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나가노 목사님 - 이재철 목사님 설교?

도심안 2011. 4. 16. 15:27
 

강론)섬김의 사람(2001.10.21.주일찬양예배) 

 제  목: 섬김의 사람(요한복음 13장 12-17절)



  교회가 담당하는 중요한 사역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해서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가 사회봉사입니다. 그리고 사회봉사라는 사역을 감당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섬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사회봉사 사역팀의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섬김"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안수를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는 어느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동서남북 100킬로미터 이내에 단 한 명의 교인도 없는 곳을 찾고 보니 북쪽 '가나사와'라는 지역 이었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곧 그 지역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 둘을 놓고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 교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할 때에는 열심히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6개월 동안 교인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그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보내 주신 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자리를 무려 5년을 지켰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천막의 커튼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들어왔습니다. 청년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동안 5년 동안 했던 그 어떤 설교보다도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그 청년을 데리고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이 청년이 "욱"하더니 피를 쏱았습니다. 그는 폐병환자였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순간적으로 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이런 괘씸한 사람이 있나? 이 사람을 지금 당장 쫒아 버려야 하나, 아니면 내가 이 핏덩이를 쓸어내고 계속 함께 밥을 먹어야 하나?'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처음 보내주신 사람인데............' 나가노 목사는 자기 손으로 핏덩이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가져다가 청년과 다시 먹었습니다.


  그 청년은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이 그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폐병환자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습니다. 이 청년이 생각할 때 '성경은 거짓말이구나, 예수도 거짓말이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폐병을 옮길 만큼 경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폐병 환자인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대해 주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자살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는 목사가 있는데, 거기를 한번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나가노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저녁에 밥을 먹다가 피를 쏱았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밥을 차려 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 청년이 다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그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됩니다. 그리고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빈민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변비라고 합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같이 굳어 있어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장갑을 끼고 손으로 후벼 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그 빈민들의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지만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지처럼 더러운 빈민의 항문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 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일본 기자가 도요히꼬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도요히꼬 목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배운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모셔서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습니다. 일본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이 철수합니다.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나라에서 일본 민간인들이 철수할 때 현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랜 세월동안 그 땅을 착취한 사람들인데, 갈 때 어떻게 테러를 당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지독하게 당한 곳이 사할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패망 당시에 중국 땅에 있던 일본인의 숫자는 200만 명에 달했으나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천황의 항복 성명과 동시에 장개석 총통이 포고령 1호를 내렸습니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 배후에는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의 사역에 대한 감동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가노 목사는 평생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논리로 본다면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없었더라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없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빈민들의 항문을 빨아줄 때, 그 심중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중국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때 그 속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가노 목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철저한 섬김의 사람입니다. 나가노 목사가 섬김의 사람이었기에 각혈하는 청년을 돌봐줄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일을 인하여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훌륭한 목사가 배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섬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섬김은 모두 예수님께 배운 것입니다. 섬김의 원조는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도 예수님의 섬김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파격적인 행동을 행한 뒤 세족식의 의미에 대해서 직접 설명하시는 부분입니다.  그까짓 발을 씻어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들이 발을 씻어주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예수님의 행동은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면서까지 섬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서로를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낮아지기 보다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상에서 조차 누가 더 큰가를 놓고 다퉜던 것입니다(눅22:24). 이러한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 어떠한 말보다 효과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1. 서로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는 14절의 말씀이 NIV 성경에는 "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영어성경의 뉘앙스를 살려서 다시 번역하면 "너희 또한 서로 발을 씻겨줘야 할 의무가 있다"가 됩니다.  14절에 조동사 should가 사용된 것을 볼 때 이 말씀은 섬김이 성도에게 주어진 의무임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겸손한 자세로 섬기셨다면, 그의 제자된 우리들이 서로 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기피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예수님께서 섬김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섬김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와는 감히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높으신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해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 바로 섬김입니다. 따라서 섬기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는 일방적인 섬김이 아닌 상호간에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에게 봉사하듯이 성도들도 이 섬김에 충실할 때 교회 전체와 자신이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엡4:11-16)  아무도 교회 안에서 자신을 높이거나 섬김을 받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대로 우리의 무릎을 굽혀 주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먼저 섬길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서로서로를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mple)


  "주"가 되시고 "선생"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 파격적인 행동의 목적은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임으로 제자들도 섬김의 삶을 살도록 몸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도력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지도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지도력은 바로 섬기는 지도력입니다. 섬기는 지도력이란 지도자가 솔선수범하는 아주 강력한 리더쉽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본을 보이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쉽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셨습니다.


  길을 만들면서 가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길로 가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세상의 이치로만 보더라도 성공하기 원한다면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그와 같이 살면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전11:1)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법대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대로 살고자 힘썼으므로 위대한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궁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궁리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에 충실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내가 세계와 이웃들을 무엇으로 섬겼는가?"를 고민하다 마침내 주어진 모든 명성을 포기하고 의학을 공부해 흑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아프리카 콩고로 떠났습니다. 그는 섬기는 자의 삶이 크고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오직 한번뿐인 인생을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까? 나가노 목사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의 삶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까? 슈바이처의 삶이 왜 감동을 줍니까? 바로 섬김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섬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이 17절 말씀을 통하여 "섬기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섬김은 남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기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야 섬김의 기쁨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설교 크리틱
글쓴이 : 최영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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