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본 , 백제계 귀족이 이산을 보고 고향산천을 그리워 했나
일본 , 백제계 귀족이 이산을 보고 고향산천을 그리워 했나
정읍의 허궁실 허왕굴이 일본의 시조탄생지 高天原 천반호 (天磐戶)
단군과 일본시조 설화가 유사한 곳 태인 허씨 시조 탄생의 허왕굴이 보이는 산 장군봉
일본시조가 강림한 신앙의 고천원 천안하산 모양이 위의 허왕굴과 유사하다
뉴질랜드로 이주한 네델란드사람이 네넬란드 고향산천을 닮은 '질란드'곳 이름을 새질란드라는 뜻으로 말한다
뉴질랜드 관광가이드의 설명소리이다 맥시코등 모든 다른곳 이주민 도시 이름도 그렇게 만들어 �다
한국의 중국이름도 당나라 이주민 이지은 곳 이름이 많고 마한시대 정읍이름 '초산' 역시 중국의 이름으로 중국초산과 같다고 전한다
백제와 가야의 망명인들이 고향땅 모양의 산천에서 고향의 단군신당을 일본신사에 새를 모시는 도리이 큰솟대를 세우고 향수를 달랬다
가야국이 망하자 친백제 세력 허세신의 부족이 전북 태인으로 망명하여 기존의 단군신봉의 굴에 허왕굴(許王屈 )신당을 세우고 가야 탈환을 생각했으나 백제마저 망하였다
백제가 망하였을 때 일본 지원군이 백강 즉 동진강 항구 백산으로 정읍 태인에 들어오려다가 패하여 돌아갔다 그래서 그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천황족이 되어 일본의 종교 신사당은 백제의 대산군(大尸山 帶山郡) 의 복호 마을에서 살면서 단군을 신봉하는 민속행사가 일본국가 종교 신사당으로 전하여 남아 있나
일본 구주 나가사키현 가고시마, 후꾸오카현 등의 일본 시조인 천조대신이 강림한 곳이잇다
한국의 단군신당 설화와 유사한 태인허씨 시조가 굴에서 살았다는 허왕굴 신화가 있는 허왕굴 산과 굴의 모양 두곳이 유사하다
그리고 478년 동성왕시대 남백제 가야세력이 반란을 이르킨 대산성 반란사건과 일본서기 천조대신 건국에서 천조대신이 굴로 들어간 정읍 태인 허왕굴이 있는 허궁실 장군봉 굴봉산과 일본의 천신하강의 산의 모양을 비교한다
백제에 사는 가야국에서 망명 태인허씨가 일본의 천황족이 되어 백제 대산군 부족의 단군신화 풍속이 일본의 신사당종교로 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天手力男命이 바위문을 던저서 생긴 바위산이다
멀리서 보면 일본 시조의 내려온 이 산이 아래의 허궁실 장군봉과 비슷하게 보인다
정읍지방 군현에서 단군성조를 신봉하는 허궁실, 복호마을 허왕굴산
여기 벗꽃이 많이 피는 허왕굴에서 벗꽃을 살구꽃으로 불러서 '사꾸라'라고 했나
백제의 일본망명 귀족은 일본전역에서 정읍의 허궁실 허장군굴 같은 산과 굴을 찾아서 백제의 단군신당을 차리고 그 후에 일본을 통일한 천황족이 되어 단군신앙 원형으로 두신화가 비슷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생각 한다
백제의 귀족과 가야의 망명족 태인허씨 등이 일본에서 정착하며 고향땅의 신당굴과 고향산같은 모양의산을 보고 얼마나 울고 백제 조국을 그리워 했는지 짐작이 간다
일본의 천황족은 백제족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백제족의 조상 신화를 도리이 신사당신화 이기때문에 일본 땅에는 에는 단군신화 유적이 없다
그러므로 일본 천황신화의 전설과 유사한 곳의 산과 굴의 위치는 한국에서 찾아야 확실하다
기독교 유적 '요당강'이 한국에는 없고 이스라엘에 있듯이 일본에 망명한 귀족이 신봉하였던 단군신당 대산태수 대산군 땅으로 비슷한 지형을 찾아 단군신당을 만들고 이름을 천조대신으로 부르고 있다
천신이 내려와 대산군의 대산진견신(大山津見神)의 딸 고노하나노루(木花之流姬)를 통해서 후하노모지구노수노(布波能母遲久奴須奴神)를 낳은 기록이 있다.
대산군의 땅 일본이름 '반호'가 지금에 시산리 복호마을이며 대시산군의 백제 군청소재지 산성터이다
복호마을에서 허궁실, 오리실, 소궁실, 오리실, 큰실,설의실 등 실자붙은 마을 씨름선수만이 참가자격이있었다
여기서 씨름선발 천하장사가 허왕굴신을 맞이하였다는 전설은 허씨 이전의 단군시대 부족국가 신앙터를 호족 허씨가 신봉한 곳으로 여겨진다
高天原 천암호 천조대신의 집이 여기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반호 (天磐戶)이며 이 바위 아랫마을은유사한 '복호'마을이다
그리고 대산군 대시산군의 군청소재지였다
이 허왕굴의 모양을 일본에서 유사한 아래의 바위를 찾아서 일본 高天原 천암호 천조대신의 집 '천반호' (天磐戶)
'복호'와 '반호' 두곳의 이름이 같다
高天原 천암호 천조대신의 집
일본 高天原 천암호 천조대신의 집 '천반호' (天磐戶)
일본의 천손강림신화 내용을 참고하면 아래와 같은 신화이다
천손 알알이는 구주에 와서 구수대왕의 후비였던 사쿠야히메와 결혼하였고 칠삭동이 신무천황을 낳았다. 사쿠야히메와 구수대왕의 큰 아들인 호데가 신무천황을 대마도로 쫓아냈다.
신무천황은 가야 군대를 얻어서 구주에 복귀하고
왜 여왕 히미코의 사절로 중국에 다녀온 후에 대화를 정벌하여 일본을 통일하고 구수대왕의 손녀인 이스케요리와 결혼하여서 히미코의 사후에 일본 최초의 천황에 오른다.
히미코 여왕의 손자 니니기邇邇藝(174~220?)는 대마도의 해신海神, 즉 오카미宇迦美신의 딸, 고노하나사쿠야히메木花之佐久夜姬와 처음 결혼하였는데, 사쿠야히메는 이미 구수대왕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었다.
사쿠야히메의 큰아들은 호데火照命(187~241)인데, [고사기]에서는 스사노오의 손자인 후하노모지구노수노布波能母遲久奴須奴神다.
[고사기]에서 초고대왕의 장자인 구수대왕, 즉 대국주신大國主神(八島士奴美神者=八千矛神)은 대산진견신(大山津見神)의 딸 고노하나노루木花之流姬를 통해서 후하노모지구노수노布波能母遲久奴須奴神를 낳은 기록이 있다. 후하布波=후하不合으로 보면 후하의 지방왕이라는 것인데, 不合이라는 지명과 합치되는 것으로서 대마도의 지방왕이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 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王卑彌弓呼素不和
이곳은 백제시대부터 대시산군 대산군 태산군 태인군 ( 大尸山郡 大山郡 帶山郡 太山郡 泰仁縣) 으로 이름이 변하여 왔다
대 시산군의 군청소재지 산성터 요새지 터로 대시산군이 아니라 대호산군 즉 하늘신의 집 천반호를 상징하는 집호글자 '호戶 '가 '시 尸' 글자로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대시산군을 대산군 태산군 태인현 ( 大尸山郡 大山郡 帶山郡 太山郡 泰仁縣) 으로 시자 군 이름은 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곳 허왕굴 산 마을이름이 복호마을로서 대호산(大戶山郡)이 대산 ,태산으로 변하였다 생각한다
그리고 천신이 하강한 곳에 대산기신 (대산大山군수)가 정읍의 지명 대산군 대시산군으로 같은정읍 태인지방 이름이기에 산,굴 , 지명이 일치하고 있다 (정읍시 칠보면)
진시황이 타는 5두마차 돌 유적에 단군신앙굴 허왕굴 앞에 있다
이것은 아래의 그림과 같은 신화가 일본서기 '천석굴"조에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산 아래서 '실'자 마을 씨름대회에서 천조대신을 힘으로 끓어내는 천하장사를 선발한다 그 장사가 굴문 옆에 대기한다
석굴암과 분황사 입구에 역사상은 여기서 신라로 전달된 단군신앙 흔적이다
일본서기 천석굴 굴속에 있는 일본시조 천조대신을 궁밖에서 난타 북치고 새타령 노래하여 굴문을 열도록 유도한다
정읍 허왕굴 유적설화
북소리듣고 바위문을 태양신인 천조대신이 살며시 열어본다
씨름대회로 뽑은 수력남신(씨름선수)이 힘으로 천조대신을 끌어내어 아래에 있는 5두마차로 모신다
로마시대 '벤허' 그리고 진나라 '진시황제'가 타고 다닌 5두 마차가 허왕굴 바로 아래에 있다
돌로 만든 대기한 5두마차에 싣고 간다
일본의 건국신화는 한국의 신화와 중국의 율령제 사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무리가 정착한 산봉우리를 소호리라고 부르는 것은 도읍을 뜻하는 백제어 소부리(所夫里) 서울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테라스(한국의 단군)가 그의 후손에게 벼를 가져다 인간에게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한 부분도 신농이 우수인신으로 나무를 잘라서 쟁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 방법을 가르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단군성조의 개천절에 일본에 남은 단군신당 신사당과 일본서기 기록에 비교하여 조사한 자료이다
500년 단군민족 말살에서 사라진 우리 개천절은 일본신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한번도 나라가 망한적이 없어 백제 가야의 단군종교의 역사는 온전하게 계승되어 있다
단군조선개국을 빙자하여 휴일로 보내는 무모한 현실을 의미있는 애국의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권희덕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