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의사 목사 정일봉 `그 사랑이야기
정일봉 목사(정일봉성형외과, 아바미션)
- 성령 체험 후 피스메이커
목회자와 의료인 사이 다리 -
그의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의사 목사 정일봉’. 정일봉 목사는 자신이 가진 재능
으로 세상을 이롭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개발한다.
동시에 이를 실제에 적용시키는 실천가이다.
“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셔서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방탕한 생활로 부모님이 늘 불화하셨습니다. 환경 때문에 가슴속에 어른에 대한 분노와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 몇번이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학업을 마쳤다.
이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뤘고 1989년에는 울산에 성형외과병원을 개원했다.
개업 후 쌍꺼플 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 손님이 몰려들었다.
돈이 많아질수록 그는 술과 도박에 빠져들었다.
돈도 많이 벌고 의사로서 성공도 이뤘지만 마음이 우울하고 가난했던 그는 친구 사무실을 들렀다가 한 목사님을 알게 되어 교회에 출석한다.
2개월 쯤 되었을 때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려 참석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고 그의 입에서 회개가 터졌다.
성령을 체험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구원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국민일보를 100부씩 신청했다.
리고 새벽마다 버스터미널로 나가 신문을 나눠줬다.
“찬바람에 터져나간 손등을 보고 아내를 비롯해 사람들이 ‘의사 손이 그게 뭐냐’며 타박을 해도 멈출 수 없었어요”
틈만 나면 보육원과 구치소 등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당시 그가 치료해 주고 성경을 가르친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연락을 해온다.
또 사회에서 비방과 공격적인 말을 몰아내고 역발상으로 칭찬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칭찬일보’라는 인터넷 사업을 벌였다.
이것이 MBC의 ‘칭찬합시다’와 연계돼 공동MC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 그는 영·호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제가 겪었기 때문에 항상 영·호남 갈등이 마음에 걸렸어요. 동서화합을 위해서 음악회와 체육대회 개최하고 기독인 만남의 장을 열어 두 지역 주민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는 동서화합운동을 펼치며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기독인으로서 울산의료선교회 등 의사단체와 기독청년문화센터를 만들어 미혼 기독 남녀 미팅, 복음성가 경연대회 등을 개최했다.
그러나 그가 열심히 할수록 부인은 그의 신앙생활을 못마땅해 했다.
그러던 중 1991년 그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뇌종양이라는 엄청난 진단을 통보 받았다.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같이 듣던 부인도 큰 충격을 받았다.
쉴새없이 눈물이 났지만 절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조용히 마음을 추스리고 그날 저녁 약속되어 있던 의료선교회 정기모임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오는데 아내가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아내에게 조용기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을 말했어요. 건강하게 환자를 진료하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기도하자고 했죠. 그날 집으로 들어온 아내는 처음으로 스스로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했어요”
그 모습에 그는 이 사건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확신했다.
다른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세번째 검사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받기로 하고 우선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밤을 새운 그는 새벽 예배에 참석해서 목숨을 건 기도를 했다. 그때 그의 인생의 두번째 성령체험이 이뤄졌다.
그는 설령 진짜 뇌종양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서울대병원에서의 검사결과도 모호했다. 뇌종양일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뇌혈관이 기형일 수도 있기 때문에 6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울산으로 내려가면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잊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삶을 살았다.
그리고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목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이후 정 목사는 울산비즈니스교회를 비롯해 총 네개의 교회를 개척해 목회활동을 했다.
“목회를 하는 동안 많은 부채가 생겨서 물질적으로 몇 년 간 지독히 힘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죠”
물질의 연단으로 부인의 신앙이 견고해졌다.
혼자만의 신앙이 아닌 생의 동반자와 함께 서로 의지하고 키워나갈 수 있게
것이다.
그는 성형외과의로 활동하며 극동방송에서 건강칼럼과 기독교TV(CTS)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눈꺼풀이 처지는 연로한 목회자의 무료 수술을 2년째 하고 있다.
얼마 전 그는 의사 목사라는 그의 특유의 직함을 살려 양쪽 분야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아바미션’을 창립했다.
아파도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돕고 더 나아가 우리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기 위함이다.
영혼을 치료하는 목회자와 육신을 치료하는 목회자들의 아름다운 만남 가운데 그가 서 있다.
현재 900여 목회자와 100여 명의 의사가 아바미션에 등록되어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대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돕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성도들과 교회가 후원자로 많이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글 : 순복음 가족신문 복순희 기자 (푼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