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사극 <근초고왕>은 왜 역사날조극인가? [2]
백제라는 나라는 요동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부여세력인 구태무리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 즉, 요동태수 공손탁의 사위가 되는 부여왕 구태가 처남되는 공손강이 대방고지인 황해도지역으로 이주하여 대방군을 설치하고 왕이라 칭할 때 함께 이주하여 대방땅에서 백제국을 선포하고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웅진(공주)을 수도성으로 삼고,205년에 한강지역의 온조'십제'를 정벌하고 구태왕통으로 잇게 한다.
그러니까 초고왕 시기부터가 온조.비류왕통이 단절되고 구태왕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광개토태왕비문에는 그래서 백제세력이 백잔(한강지역)과 이잔(웅진지역) 2세력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백잔은 이후 한반도백제로 성장했고, 이잔은 광개토태왕 시기 정벌로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일본백제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에게 멸망한 한반도백제(백잔)은 일본백제(이잔)가 수도로 삼았던 웅진으로 천도하여 수도로 삼고 궁궐을 수리하여 정착했던 것이다. 한반도백제가 망한 후에 한반도백제세력은 일본백제로 이주하여 지금의 일본을 낳았다.
[삼국사기]기록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듯이, 고구려.신라.백제.가야 4국 중에서 백제는 고이왕 시기에 제일 먼저 법령을 공포하고 관제를 정비하여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한 나라이다. 그런데, KBS근초고왕에서는 근초고왕 시기에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한 것인양 날조하고 있다.
또한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은 22담로(제후)을 거느린 대백제의 기반을 다진 왕으로 평가되야 한다.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침략을 물리치고 한강이남에서 군대사열을 할 때 황제국을 상징하는 노란색 깃발을 사용했다는 [삼국사기]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노란색 깃발을 사용한다는 것은 백제가 마한연방을 계승한 황제국가임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백제제사용 도구인 금동대향로에 마한을 상징하는 봉황을 새겨 넣은 이유는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근초고왕이 태자 부여수와 목라근자 장군을 야전사령관으로 삼아 마한(서남해.가야.신라와 대마도.구주 등 일본열도)과 만주 녹산의 부여을 정벌하여 한반도와 만주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대백제의 기반을 다졌다면, 태자 때부터 전쟁터를 누볐던 아들 근구수왕은 단군3조선 중 번조선 영역에 속했던 요서(난하이남:고대 요동.요서구분 기준은 난하).산동.절강지역을 회복하여 백제담로를 설치하였다고 본다.
지나지역의 백제담로는 광개토태왕시기에 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에서 백제가 패함으로써 잠시 고구려에 귀속되었으나 광개토태왕이 죽자 다시 백제가 회복하였고 동성왕 시기에 이르면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굳건히 지켜내다 동성왕이 무녕왕세력에게 시해당함으로써 지나지역의 친동성왕 세력이 돌궐이나 고구려로 귀화하고 수나라가 지나대륙을 통일함으로써 서백제지역은 상실하고. 일본열도에 속하는 동백제 담로지역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근초고왕이 백제황성에서 내치를 다졌다면 근구수왕은 태자 때 부터 백제군 총사령관으로서 종횡무진 한반도.만주.일본열도.지나지역을 누비면서 전쟁을 지휘하여 영토를 확장한 무인출신의 왕이라 할 수 있다.
[자료]KBS'근초고왕'의 역사적 문제점 정리
■ 개요
드라마 '백제영웅 근초고왕'은 삼국시대 정복군주 3부작의 첫째로, 후속작으로는 고구려 광개토왕과 신라 무열왕이 방영된다고 한다. 정통사극을 지향한다는 KBS가 천추태후의 흑역사 이후 고려시대 시리즈를 포기하고 삼국시대로 이동한 듯. 그런데 천추태후 이후로 KBS 사극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보아, 안 그래도 태왕사신기를 통해 제대로 역사왜곡 병크를 먹었던 광개토왕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원작은 이문열의 『대륙의 한』.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심각한 논란이 있는 내용을 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개연성 있는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는 준수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작을 드라마가 충실히 구현하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니 이것은 본격 초월각색 이중왜곡. (...)
이처럼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분란의 소지를 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이라는 삼국시대를 다루는 사극으로서는 더할 수 없이 뛰어난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주위의 상당한 기대를 모았고, 이에 부응하려는 듯 제작진 측에서도 나름대로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준비했으나 그 결과는......
이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재연하지도 못했고, 민족 감정에 호소하지도 못했으며, 긴장의 완급 조절에 실패했거니와, 기획의도와의 괴리로 시대적 진지함마저 챙기지 못한 뛰어난 또 하나의 흑역사로 자리매김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통 사극과 트렌디 사극의 단점이 접목된 것으로도 모자라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까지 뒤섞인 청출어람 막장사극. 이러한 문제점은 아직 극 전개에 개선의 여지가 있고 내용 면에서도 비교적 신선하던 초반부에는 그나마 잠잠했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해 드라마 인터넷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는지라 차후 이어질 KBS 정복군주 3부작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될 것이 분명하다.
■ 원작 문제에 대하여
우선 드라마에서 다루는 시기는 근초고왕의 일생인데, 원작인 『대륙의 한』에서는 근초고왕의 재위 후반부에서 시작해 아신왕 재위 초반부까지가 시대적 배경이 되므로 서로 합치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원작 자체가 근초고왕이라는 주제와 맞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원작에서 요서를 경략하는 주인공은 계왕의 아들인 '부여광'이다.)
또한 『대륙의 한』에서는 백제의 요서진출이 비수대전을 전후해 격변을 거듭하던 중원의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교묘하게 이루어진 중국 거주 백제인의 자치 세력 정도로 묘사되는데, 드라마는 원작과는 시대 자체가 다르니만치 중원의 사정과 전혀 합치되지 않을 뿐더러 근초고왕이 직접 건너가 요서를 정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근초고왕이 경략하는 요서의 위치 자체도 유사 역사학의 난하요수설에 따라 지금의 하북 지방 및 산동반도에 위치한 것으로 나오며, 심지어 백제군이 지금의 중국 내륙 석가장에 주둔한 것으로 자막이 나오기까지 한다.
이문열 씨는 정작 드라마를 보고 이러한 사실에 개탄하여 가로되 "그러나 각색 과정에서 … 원작이 심하게 전용, 개작되어 그 모습이 심하게 변형, 훼손된 점은 실로 유감이다. 마땅히 계약을 파기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나 …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방송기획을 진행시키고"라 언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드라마의 원작을 『대륙의 한』이라 명기하는 것은 가히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된다.
■ 백제의 요서경략 문제에 대하여
백제의 요서경략을 증거한다고 하는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고'라고 서술되어 있다. 사실 기록 자체의 진위에도 논란이 많거니와, 아무리 이러한 기록을 액면 그대로 신빙한다고 해도 백제의 요서경략이 실행된 시점은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한 385년 또는 488년 이후인 것이다. 그런데 근초고왕은 375년에 이미 죽었다. (백제의 요서경략을 긍정하시는 이도학 교수님 또한 여기에는 동의하셨다.)
더불어 제작진은 요서경략의 또 다른 증거로 '백제도래지왕'이라는 문구가 중국 사서에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원나라 때 편찬된 사료에 산동의 동래군 서남 25리 고자성에 백지래왕(百支萊王)의 사당이 있다는 기록이 확대 부회된 것이다.
역시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에 따라 백제가 경략하는 요서가 요서가 아니고 산동이다. (심지어 석가장)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도깨비 땅 떠서 옮기듯'이라고 하였거니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된 난하요수설은 학계에서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비주류 학설이므로 공영방송인 KBS에서 다룰 만한 내용이 아니다.
■ 등장인물의 가공성에 대하여
드라마 초반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던 문제로, 정작 있어야 할 인물이 없고 없어야 할 인물이 있다는 점이 대강의 요체라 하겠다.
근래 복구검이 목라근자로, 두고가 막고해로, 아지카이가 아직기로 개명하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보강 조치가 취해졌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이, 희대의 외교관이었던 구저, 미주류, 막고와 더불어 사백, 개로, 사사노궤는 아직까지 묻혀있는 상태이면서 아직기는 일본어로 '아지키시'로 뒤의 '키시'는 존칭이고 앞의 '아지'는 전형적인 고대 한국 이름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김춘추의 아내가 된 문희의 어릴 적 이름이 바로 '아지'이다.)
더불어 사씨에 대해 일본서기에 사백, 사사노궤, 사지비궤가 잇달아 등장하여 그 계보를 명백히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사충선-사어달(사기)로 이어지는 족보를 위작했다. 더불어 이 사어달이 근초고왕에 의해 사기로 이름을 하사받는데, 이 사기가 치양 전투에서 첩자로 활약한 그 사기라면 커다란 문제가 된다. 치양 전투의 사기는 斯紀이고 백제 귀족 대성인 사씨는 沙이니, 글자 자체가 다르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큰 문제로 떠올라 있는 것은, 홈페이지의 예고편 안내 서술에서 부여화의 아들의 이름이 '구수'로 명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초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근구수왕은 그 장인 또는 외숙이 진씨인 진고도라고 삼국사기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이전까지 위홍란이 진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가고 태중의 아이를 진고도의 딸과 미리 혼약을 맺어놓았던 점으로 미루어 바로 이 위홍란의 아들이 근구수왕으로 진행되어야 실제 역사와도 무리 없이 진행된다.
사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제2자'라 했는데도 이 드라마에서 4남으로 나온 것부터가 왜곡이긴 한데, 여기에 근구수왕의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지금까지 근초고왕을 시종했던 상당수 세력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지금까지의 극 전개까지도 뒤집어버리겠다는 의도로 비친다는 점이다.
■ 업적의 위조에 대하여
대세론적 서술을 통해 근초고왕이 졸지에 요서경략의 주인공으로 부각당한 것은 그 근원을 따지자면 대체로 김상기 씨의 「백제의 요서경략에 대하여」에 등장했던 억측에 근거한 것이며, (본문에서 스스로 억측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전술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이도학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에 의해 부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등학교 과정 교과서에도 나오고 있다.
36화에서는 근초고왕이 즉위하면서 동시에 6좌평을 설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명백히 고이왕 27년의 사건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 각 좌평의 이름까지 상세히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명백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의거하고 있다고 해도 이는 교과서적 서술의 틀조차 벗어난 것으로 가히 공영방송의 본분으로서는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