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산성 갑옷'에 숨은 백제 멸망의 비밀은?

도심안 2019. 5. 7. 06:07

한겨레

'공산성 갑옷'에 숨은 백제 멸망의 비밀은?

입력 2019.05.06. 18:56 수정 2019.05.06. 20:06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공산성에서 출토된 가죽갑옷
당나라냐 백제냐 국적 논란 '팽팽'

'백제 최후의 날' 관련된 희귀 유산
패망 단서 찾을 한중일 학제 연구 절실
지난달 20일 열린 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 공개된 공주 공산성 출토 갑옷의 한자명문 조각들.

660년 7월18일은 백제가 신라·당 연합군의 발굽 아래 스러졌던 날이다. 백제 최후의 날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은 어디였을까. 백제 마지막 도읍인 사비(부여)로 점찍는 이들이 적지않을 듯하다. 낙화암에 투신한 삼천궁녀 전설부터 떠올릴 터이니. 하지만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곳은 두번째 도읍 웅진(공주)의 공산성이다.

지난달 20일 목간학회 학술대회 발표에 앞서 공주대박물관에서 열린 공산성 출토 갑옷조각 공개회의 모습이다. 이현숙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보관함에 담긴 칠피갑옷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해 7월13일 의자왕은 함락된 사비성을 빠져나와 선왕들 거처였던 공산성에 들어가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왕은 대치만 하다 엿새만에 항복해버린다. 일부 신하가 왕을 속여 항복하게 만들었다는 등의 모호한 기록과 추론이 나오지만, 투항의 구체적 배경은 안갯속이다. 공산성은 멸망의 비운과 항복의 미스터리가 서린 공간이 되었다.

1351년 세월이 흘러간 2011년. 옛 백제인의 저수조 터에서 한자 명문이 줄줄이 적힌 가죽찰갑옷(칠피갑옷) 조각들이 공주대 조사단에 의해 발굴된다. 가죽을 꿴 찰갑 조각들의 한자 명문(銘文) 일부엔 ‘정관(貞觀)19년4월21일’(645년)이란 당의 연호가 붉은 옻칠로 적혀 있었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원정한 해다. <삼국사기>엔 그해 백제가 원정가는 당 태종에게 ‘금휴개’란 갑옷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2014년 추가발굴 결과 칠피갑 유물은 말갑옷(마갑)과 큰 칼 위에 정연하게 포개져 놓였고 그 윗부분은 볏짚단으로 덮어 묻은 얼개가 밝혀졌다. 갑옷 조각이 나온 지층 바로 위에는 백제 가옥터가 폐기된 흔적이 드러났다. 멸망 직전 의례성 행위를 하고 갑옷을 묻은 자취가 드러난 것이다. 학계에서는 곧 국적 논란이 벌어졌다. 갑옷 제작처가 백제냐, 당나라냐는 것이었다.

지난달 20일 공주대 박물관에서는 갑옷 조각 공개 설명회가 열렸다. 갑옷의 국적 논란에 초점을 맞춘 목간학회 학술토론회에 앞서, 2011·2014년 발굴 뒤 6년여간 보존 처리를 한 칠피갑 명문조각 수십여편을 처음 공개한 자리였다. 그동안 출토된 뒤 판독문이 공개된 명문은 30여자였으나, 보존처리 과정에서 새로 판독된 문자가 60여자에 달한다고 이현숙 학예연구실장은 밝혔다.

지난달 20일 열린 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 공개된 공주 공산성 출토 갑옷의 한자명문 조각들.

공주대 박물관은 첫 발굴 당시 칠피 갑옷을 당 태종에게 선물한 백제의 이름난 갑옷 일종인 ‘명광개’(明光鎧)로 간주했다. 당시 발굴조사단장을 맡았던 고 이남석 교수는 의자왕이나 백제 왕족이 썼을 것이란 추정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문헌사학계 쪽에선 백제는 중국 연호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당나라 장수 갑옷설을 제기했고, 중국 학자들도 당나라 제작설을 지지해왔다.

이날 공주대가 명문을 추가 공개한 것은 지난해 말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의 ‘공산성 출토 칠갑 명문 재고’란 논문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발굴 당시 일부 공개된 갑옷 명문들을 분석한 결과 명문 중 일부인 ‘익주(益州)’란 지명은 당나라 때 쓰촨성 청두를 일컫는 지명이며, ‘참군사(參軍事)’ ‘대부(大夫)’ 같은 명칭은 당대 관직임을 고증했다. 갑옷에 붉은 옻칠로 제작연도·제작지·제작 관청을 명기하는 것은 당 율령에 따른 격식임도 밝혔다. 쓰촨성에서 만들어진 갑옷이 알 수 없는 연유로 백제 땅에 묻히게 됐다는 논지였다. 백제설을 고수해온 공주대는 발끈했다. 유물을 공개할 테니 제대로 보고 토론하자며 학술대회를 연 것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 공개된 공주 공산성 출토 갑옷의 한자명문 조각들.

유물 열람 뒤 이어진 발표·토론에선 팽팽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현숙 실장은 출토된 칠피갑옷은 중국에 선물로 보낸 갑옷의 제작 경위를 적은 백제 견본이라고 주장했다. 6세기 중국 남조에 파견된 백제 사신은 명문에 있는 ‘장사’ ‘사마‘ ‘참군’ 등의 중국 관직명을 썼다는 점과 갑옷 상반신 넓은 부위에 장문의 명문을 적은 것은 의례용 성격에 가깝다는 점, 갑옷 명문 연호인 645년뿐 아니라 626·637·639년 등 백제가 중국에 여러 차례 황칠갑옷을 보낸 역사적 정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반면, 이태희 학예사는 공개된 새 명문들이 당나라산을 더욱 확실하게 입증한다고 풀이했다. 새 명문에 나타난 "사조참군사‘란 관직명의 경우 공장 공인을 총괄하는 고유직책으로 당 관직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명칭이라고 밝혔다.

공산성 갑옷은 7세기 동아시아권의 유일한 실물 갑옷이다. 6세기 이전 갑옷들은 무덤 부장품이라 출토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6세기 이후엔 불교 전래 영향으로 무덤에서 갑옷이 사라진다. 이처럼 공산성 갑옷은 희귀한 가치를 지녔음에도 비교할 만한 다른 실물이 없어 제작처 논란을 명확히 결론 짓기 어렵다. 토론회를 지켜본 고고학자 김길식 용인대 교수는 “저수조에 막대한 분량의 무기류만 묻은 건 전의를 다지는 의례 성격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중일 학자들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갑옷 조각이 왜 공산성에 묻혔는지를 파악하게 된다면, 백제 최후의 날, 어떤 드라마가 있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존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나 스티븐 런치만의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같은 역작이 백제사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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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s10시간전

    고구려가 삼국통일했으면 대한민국 땅이 광개토대왕이 지배하던 땅 다인데~중국과 버금가는 땅덩어리를~신라가 당나라 끌어드려 삼국통일 하여~ 손바닦만한 반도의 나라되었지요~

  • 바다사자10시간전

    신라는 통일한적없다. 역사교육이 완전왜곡됐다. 당나라 끌어들어서 잘못하면 한반도 전체 당나라 될뻔했지. 그때부터 배신이 시작된것이다.

  • 전주 두꺼비10시간전

    삼천궁녀는 없었다! 역사를 바로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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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UM 계정만주는우리땅독도도우리땅10시간전

      몸친구보니까 연구원 3000,명 죄송

    • DAUM 계정활대9시간전

      삼천 이름 궁년 1명

    • DAUM 계정덕대산9시간전

      현대사회에서 억수라는 말은 숫자 억이 아니라 많다를 나타내고, 백제 시대의 많다의 상위개념이 삼천이라 하네요~~

    • DAUM 계정ㅋㅋㅋ9시간전

      딥런닝은 뭘까? 딱 봐도 10만이상은 충분한데 초딩은 뭘까? 딥런닝이지. 지금은 모조리 불싸질려서 그런거지. 당시 지명은 바다와 관련된 지명이 많지. 반대로 말하면 당시에는 항구였을 가능성이 높지. 배를 탈 수 있는거 같은데 냇가만 졸졸 흐르고 있지. 시뮬레이션으로 당시에 바다의 수위를 계산하면 항만지대였을 가능성이 높거든. 세월이 흘려서 절벽이 된거지. 3천명이 살기 힘들다는 초딩은 뭘까? 우물이 차지 않는다는것은 지하수위가 높지 못하다는거고 실지로는 백제시절에는 물이 가득했을 가능성이 높지. 옛날에는 당연했던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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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UM 계정내스타일9시간전

      공산성 기사에 삼천궁녀찾는놈은뭐냐

    • DAUM 계정디아블로8시간전

      백제 의자왕 묘지. 현 중국땅 낙양 10리밖에 북망산 묘지터에 있다. 팩트 100프로. 왜구가 써준 왜곡된 역사서 없애 버리고. 이씨조선이 말살한 우리역사 찾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음을 명심하라.

    • DAUM 계정알밤8시간전

      바로 잡겠다,,,,,걸상왕 기쁨조 3000명,,,ㅋㅋㅋ

    • DAUM 계정흰민들레8시간전

      한자는우리민족이발명한뜻글자한글은소리글자얼추역사왜곡이라못믿고누가바른역사가르쳐줳으면

    • DAUM 계정쿠빌라이칸7시간전

      당시 인구로 봐서 3천궁녀는 말이 안됌 의자왕을 폄하하기 위한 것 인도나 중국왕들도 몇 백명 수준

    • DAUM 계정지안7시간전

      3000 만큼 사랑해. 우리나라!

    • DAUM 계정부율5시간전

      알밤/ 요녀석은 단순무식한넘이다 까라면 잘까는 개돼지넘이다..

    • DAUM 계정ground305시간전

      당나라 소정방이의 묘를 찾아 행복하겠다 얼릉 파헤치고 부관참시해라 뭔 일을 그따위로 하냐 대학됴 문닫고 교수도 뭐 중국의 후손임으 자랑할려고 발굴한 거 아냐 허구한날 중국 어디에서 온 누구의 자손이라고 떠벌리더니 사실은 소정방이 이끌고온 당나라 군대의 사생아라고라고라... 에라이 때려쳐라 ♪♬들

    • DAUM 계정미안하다4시간전

      왜놈에 기모노 창기 같은 발상이지요~! 3000...? 기모노 창기~! 왜놈산 말뚝~!

    • DAUM 계정델샨츠4시간전

      그당시 백제는 3국중 가장인구가 적었음 오랜전쟁으로 인구도 별로 없었는데 빠져죽은 궁녀만 3천이라는것은 허구임

    • DAUM 계정지구대2시간전

      상식적으로 3000 명의 궁녀란 납득이 되지 않는다 ~

  • Cheongyaeholloseoda10시간전

    일본 토착민 왜를 제압하고 백제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백제유민들이 세운 일본은 결국 오늘날 세계 4대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당나라 힘을 빌어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놈들의 후예들은 오늘날 어찌되었는가.......수구꼴통들이 되어 허구헌날 빨갱이차령에 지역감정 조장하여 엣백제땅에 사는 민중들만 괴롭히고.

  • 민폐거사9시간전

    한반도의 최대매국노는 바로 김춘추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역사에 패악질을 한 천하의 역적이다. 이완용은 깜도 안 되는, 갱상도 또 ♩♩리봐라! 지역감정의 원흉이로세!

  • 강은아9시간전

    기원전2~300년에 진에 물러난 흉노가 정처없이 살길을 찾아 떠난곳이 대구 달성이다~ 수백년을 대구를근거지로 뿌리를내려 신라와 합쳐지며 말투가 경상도 사투리가 된 것. 흉노(소란스런눔~이라는 뜻) 4가지 높낮이를 갖고있는 흉노족의 말투가 현재 경상도사투리의 그랬어예~ 확~치뿔라~등 고저음이 동일한 것. 이후 흉노는 형제나라 당나라에 가서 원정군30만을 거느리고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친 흑역사인 것.

  • Cheongyaeholloseoda10시간전

    하여튼 신라놈들과 그 후예들은 예나 지금이나 힘있는 놈들한테 붙어먹는데 선수다. 이제는 일본한테까지 붙어먹으려하니 쯧쯧쯧....

  • no189시간전

    갱상도 애들은 선조는 흉노라고 한조고 시대 말키우다 까불다 뒤지게 생겨서 배타고 갱상도 땅으로 도망온 세기들이다 당나라 끌여들여 백제 고구려 칠때 쌀 배달 하고 근친상간의 원조국이다 ㅋㅋ 마복자 라는 천하에 유래가 없는 더러운 짖거리나 하고ㅓ다녔다 ㅋㅋㅋ 임진왜란 때는 왜구에 붙어 길잡이 역활을 했고 지금은 아배에 붙어 토착 왜구 짖하고 있다

  • 성전의 전사9시간전

    쓰촨지역이 백제 군현이였겠지 중국에 가연 백제허라는 지역이 있고 거기가면 전라도에만 있는 외 디딜방아가 아직도 쓰고 있어요 중국인들을 그들을 장족이라고 합니다

  • Cheongyaeholloseoda10시간전

    간교한 신라놈들만 아니었다면 백제가 강성하여 중국대륙과 일본까지 지배하면서 오늘날 세계최강국이 되었을것을......신라놈들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까지 되고......

  • Orca9시간전

    대동강 이북 땅을 당에 주기로 당나라 군인 군량미를 대주기로 약조하고 외세를 끌어들인 김춘추 김유신 아니더냐 에라~~~ 토착 왜구 못지않은 토착 오랑캐 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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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eongyaeholloseoda9시간전

    쌀발음도 못하고 살....며느리도 발음 못하고 며너리 이게 신라어의 실체다.어디서 굴러 한반도로 들어온 족속들인지.....

  • 좋은날9시간전

    신라놈들이 강자에 빌붙어 사대하려는 기질이 없지않아 있지 그게 경상도인들 특징인가 싶다

  • 미스터김9시간전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은 신라가 당을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그 댓가로 청천강 이북을 중국에 바친것이다. 이날부터 한민족은 오랫동안 우리가 지배해온 드넖은 만주대륙을 잃고 동북아 강국에에 약소국가로 전락하였다. 흉노가 세운 신라가 당을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것을 어디 감히 한민족의 삼국통일이라 하는가

  • 만사형통9시간전

    신라는 사라졌어야할 족속들이다. 이제와서 봐도 앞날을 예측못하고 오로지 현재에만 머무르려던 자들 나만아니면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동족을 살해하고 배신하는것은기본이고 필요하다면 다른나라 끌어들여 동족을 말살시키는것도 서슴없이 저지른자들~그놈들의 피가 현재 자유한국당 이라는 후손으로 친일반민족 행위를 정당화하고 지금은 콘크리트지지층으로 친일반민족행위도 용서하는 족속들이다.

  • 르네상스9시간전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쯤 중국과 대등한나라가 되었을것이다 가장 작은나라 신라놈들이 중국을 끌어들여서 만든 통일신라..지금도 싸우는꼴이다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화랑이 아닌 조의가 이나라의 무장의 기본이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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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합8시간전

    역사를 왜곡하고 먹고산자들 천벌부터 받아라 의자왕을 천하에 난봉꾼으로 만들고 당나라를 끌여들여 나라를 산산히 짓밟던 개늠들 낙화암 올라가바라 어데 삼천궁녀가 서 있을 자리나 있던가? 이따이 왜곡하고 그렇게 해서 절라도 와 지역감정 부축인자들 처 듁여야 한다

  • 무대표9시간전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이미 삼국은 통일이라고 봐야 한다. 백제와 신라는 이미 대왕에게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단지 지역 왕조를 그대로 놔둿을 뿐이다. 그리고 신라는 삼국 통일 한 적 없다. 통일 신라가 아니라, 반도 신라시대라고 해야 한다. 만주의 드넓은 땅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무슨 삼국 통일인가?

  • 하늘풍경9시간전

    신라놈들때문에 국토를 중국에 뺏겼다

  • 히피히피9시간전

    같은 민족을 외세와 손잡고 패망시킨 신라족속들의 야비함을 잊어선 안된다 그뿌리가 바로 자한당 종자들

  • 송명종9시간전

    경상도 저 인간들 엿적이나 지금이나 하는짓들 판박이 지금은 미국 일본에 붙어 사죽 못쓴 한국당

  • 사계절이 좋아9시간전

    신라가 삼국통일?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당나라에 애결하여 고구려 백제를 침략하고 대부분의 땅을 당나라에 바치고 한강유역 조금을 얻었을 뿐. . . 그게 삼국통일?

  • 가가린9시간전

    신라가 문제여 신라 후손놈들도 그렇고 지금까지 지롤들이니

  • 현빈10시간전

    상도것들이 나라 팔아먹는 유전자가 있나봐

  • novslaremaoce7시간전

    백제의 중심지는 경기충청지역 산라는 열도식민지를 경영할능력도 없고 근친골품으로 저능아들이 많았다. 후 고려성립되면서 유민들귀환러시가 많았다. 동아시아의 페니키아인이라 불리는 백제에 비해 신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만해대는 양아치잡새기들 김유신 가야계 착취이용하고 나중에 백제 고려 부흥군이용하고 이런 황교활같은샤기들

  • 스카이라잎8시간전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중국에 있을 때 북경에서 4시간 거리에 왕릉이 200기 이상이 있어서 살펴보니까 백제의 왕릉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단재의 제자들이 말씀하여 중학교 역사시간에 듣고 놀랐다. 즉 백제의 담로가 지금의 중국 본토에 존재하였다는 증거이다. 지금도 광동성에 가면 백제허가 있다. 성이 무너져 망하면 허를 붙이는 것이 중국의 관례이다. 백제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니까 우리의 풍속과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식민사관에 맞추어 민족사를 탐구하려니 맞아떨어질리가 없다. 정신들 차려라.

  • 블랙조9시간전

    신라계 아직도 나라팔아먹을 생각만하고 있으니 당나라와 손잡고 명나라 에 나라받치고 일본노 ㅁ 길잡이에 일제시대 앞잡이하다 이제는 미국없으면 나라 망하는것처럼 당나라 명나라 왜느 ㅁ 에서 미국으로 바뀐 것뿐이네

  • 남제9시간전

    경상도 신라는 예전 조상때나 현시대나 왜세세력에 빌붙어 나라망쳐먹는거는 똑같네 혼자서 하지못할꺼면 뭉쳐라 더러운 간자들아

  • more uptempo9시간전

    만주 요동 같은곳은 강성하던 고구려도 발해도 망해나간 땅이고 말갈 흉노 기타 쭝궈 잡탕들이 노상 전쟁 노략질하던 곳이라 누가 차지했어도 오래 유지하긴 힘들었겠지만 골품제에 병적 집착하고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가 반쪽통일 한거보단 북방 부여계통인 고구려나 신비의 문화국 백제가 통일하는게 보다 나았겠지..

  • 리차드 딘10시간전

    백제인 중에 왜로 간 사람들을 추적하는 다큐는 없는지~

  • 문명식9시간전

    흉노 배신의 아이콘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남로당 빨.갱.이 다카키를 거쳐. 나베와 황담마진으로 이어진다

  • 눈코입7시간전

    단군이래 지금까지에 최고1등의 역적은 선덕여왕과 김유신이다 ..집안싸움에 오랑케를 들여 오랑케의 속국이되면서 여자며 공물이면 바쳐야했고 ..참비참한나라가되버린 첫걸음이였지 지금까지도 신라쪽에들이 나라다망쳐먹고있었지 박정희 시작해서 박씨 딸까지해서 쭉.............

  • eazygoing7시간전

    신라는 삼국 통일한적 없고 당나라를 도와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그 댓가로 신라는 멸망하지 않고 존속한거다 삼국통일이란 후세 역사가들이 미하시킨 내용에 지나지 않는거다.

  • 부역자 자유당 능지처참7시간전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 신라. 중국놈들과 협잡하여 민족의 등에 칼을 꽂고 나라를 팔아먹은 아픈 역사 신라.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쇄퇴하여 쪼그라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쳐죽여버리고 싶은 이민족.

  • 사랑과평화8시간전

    신라역사는 부끄러운 역사다 이땅에서 빼내고 싶다 계백장군이야 말로 성웅 이순신과 똑같은 성웅이다

  • 프라임9시간전

    하여튼 과거부터 경상도 새 끼들은 도움이 안됐구먼... 신라(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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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남과 다르다9시간전

    갱상도 밈진왜란때 7년간 주둔하면서 밤낮으로 여자 수만명을 잡아다가 겁탈 그래서 그쪽에 ♪♬ 잡종들이 많다는기야

  • 백마9시간전

    김춘추가 당나라에 나라를 팔아먹지만 안했어도 지금의 자유 일본당은 없었을텐데..

  • 야네프3시간전

    아직도 백제 멸망을 의자왕이 스스로 항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사비성이 무너진 후 의자왕은 공산성에 들어가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집니다. 당시 백제는 주요 성들이 아직도 건재해서 충분히 나당연합군을 대적할 수 있었고, 각 성주들 또한 성문을 걸어잠그고 나당군에 저항중이었습니다. 그런데...공산성의 웅진방령이었던 예식이란 자가 모반의 마음을 품고, 의자왕을 급습, 체포하고 성문을 열어 당나라에 항복함으로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의자왕은 칼로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동맥을 비켜가 목숨은 구했죠

  • 흑기사2704시간전

    경상도놈들은 원래 남 뒤통수 치는 악질들 이야, 등심 같은 신라놈들, 야비 하게 중국 당나라 놈들 끌어들여, 만주땅 그 넓은 고구려 영토 중국에 다 내주고 코딱지 만한 땅에서 살게 되었다는게 정설, 지금도 경상도 놈들의 그 더러운 피는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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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운6시간전

    흉노 갱상도가 백제 충청.호남의 목을쳤던 역사다. 역사적으로 살륙을 일삼았던 흉노는 외세인 당을 끌여들여 금수강산을 핏빛으로 물들였디ㅡ. 오늘날도 친일 매국행위를하며 민족에 가슴에 칼을 꽂고 여전히 흉노 짖거리를 하고있다. 조선반도에 피를 부르는 흉노는 민족에 적이다. 반드시 척결해애야하는 대상이다. 흉노에 피가 썩인 중국인들이다. 말하는 성조를 보면 중국과 완전 같으며 사고방식이 한민족의 후손이 아니다.

  • Thinkkorea7시간전

    백제 장수인 예식진이 의자왕 잡아서 당나라에 항복한 것이 예식진 묘지에서 확인된 것이 언제인데...

  • 서우록9시간전

    한국사 전체를 다시 써야겠네요. 일제시대 일본사학자에 의해 조선사편수회에서 펴낸 한국사가 우리가 배워온 역사입니다. 새로운 한국사의 출발점은 과연 언제가 될 것인지 ㅜㅜ

  • 겨울나무9시간전

    한걸레는 역사를 보는 눈이 사대주의에서 하나도 벗어나 있지를 않습니다. 단군은 역사이지 설화가 아닙니다.

  • 처음처럼 살샬6시간전

    문ㄷ ㅅㅋ들때문에 이나라가 약소국이된거야 백제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중국을넘어 러시아하고도 대등한 힘을 ㄱㅏ지고 있었을텐데 쌀 발음도 못하는 ㄷ ㅅ 들 근친상간이나해대고 동성연애나 해대는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ㄴ 들이었지 지금도 뒷 ㅌ수 잘때리고 아 ㅂ 에 아부하고

  • 수리6시간전

    글쓰기 싫은데 조금 알려주자면 백제는 군사력이 뛰어났고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치고 황산벌에서 비록 계백장군이 패하셨지만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의 군사력으로 뚫을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인 웅진성에서 백제를 지키고 계셨는데 군량미부족이 큰문제인 당의 약점을 알고 의자왕은 장기전을 준비하셨는데 믿었던 신복 예식진의 배신으로 어이없이 의자왕은 포로가 되시고 백제는 멸망했고 예식진은 당황제의 총애를 받고 당나라 제후가 됐으며 의자왕은 포로가 되기 직전 자결하신걸 강제로 살려 압송했다. 그리고 의자왕을 폄하하기위해 삼천궁녀이야기를 만들었다.

  • 다그래6시간전

    인구 몇백만 나라에서 신라놈들이 삼천궁녀라고 개 소 리를 해서 백제역사가 기록된거다

  • 헐랭이6시간전

    신라가 꼭 홍어로 치면 잦 만큼만 남기고 당나라에 다 바쳤지유 에구 옛부터 그 쪽 인간들은 비겁혀유 당나라 아니면 현재는 일본 그다음엔 미국였지유 다 갖다 바쳐서 아부하고 동족 학살하고 그랬지유 현재도 그렇잖아유 친일 토착왜구나베당

  • 사오정8시간전

    신라가 승리한 날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땅을 당에 빼앗긴 치욕의 날이다.

  • 블렉러시안9시간전

    백제 마지막은 이미 밝혀졌다. 기자 모르고 있나? 성충이 충신이고 의자왕이 ♩♪이었던게 아니라 성충은 바보였고 의자왕은 현명했었다. 이 스토리 모르냐? 멸망의 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우리 역사는 안가르쳐 주지만 10년쯤 전인가 중국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숨은 얘기를 알수 있게 된걸로 기억하는데

  • dol9시간전

    백제멸망후 딱 1328년 후에 내가 논산에 입대했네.. 1988년 7월 18일에.. 벌써 30년 흘렀고.. 세월 진짜 빠르다..

  • TWTW-L-STAR9시간전

    신라 개 색히들..

  • 욕심이 화를 부른다5시간전

    암튼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성을 개명하고 모든 여진족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신라의 아들들이니 신라를 생각하고 신라를 생각하여 우리 뿌리를 잊지 않아야 하니 성을 애신각라(愛新覺羅)로 하노라" 라고 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