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조선시대 진주강문 선조들의 간찰(簡札)들1.

도심안 2019. 2. 10. 22:45

1.강주복(姜周福)-벽산유고 (碧山遺稿)

 

성휴 (聖休)
벽산 (碧山)

 

『벽산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강주복(姜周福 ; 1782∼1851)의 시문집이다. 강주복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휴(聖休), 호는 벽산(碧山)이다.
이 책은 1957년 현손 성화(聲和)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는 권상규(權相圭)의 서문과 권말에 권태두(權泰斗)·이상호(李祥鎬)의 발문이 있다. 대개의 문집은 시가 많은데 비하여 이 책은 산문을 주로 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설에서는 천지 구성의 신비로움을 설명하였고, 서(書)에서는 인정을 중시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하였다.

2.강찬 (姜酇)-성건재유고 (省愆齋遺稿)

 

자진 (子鎭)
성건재 (省愆齋)

 

『성건재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강찬(姜? ; 1647∼1729)의 시문집이다. 강찬의 자는 자진(子鎭), 호는 성건재(省愆齋), 본관은 진산(晉山)이다.

이 책은 1820년(순조 20) 현손(玄孫)인 목(穆)이 편집하고, 1866년(고종 3) 후손 명규(命奎)에 의해 다시 산보(刪補)되어 1911년 간행되었다. 서(書)의 「상명재윤선생(上明齋尹先生)」은 김집(金集)의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가례집람(家禮輯覽)』, 신의경(申義慶)의 『상례비요(喪禮備要)』·『예기』, 『가례』등을 근거로 하여 예설(禮說)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서시아배(書示兒輩)」는 학문을 하다가 의문처가 있으면 지나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세히 살펴서 알아야 된다는 것과, 밤을 새워가며 글을 읽는 것은 건강에 해로우니 적당한 수면을 취할 것 등 7개항을 지시한 글이다. 「독성당화첩후지(獨醒堂畵帖後識)」는 외할아버지가 태백산 밑에서 당화(唐畵) 1권을 구해서 그것을 모사하였는데 신선도·산수화·화조도 등 99폭이나 되어, 진기한 것이 살아 있는 것과 같다고 칭찬하면서 가보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글이다. 「봉송송월이공금강지행(奉送松月李公金剛之行)」는 이시선(李時善)이 금강산 탐방을 할 때 준 글로, 칠십고령에도 관광과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기개를 치하하고 탐구는 학문의 일종이라고 칭찬한 글이다. 그밖에도 천연두를 쫓기 위해 쓴 「송두신문(送痘神文)」이 있고, 영물(詠物)로 정상과 경치를 잘 표현한 시 「노방송(路傍松)」·「동벽도(冬碧島)」·「옥순봉(玉筍峰)」등이 있다.

강찬의 아버지는 각(恪)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욱(?)의 딸이다. 처음에는 정양(鄭瀁)으로부터 글을 배우다가 윤증(尹拯)의 문인이 되었다. 1727년 수직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우리나라 제현들의 문적을 분류별로 모아 『현인문적(賢人文蹟)』3권을 만들었다.

3.진주강씨 기헌고택(晉州姜氏 起軒古宅 )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1]

 

 

4. 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 9월에 석하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2]

 

 석하(錫下)가 보낸 간찰이다.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수급자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했다. 두 번이나 부친 서찰의 수납 여부에 대해 언급했다. 족보 편찬 사업이 여의치 못한 근황을 전하며, 송구한 마음을 담아 보낸 간찰이다. 그리고 대금 183원 9전을 우송한다고 알렸다.

 

5.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이대일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3]

 

 구(舊) 정월 이십칠일 이대일(李大一)이 보낸 간찰이다. 자신을 제(弟)라고 하면서 한문과 국문을 혼용해서 쓴 편지이며, 내용에 인철(仁哲) 형의 돈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6.진주강씨 기헌고택 계유년 9월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6]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최근의 근황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집을 떠난 아들에게 건강 및 여러가지 일에 대해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자주 소식을 전하지 못한 점에 대해 나무랐다. 농사 근황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자식의 평안과 무운 장구를 기원했다.

 

7.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술년 6월에 강수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7]

 

 강수영(姜壽永)이 보낸 간찰이다. 의례적인 인사 치레는 생략했다. 외숙모의 초상에 대해 슬픈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망자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현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일정 부분 협력하겠다고 했다. 상주를 위로하며, 자중해주기를 부탁했다.

 

8.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강수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09]

 

 강수영(姜壽永)이 보낸 간찰이다. 보내 준 소식이 모두 평안하다는 것을 듣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근황을 전하면서 질병과 치료 방안을 언급했다. 말미에 과거장에서 1소의 시권이 2소보다 두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많았다고 했다.

 

10.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술년에 강이원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11]

 

 강이원(姜履元)이 보낸 간찰이다. 이별 이후 그리운 정이 간절했는데 보내준 서찰을 받고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여러 가족과 친척의 건강과 안부를 여쭈었다. 또한 자신의 학문적 진전 양상이 저조함을 한탄했다. 최근에 논어 향당편을 읽으면서 공자의 행동거지를 자세히 알았다고 전했다. 자상한 권학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마무리하였다.

 

11.진주강씨 기헌고택 모년에 강수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00018]

 

 강수영(姜壽永)이 보낸 간찰이다.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평안을 기원했다. 여러 가족의 근황과 평안 여부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장차 집 7칸을 사서 이곳에 건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간략한 안부를 전하고, 마무리한 간찰이다.

 

12.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진년 1월에 조부가 형제에게 보낸 간찰(簡札)[00022]

 

 조부(祖父)가 보낸 간찰이다. 손자들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현했다. 손자들의 학문이 뛰어나면 기쁨이 더할나위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집안의 안부에 대해 염려하였다. 질병에 대해 조심하기를 당부하며 독서와 작문에 전념해 주기를 부탁했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읽기를 권하며 독서 방안과 권학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한 간찰이다. 특히 독서와 습자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권면하였다.

 

13.진주강씨 기헌고택 을유년 6월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00030]

 

 이 문건은 가족 안부나 현안 등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이 간찰의 주 내용은 여러 가족의 안부 및 건강에 대한 염려여쭈기,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에 대한 염려, 자식의 학업 권면 등이다.

 

14.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인년 11월에 강석백이 강경희에게 보낸 간찰(簡札)[00031]

 

 무인(戊寅) 십이월 이십사일 강석백(姜錫百)이 참봉공(參奉公)의 부고를 받고 상주에게 보낸 위장이다.

 

15.진주강씨 기헌고택 임자년 2월에 대응이 강홍원에게 보낸 간찰(簡札)[00032]

 

 임자(壬子) 이월 십이일 제(弟) 대응(大膺)이 쓴 간찰로 법천(法川) 강홍원(姜洪原)씨 댁에 보낸 편지이다. 새해 들어서 한 달 동안이나 병으로 누웠다가 겨우 편지를 쓴다는 인사 내용이다.

 

16.진주강씨 기헌고택 계유년 6월에 아우강진만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계유년 6월에 아우 진만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성균관에서 이별한 이후의 근황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여러 가족의 안부와 평안 여부에 대해 여쭈었다. 이어 자신과 가족의 근황을 전했다. 아들의 과거 응시 이후의 불운한 점을 토로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단 대추를 보낸다고 하면서 마무리한 간찰이다.

 

17.진주강씨 기헌고택 무오년 11월에 유치윤이 강석사에게 보낸 간찰(簡札)[00036]

 

 유치윤(柳致潤)이 보낸 간찰이다. 보내 준 서찰에 대해 감사했다. 이어 양친의 건강과 평안 여부에 대해 궁금해하고 일상적인 안부를 전하며 마무리했다.

 

18진주강씨 기헌고택 병오년 4월에 이휘정이 법전에 보낸 간찰(簡札)[00039]

 

 이휘정(李彙政)이 보낸 간찰이다. 그리운 정회를 표현하고 절기 인사를 하였다. 선조 문집 가운데 주자(朱子)가 남긴 글의 존재 양상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어 집안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언급하며, 평안을 기원하고 마무리한 간찰이다.

 

19.진주강씨 기헌고택 갑진년 9월에 종악이 강헌납에게 보낸 간찰(簡札)[00046]

 

 종말(宗末)·종악(宗岳)이 연서하여 보낸 간찰이다. 이별 이후의 그리운 정회를 표현했다. 절기에 맞는 인사를 올렸다.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집안 식구들이 편안함을 알렸다. 최근 불행한 일을 당한 상대를 위로하며 자신이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한 점을 죄송하게 여겼다. 말미에 안부를 전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20.진주강씨 기헌고택 을사년 3월에 남명익이 강헌납에게 보낸 간찰(簡札)[00048]

 

 남명익(南溟翼)이 보낸 간찰이다. 여름 절기 인사와 함께 평소 외유를 즐기는 상대방에 대한 안부 인사를 공손하게 올렸다. 특히, 상대방이 북정의 어려운 일을 수행하고 있는 점에 대해 위로했다. 그리운 정회 표현과 함께 최근의 건강과 형편 등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평소 수업을 받고 싶지만, 여의치 못해 죄송하다고 표현하였다.

 

출처 : 염제신농(炎帝神農) 後 天孫이 있는 곳!
글쓴이 : 眞風流人 破天荒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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