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제훈목사/복음의 핵심/ 샘솟는 교회 주일설교
성 경 : 행 8 : 32 ~ 35
Ⅰ.시작하는 말
빌립은 지금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는 내시에게 다가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나사렛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고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도 오순절 성령강림 후 맨 처음 설교에서 이것을 말했던 것이고, 나아가 이것은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중대한 주제이며 서신서와 복음서도 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또 사도 바울은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고린도라는 국제도시에 가고자 했다. 고린도는 전형적인 그리이스 도시로서 항구인 동시에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앴을 뿐만 아니라 무역과 상업도 성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이 메시지와 우리의 상관성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Ⅱ. 본 론 : 그리스도의 죽음
1.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함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듣는 자들의 격분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의 생애보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영혼을 위해 가장 중요한 복음의 중심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못 박히셨다는 이 메시지야말로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요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일지 모른다. 갈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지금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던 사53:1-2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오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완벽하게 묘사해 준 구절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셔야 했는가?이다.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필요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즉,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음은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꼭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우셨고, 율법도 주셨다. 그러나 충분치 않았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다. 우리와 똑같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려고 하시던 때에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 세례주기를 청하셨다. 요한은 말하기를 마3:14-15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우리가 메시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이것만이 구원의 방법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 후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이 세례받으신 후 40일동안 밤낮으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기록이다. 약1:13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런데 악이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다니!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무슨 뜻인가? 그야말로 우리와 똑같이 되신 것이다. 이것이 출발점이며 비밀 중에 비밀, 경건의 비밀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죽음과 나와의 관계
1)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가 된 이유
그는 순결했고,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았으며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그런데 왜 슬픔의 사람이 되었는가? 주님이 웃으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을 만큼 인간의 문제가 깊은 것이기에 주님은 하늘을 떠나오셔야 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동안 밤낮으로 시험 받으신 후에 천사들이 와서 수종들었다. 막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주님이 천사의 수종을 받으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의 전적인 비극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지옥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수종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우리는 시험에 빠져 죄를 짓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예 싸움을 포기한 채 계속 죄를 짓지만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에 악의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슬픔의 사람이 되신 이유인 것이다. 마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변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는 귀신을 좇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위엄과 힘을 지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만 주님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이 사람들을 고치실 때 그들을 자신의 일부로 품으시고 짊어지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는 범죄와 타락의 결과로 나타난 죄와 허물과 아픔을 자신의 일부로 품고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또 어느 날 주님께서 변화산상에 올라가셨을 때, 한 아비가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막9: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한탄이다. 즉, 믿음이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없음에도 믿음이 없음에 대한 질책인 것이다. 또 어느 날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어가는 딸을 고치러 가시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싼 채 가게 되었는데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무리 중에 있었다. 그 여인은 주님이 능력이 있으시니 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수님 옷가를 만지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 곧 스스로 아시고 (막5:25-34) 주님은 갖가지 많은 기적을 행하시지만 그 모든 일에 항상 수고가 따른다는 말이다. 이사야 53장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고통을 견디신 이유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내시는 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고 누구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는데 자신을 위해 변호하지 않고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을 위해 변호하지 않았을까? 그가 상대하신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보다 다른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요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 형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봐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알 수 있다.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순교자의 죽음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순교자는 죽어가면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미소를 지으며 영광스럽게 죽어간다. 하나님이 순교자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아 주시고 떠받쳐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 십자가에 못박힌 세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군병들은 주님이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놀랐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군병이 창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쏟아졌다. 이미 심장이 터져 버렸다는 말이다. 주님은 다시 없을 고난, 가장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다. 모든 인간의 죄가 그에게 지워졌기 때문이다. 성부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남김없이 그 몸에 부어졌다는 말이다. 이 엄청난 고난을 깨닫겠는가? 이것이 고난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다.
Ⅲ. 맺 음 말
빌립이 내시에게 한 말은 우리를 지옥형벌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오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간고를 많이 겪어야 했으며, 질고를 아는 자가 되신 것이고, 고통을 견디신 것이다. 우리의 고난을 면해주기 위해,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도말해주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이루어야 할 일이었고, 치러야 할 희생이었으며,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 죄사함을 받는 길은 오직 이것뿐인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알겠는가?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아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즉, 이 사실을 믿고 있고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은 것이란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붙잡고 주님의 풍성한 은헤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D.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