대각을 큰 대大와 깨달을 각覺자字를 고집한다. 즉 도道를 크게 깨달아 얻는 곳, 이른바「대각성지」라 하여 지금도 높이 받든다.
희한한 일이 대각교大脚橋에서 종종 일어나곤 한다. 조철제(1895-1958)천자를 받드는 무극교인無極敎人, 신인동맹神人同盟 대원隊員들이 강변 백사장 둔치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보부상으로 어떤 이는 엿장수와 소금장수로 변장을 하고 고창과 김제 부안, 멀리는 완주 군산에서까지 찾아든다. 이 신인동맹神人同盟은 정인표 정휴교 장득원이 주축이 되어 일천구백삼십사 년부터 전북지방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이나 독립운동을 함께 펼친 무극대교無極大敎 산하 지하단체였다.
매달 보름날이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좌정坐定하여 천지신명께 배례拜禮하고 주문을 외우는데 이를「천지신명공사天地神明公事」라 불렀다. 일왕에게는 죽을 사(死)자字를, 일본에게는 망할 망(亡)자字. 우리 조선은 독(獨)자字와 승(勝)자字를 각각 부적符籍에 써 붙이고 제祭를 모셨다. 그런데 어찌 뜻하였으랴. 한 동지의 밀고로 천구백사십 년 어느 날, 사십여 명의 동지가 체포되고 전북경찰부로 끌려가 전주와 군산형무소에서 최하 6월 이상의 징역형을 보낸다. 해방과 더불어 출옥하지만 십여 분은 이미 옥사하고 살아서 해방을 맞이한 사람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고에 시달리다가 거의 반신불수로 생을 마감한다. 정부는 이들의 애국심을 높이 찬양하여 일천구백구십사 년 팔월 십오 일,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다.
10 아이들이 떠난 강가에는 수염달린 찔렁구와 불거지가 저희들끼리라 싱겁다며 아무데서나 투덜거린다.
살 냄새 그리운 고향 이야기 들려주는 이 없고 듣는 이 없어 강은 나지막하게 울먹이며 흐른다. 〈장지홍「고향의 강」일부〉
강물은 기지 내와 오봉 산 곁을 지나서 정토 산을 코앞에 두고 화천리 강둑 밑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農者天下之大本』농기가 아무도 봐주는 이가 없어 화났는지 낙양리 수리조합 공굴 다리 위 백파제에서 괜스레 짜증을 내며 화풀이 하듯 바람에게 앙탈을 부린다.
잘난 사람들 하나둘씩 고향 떠나고 어쩌자고 병신 쭉정이 같은 우리만 남아 못 떠나는 악에 받혀 못 떠나는 호들갑을 떠는가. 강변마을은 하나같이 텅 비어 있다. 집집이 노인들만 하나 둘 억지로 살아남아서 하늘만 바라보는 혼불 나간 마을, 면사무소에 들렸더니 올해 출생신고를 한 아이가 단 두 명뿐이라는데 하긴- 그렇다 ― 오봉五峰과 매계梅溪 초등학교가 폐교 된지도 이미 오래지 않은가.
억새들이 머리 풀고 하얗게 울고서있다. 논밭의 비닐하우스 폐비닐이 찢겨나가 여기저기서 정신 사납게 펄렁거린다. 무너져 내린 오봉 산 기슭 공사현장에 베트남 태국 몽골 필리핀에서 날아온 낯선 사내와 처자들이 이국종 민들레처럼 무더기로 널려있다.
11 강물은 정읍시 신태인읍 서쪽 방향으로 남실남실 흘러간다. 머뭇거리던 발걸음이 제법 빨라진다. 내장산 신선봉에서 새벽부터 서둘러 내려온 정읍 천 동무들이 동진강의 큰집 대문 앞으로 모여들어 반갑게 악수를 하며 기쁨을 나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흐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랄디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내 가논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정읍사」전문>
행상行商 떠난 지아비의 무사귀환을 비는 백제여인의 소망이 애잔하고 간절하게 흐른다. 「정읍사 노래자랑」 부부애 넘치는 맛깔스러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임진왜란 당시,「조선왕조실록」을 목숨 걸고 지켜낸 승병장僧兵將 희목대사, 안의와 손흥록 선비의 나라사랑이 내장동굴을 빠져나와 서해로 가더니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登載, 이제는 한국을 넘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보물이 되었네.
정읍현감을 지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 흔적痕迹을 정읍 충렬사忠烈祠, 태인 동헌東軒등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자랑스럽다. 동학 대접주, 농민군총관령으로 추앙 받는 손화중(1861-1895) 장군이 원하는 법화세상, 지금껏 외쳐대지만 가야할 길은 멀고 이 나라 뜻있는 반골들이 찾아오는 강, 이 나라 가장 후진 풀잎들 눈물이 모여서 동진강물을 보태주네.
12 강물은 배들梨平 들녘을 질러가면서 점점 곰살맞게 흐른다. 천팔백구십사 년 고부민란 때, 농민군 수천 명이 고부로 몰려가기 전 장두천 진을 치고 녹두장군을 기다렸다는 그때 그 시절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늙은 감나무 하나, 연전까지 여기 정정히 서 있었는데 세월 탓인가 어느 사이에 없어져 말목장터 옛 터전이 휑하니 을씨년스럽다.
「들리는가, 친구여. 갑오년 흰 눈 쌓인 고부들판에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만석보 허무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대 지금도 그 새벽 동진강머리 짙은 안개 속에 푸른 죽창 불끈 쥐고 횃불 흔들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굽은 논둑길로」〈양성우,「만석보」에서〉
만석보가 있다는 하송리로 간다. 만석보는 조선후기 보자리인데 조병갑의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하여 들고 일어선 농민들이 이 보를 대려부시고 동학형명의 거센 불길을 당겼다 한다. 장내리에 있다는 녹두장군 옛집에도 가봤다. 여기서 장군은 아이들 가르치는 훈장노릇을 했다 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천자문 사서삼경 다 버리고 죽창竹槍을 들었을까. 황토현 기념관, 녹 슬은 확성기에서 구슬프게 울려오는「파랑새 노래」 촉촉하게 젖는 나그네 가슴을 휘잡아 흔든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부지괭이 매 맞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아부지 넋새 보오 울 엄니 쥭은 넋이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는 어이 널러왔니 솔잎댓잎 푸릇푸릇 봄철이라 널러왔지 「파랑새 노래」 전문
「구파 백정기선생 기념관」 정읍시 영원면 갈선 마을까지 왔다.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중 한 분이라는 선생의 영정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일본 왕 암살을 시도하였고 중국 남경과 상해에서 항일운동에 온몸을 바쳤다. 흑색군단을 조직해서 활약하다가 천구백삼십삼 년 삼월 육삼정에서 일군정요인 중국 친일거두들을 차례로 박살냈다. 발각되어 천구백삼십사 년 칠월 삼십구 세 짧은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하시니 애답구나, 우리 백정기의사! 정부는 천구백육십사 년 이를 높이기려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
13 호남평야 북쪽을 향해서 달려간다. 김제와 부안 경계인 동진면 하구. 모악산에서 내려온 원평 천이 두승 산으로부터 마중 나온 고부 천 친구들과 아주 즐겁게 한판 어울린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소란도하다.
원평 천은 모악 산 정기 받아 흐른다. 원평 도접주 김덕명(1845-1895)장군, 한이 서려있는 장흥리 마을을 가만가만히 흘러내린다. 장군의 이름은 준상峻相, 덕명은 자字인데, 자字를 이름으로 즐겨 써왔다 한다. 언양 김씨 후손으로 금산면 장흥리에서 나서 자기보다 연하인 김계남 최경선 장군을 도와서 삼례 광주 남원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원평 저잣거리 구미란 싸움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체 고향 땅에서 붙잡힌다. 정골 산중턱 안정사골에 장군의 실묘實墓가 있으며 태어나서 희망과 좌절을 함께 안겨준 김제군 금산면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두승산은 말이 없다. 호남평야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아 온갖 풍상 다 겪는 역사의 증인이다. 침묵만으로도 위용이 넘친다. 고부는 두승산이 있어 빛이 더 난다. 고부하면 두승산, 두승산 하면 고부가 아닌가. 천팔백구십삼 년 동짓달 어느 날, 이 산 아래 작은 마을 주산, 송두호 집에서 사발통문이 만들어진다. 창호지 한가운데 사발 하나를 엎어놓고 사방으로 둘러앉아 각자 자기이름자를 써 넣으면 발신자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이다. 꼭 집어서 주모자가 누구다 알지 못한다. 한 배 탔으니 모두가 주모자라는 선인들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무명 농민군 위령탑」앞에 서있다. 이름 없이 헐벗은 산야에 피를 뿌리며 녹두꽃처럼 떨어져 간 무명갑오동학농민군을 추모하여 손모와 배례拜禮하고 또 길을 재촉한다.
14 상두산 남상濫觴으로부터 허위허위 중단 없이 달려온 강물은 김제평야를 질러가서 간척지가 보이는 동구 앞으로 해서 어느새 동진대교를 건너간다.
동진강 하구역 강물은 오래 흘러온 길을 갯물에 씻고 물 떼가 온다. 물골을 트고 갯벌이 논다 농게 참게 능쟁이는 볼볼볼 춤을 추고 드난살이 말뚝망둑어는 알을 슬고 먼개를 지나 숭어새끼들은 너울을 타고 솟구쳐 오고 있을 것이다 개흙 밑 깊은 곳에서는 백합이 숨 쉬는 소리 한 숨 한 숨 살이 오르는 소리 〈박영은,「물 떼」에서〉
동진강은 희망의 물줄기를 찾는 풀잎의 힘으로 흐른다. 핏줄에 스민 풀잎들은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러져 바다를 항해 한다 바람처럼 물결처럼 순행을 계속할 것이다.
15 동진강은 울 엄니 품안처럼 포근하다. 미워도 밉다 말하지 않고. 슬픔과 기쁨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강은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아름다운 모성애로 흐른다. 동진강은 우리들 시린 어금니다. 견딜 수없이 아파도 어쩔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인연의 강이다 동진강은 전라도 한과 슬픔을 실어 나른다. 농민군의 피울음, 민족상잔의 피 흘림도 비굴하고 아니꼬운 위정자의 비양심도 너그러이 품안으로 끌어안고 흐른다. 동진강은 우리들 가슴에 흘러들어 민족중흥 새 역사의 횃불을 들고 출렁출렁 새만금으로 대양을 항해 달린다. 동진강을 사랑했고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름 없이 시든 수많은 풀잎들을 위하여 황송하게도 안도현 시인 시 한편을 빌려서 그간 시원섭섭하고 아쉽기만 한 여정을 마감한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일제히 북향하여 머리를 푸네.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모를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 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 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 하였네 못 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기상나팔 불어제칠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 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 띠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서울로 가는 전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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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인성황산 원문보기▶ 글쓴이 : 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