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우리가 창세전에 존재했다니| ─‥‥‥‥ 질문

도심안 2012. 8. 3. 18:56

우리가 창세전에 존재했다니| ─‥‥‥‥ 질문
임금 | 조회 11 |추천 0 | 2011.05.28. 17:55

우리가 창세전에 존재했다니

 

“우리는 잠시 소풍은 온 사람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나간 후 질문이 들어왔다.

창세전에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문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초가 태초 후부터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보면 사람의 존재가 언제부터인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비롯하여 여러 군데 창세전에 우리의 존재성을 알려주는 말씀을 기록해 왔었다. 우리가 다만 신중하게 그 말씀을 찾기 못했거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성경을 찾아 창세전에 내가 존재했음을 알지 못한 것이 죄라는 인식이라면 나의 존재성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간곡히 원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베소서 1:4~5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원어는 확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9절에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확정)하신 것이니

11절에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확정)을 입어 그 안에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가 물건을 선택할 때, 아무 것도 없는 물건을 보고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한 것이라면 사람의 형체와 형상이 없이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가 창세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단순히 이름만으로 우리를 선택하실 이유가 없다.

무엇이 잘 났기에,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기에, 우리를 선택하셨을까?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깊으신 뜻을 알리시려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는 것이 바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닌가?

 

디모데후서 1:9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도서 1:2에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행위가 너무나 올바르게 해서 아니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주 착하게 살아서 우리를 부르신 것인가?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존재라서 부른 것도 아닐 것이다. 실수투성이고 허물이 큰 존재인데 영원(창세) 전부터 구원의 존재요, 거룩한 소명자임을 확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창세전부터 약속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는가?

 

로마서 16:25~27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생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창세전부터 내가 존재한 것으로 모르고 예수 믿다가 죽어서 천당 가는 수준이 된다면 너무나 억울하지 않는지, 내가 어떤 존재였고 창세전에 무엇을 했으며 천지를 창조할 때가 내가 하나님과 함께 무엇을 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면 단순히 교회 다니다가 수명을 다해 하나님 앞에 간다는 것이 너무나 초라하지 않는가?

 

로마서 8:29~30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교회를 다니면 다 된 줄 알고 있다. 천만에 이제부터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목사나, 사모, 그리고 직분자가 되었다고 해서 선택을 받은 존재로 보면 착각이다. 신앙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위의 내용을 모른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창세전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면 성경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미안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금식을 몇 번을 하고 일천 번제 예배를 몇 번을 했으며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실행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시편 40:7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창세전에 나의 존재를 모른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고 무수한 책을 보고 신학교를 나와도 소용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최근 파주에서 개척하신 목사님과 사모님이 목회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께 원망스러운 넋두리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전도를 하고 한 영혼이라도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진행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부족으로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의 부족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려가며 자책하는 것을 봤다. 그래서 잠언 8장 22절부터 읽어보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여기서 나를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질문했더니 솔로몬이라고 했다. 솔로몬도 맞지만 바로 당신 자신이 나라고 생각하라고 했더니 사모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오는지 계속 읽으라고 했다.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창세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겼을 것이다. 지금 현재 나의 존재가 전부라고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그러면 창조의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한 것은 무엇일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인데 창조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것을 답변해 주려면 아마 몇 페이지의 글을 작성해야만 될 것이다. 여기서 “창조”(빠라)는 구조 변경(리모델링), 디자인하는 차원인 것인데 아마 신학적이나 교리적인 문제로 삼아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아마 우주가 만들기 전부터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면 창세기를 읽는 이유와 목적을 알 것이다. 죄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들을 구원해주시고 창세전부터 우리가 존재한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하기 위함임을 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 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란 말씀을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할 때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명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창세기를 수십 번, 수백 번을 읽어도 왜 읽는지를 모른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장인, 옛날 개정판 하단 부분에 양육 받는 아이)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였고 본연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되는 놀라운 말씀이다. 천지 창조할 때 하나님 옆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된다면 이 땅에서 초라하게 살거나 눈 밖에 난 존재로 살거나 어떤 모양으로 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깨닫고 나면 성경이 한 눈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성경 속에 숨겨진 본질과 원형이 보이게 되며 개념정리가 되어 올바른 말씀을 접하게 될 것이다. 잠언의 기록자가 창세전에 자신을 포함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자들이 해당된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기록한 말씀에 토를 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