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스크랩] 경주정씨 묵재공 정언충 행장(1491~1557)

도심안 2018. 8. 24. 02:30



정언충( 鄭彦忠 · 14911557 )

 

본관 : 경주(慶州)

: 양구(良久)

: 묵재(默齋)

父 : 정온(鄭溫) 품계 : 장사랑(將仕郞)

출생지 : 태인 고현내(古縣內) 출생.

배위ㆍ안동 김응상따님으로 김응상은 송연손에 첫째 사위이다

 

1534(中宗 29)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했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역학(易學)에 전념했다.

친상(親喪)3년 시묘살이를 했다. 유일(遺逸)로 원능참봉(原陵參奉)에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일재(李一齋·名 恒), 김하서(金河西·名 麟厚), 김성재(金誠齋·名 苦默)와 더불어 사우(師友)가 되었으며 향약(鄕約)을 일으켜 후진을 교육했다. 무성서원(武城書院)에 향사한다.


1842년 비인재 김기 지음








월성세고에 유상대 관련시 4편이 전한다

  

중종 39년 갑진(1544,가정 23) 417(을유)

이조가 전 전라도 관찰사가 계문한 효행자들의 상직 문제를 아뢰다

 

진사 정언충(鄭彦忠)은 태인(泰仁) 사람인데, 성질이 본디 순진하고 효성스러우며 행신이 소탈하고 말이 적고 학술(學術)에 밝았다. 아버지의 상중에 있을 때 아버지의 묘소에 갈 적이면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았고, 어머니의 상사를 만나면서는 삼년을 여묘살며 아침 저녁으로 곡하고 전()할 때 제물을 친히 보살폈고, 집이 가난하여 처자가 굶주렸지만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장구(葬具)와 석물(石物)도 극력 실정에 맞게 하되 모두 혼자 마련하고 동복(同腹)들의 힘을 빌지 않았었는데, 온 고을이 흠모했었다.                       



출처 : 정읍시 칠보면 향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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