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울린 바이올리니스트다.
2009년 7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홀에서 그는 이 대통령을 처음 대면했다. 국가조찬기도회 초청 연주자로 찬양곡을 연주한 뒤였다. “그 분이 먼저 저를 알아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 대통령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에게 하듯 그에게 다가와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말을 건넸다. 석상(石像)마냥 서 있는 그에게 김윤옥 여사가 힌트를 줬다. “새롭게 하소서(CBS 프로그램명)에 출연했었죠? 우리가 얼마나 은혜롭게 잘 봤는지 몰라요. 대통령께서 몇 번이나 돌려봤답니다.”
박지혜(25). 장영주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연주가는 아니다. 그가 내놓은 앨범이라곤 찬양집 ‘홀리 로드’(Holy Lord, 2008)와 ‘소리로 빛을 빚어’(2010) 뿐이니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도 하다.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적잖이 놀라게 된다. 독일 총 연방 청소년콩쿠르 두 차례 1등, 클로스터 쇤탈, 프리드리히 위르겐 젤하임 쉬틸프퉁 하노버 등 석권, 2007년 독일 라인팔츠주를 이끌어갈 연주가 선정, 미 인디애나 주립대학원 전액장학생, 독일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원 최고과정 졸업, 독일 클래식계의 살아있는 신화 울프 휠셔 교수 사사. 숨은 실력자다.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여느 연주가들이 가는 길과 달리 찬양사역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섰다. “세상에 기대려고 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앳된 외모에 지나칠 뻔 했던 슬픔이 베어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언제부턴가 아무리 해도 나아갈 수 없는 거예요. 우울증까지 걸려 죽을 생각도 했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심정으로 찬양집을 낸 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그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홀어머니 밑에서 강도 높은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오선지 위의 음표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 나갔다. “아버지”라고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을 땐 하나님을 찾았다.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재능에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 박씨는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중학생 때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예고 교사로 재직하던 어머니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독일행 티켓을 끊었다. 청운의 꿈은 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툭하면 찾아오는 ‘손님’은 반갑지 않은 ‘슬럼프’였다. 그 무렵 접한 곡이 한국의 복음성가다.
복음성가를 들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자는 꿈. 마음을 다잡은 박지혜에겐 탄탄대로가 열렸다. 독일 총연방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에 입상해 명품 바이올린인 과르네리를 상으로 받았다. 과르네리는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가에 낙찰됐던 세계3대 바이올린이다.
현재 박씨는 한국과 독일, 미국 등을 오가며 찬양사역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유치원때 제 기도 제목이 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해달라는 거였더라고요.” 배고픈 찬양사역이지만 방방곡곡을 돌며 바이올린으로 힘껏 찬양하고 나면 기도로 돕는 사람이 배가 되어 힘든 줄 모른다는 박씨. 3000원, 5000짜리 싼 옷을 사 입지만 남부러울 것 없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래서일까. 슬픔이 한 없이 베어 나오다가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과도 같은 음색으로 변하는 바이올린 선율. 예수의 사랑에 답하는 불우헌곡(不憂軒曲)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