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옹동면 척천마을 지명 변천과정

도심안 2018. 1. 9. 12:19

 

(1) 1722년 최태서 호구단자 기록에 태인현  동촌면 尺川里

 

(2) 1789년 호구총수에 기록된 동촌면 척천마을


 

(3) 1804년 태인현 동촌면 栢川里  최원승이 작성한 호구단자

泰仁縣 東村面에 사는 崔遠升이 作成한 戶口單子 

(1)동촌면 제1백천리라고 기록하고 옆에 척천리라고 부기한것을보아 척천리에서 백천리로 마을이름이 바뀌었다

(2) 최원승은 전주최씨로 사진1번 김태서의 손자이며 1759(기묘생)으로 55살에 작성하였으며 최원승이 46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에도 栢川里로 기록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1800년 무렵 지명이 척천리에서 백천리로 마을이름이 바뀐듯하다.    

 

본문내용

태인현 동촌면 제일백천리에 사는 유학 최원승(55)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아내 김씨와 동갑이었다. 이들 부부는 다수의 노비를 거느리며 결혼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소유노비의 수로 보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於仁老未라는 노비 이름이 재미있다.

  

(4) 1894(갑오년)에 태인현 동촌면에 사는 최인풍(崔仁풍)이 작성한 호구단자

동촌면 백계리(栢溪里)

甲午年에 泰仁縣 東村面에 사는 崔仁이 作成한 戶口單子


위 호구단자는 최인풍이 28세 1894년에 작성한 것으로 마을 이름을 백계리(栢溪里)라 기록하였으나

최인풍이 32살 44살 호구단자에 모두 백천리(栢川里)로 기록되어 있어 실제 마을 이름이 백계리 였는지 잘못 쓴 호구단자이니지 판단하기 어려우며 최인풍에 1901년 신호적에도 栢川里로 기록되어 있다 

 

 본문내용

 갑오년에 태인현 동촌면 제일백계리에 사는 유학 최인풍(38)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했던 최인풍은 아내와 함께 이제 66세에 이르신 어머니 이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씨부인은 최인풍의 친모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종영의 아들이었는데 종악에게 양자를 온 사람이었다. 노비는 2명이 있었다.


(5) 1900년 태인군 동촌면에 사는 최인풍에 신호적

泰仁郡동촌면 백계리(栢溪里)사는 崔仁풍에 新戶籍에 기록된 栢川里

 

본문내용

전라북도 태인군 동촌면 백천리에 사는 유학 최인풍(44)의 신 호적표이다. 이 문서는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호적제도가 도입된 뒤의 것으로 흔히 “新戶籍”이라고 부른다. 이 호적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호주의 직업이나 호주가 살고 있는 가옥의 형태 등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본 호적표의 주인공인 최인풍은 직업이 유업으로, 아내 김씨와 아들 등 모두 14명이 같이 살고 있었다.

 

(6)조선전도부군 면리동명칭일람(1917)

조선전도부군 면리동명칭일람(1917) 자료에는 비봉리 칠석리 상산리 매정리 오성리 용호리 6개의 리만 있고 마을 이름은 없는 자료이다.


(7)1936년 편찬한 정읍군지 옹동면 척천리


결론:

1800년 이전  尺川里----1800년부터  동촌면 栢川里---1894 자료에 동촌면 백계리(栢溪里) --1900자료에 동촌면 栢川里---1914년부터 현제까지 尺川里

 

출처 : 정읍시 칠보면 향토사
글쓴이 : 태산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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