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다와 메이지유신)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고려(高麗)였단 글 (옮김)
Jerusalem, Ville Capitale de la Palestine sous David et Salomon....Paris, [1770]
고려 에도성 다리. (지금의 동경) 그림들은 아래의 원문과 무관함.
(좌) Meiji emperor. 메이지 천왕.
(우) 왜인들에게 학살 당하는 고려인들. 뒤쪽에 일본본토의 '고려제국'이었던 '에도성'의 정문이었던 '고려문'이 보이는데
고려문은 '메이지유신'(1868년) 때 철거하고 '황거정문'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왜인들이 고려 조선사람들의 팔다리를 치고 많은 관계를 가졌다고 함. 손발이 땅에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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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글임. 댓글까지 꼭 정독해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고려(高麗)였단 글.
http://jsrpower.org/bbs/board.php?bo_table=tbl_07&wr_id=168&page=6 (출처 : 궐한의 역사이야기)
밑의 글과같은 정황들로 볼 때....
한반도와 만주는 티무르국(명 차이나)에 밀린 고려인들의 동고려(동국)황조였을 것이고...
아마도 태종 때 쯤 병합되어 중조(차이나)령 동국으로 편재돼었고...
그 부속도서가...중원 남부,동부 해안가와 일본열도까지 였다가
인도 북부의 티무르제국인 무굴제국(남명)을 양이들이 점령할 때 용병질을 했던 인디네시아 인도 필리핀등지의 왜노족들이...
그 여세를 몰아..양이들의 무기와 선단을 지원에 엎여... 현 일본열도를 점령하고...고려인들을 인종청소 내지는 혼혈시키고...
그 일본 열도의 혼혈왜들이 주도가 돼어...
동남아 전체와 인도,파키의 왜노족들과 연합하여...잔존 명나라(티벳 남명)을 치려다...차이나(중조)의 허가가 않 나서...
그 길목인 조선(고려)의 영역인 중원의 해안지대와 한반도를 치는게 임진란일까 합니다.
큰 틀에선 모두 대륙조선이나...
그 통치의 실체는...남명(망한 티무르제국,무굴),동명(중조,차이나),조선(동국,고려)..가 확실히 자치통치 돼었다 사료됩니다.
감상하시겠습니다.
시대소리 뉴스의 요즘 뜨시는 역사칼럼 리스트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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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도시 에도(江戸)와 일본(日本)의 임시수도 동경(東京)
[한민족사] 일본에서 본 고려제국사 (10)ㅣ고려제국의 질서를 거부한 것이 동북아시아 근대도시계획의 시작
백제사
저번 글에서 에도성(江戸城)의 정문이 高麗門이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아울러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후 에도성(江戸城)이 황거(皇居)로 바뀌면서 정문이 바뀌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 에도성에서 황거로의 변형 ©백제사
황거정문은 관광객들에게 사진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진 二種橋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번 글에도 썼지만 지금의 황거정문은 고려문을 철거하고 들어선 것입니다.
위 그림을 통해 우리는 에도성(江戸城)이 황거(皇居)로 어떻게 변형하였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문이 東에서 南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南에 들어선 새 정문은 고려문을 철거하고 세워진 것입니다. 둘째, 에도성의 핵심지역은 공원으로 바뀌었고 에도성에서 상대적으로 들 중요한 지역에 황거가 건설되었다는 것입니다. 갈색 원안에는 천수각(天守閣) 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천수각은 성의 영주가 사는 집으로 성에서 가장 위용을 갖춘 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시피 천수각 일대는 모두 공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또한 4개의 작은 원은 필자가 답사를 통해 파악한 고려문을 표시한 것인데 보다시피 고려문이 위치한 지역 또한 다 공원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 二種橋는 말 그대로 2개의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 서있는 문이 황거정문이다.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문이다. © 백제사
즉, 에도성에서 고려의 핵심 영역은 다 공원으로 바뀌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고 상대적으로 고려의 채취가 들 남아 있는 곳에 황거가 들어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황거는 에도성보다 규모가 축소되어 있습니다.
▲ 위용을 자랑하였던 에도성 천수각(좌) / 지금은 터만 남아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되는 천수각 터(우) ©백제사
공원이라는 것이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공익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에도성의 핵심 영역, 즉 고려의 영역이 공원으로 바뀐 것을 마냥 시민을 위한 쉼터가 늘어났다는 공익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무척이나 단순한 접근입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었었던 역사적 배경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즉, 둘 다 고려의 흔적과 정기를 끊어버리려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정문의 이동은 동경(에도)의 도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왜냐하면 정문의 이동은 단순한 문의 이동이 아니라 권력의 향배가 이동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남쪽을 향하게 되자 남쪽에 주요 행정기관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행정기관이 있으면 주변에 상업지역이 형성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냐하면 사업가들이 정부 관계자들과 비즈니스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간으로 형성된 곳이 바로 긴자(金座)입니다. 긴자는 지금도 주로 중장년층들을 위한 고급상업지역으로 통합니다. 이런 배치는 경복궁 앞에 일종의 행정타운인 육조 거리가 있었고, 육조 거리의 동쪽으로 상업지역인 종로가 들어섰던 것과 유사합니다.
▲ 황거정문 앞으로 중요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그 동쪽으로 긴자가 형성되었다. ©백제사
저번 글에서 성의 정문에 위치한 마을을 城下町라 부른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城下町는 에도시대 주로 상류계층이 거주하였던 공간입니다. 그만큼 고려의 재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이에 대한 사항은 오사카성을 다룰 때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에도성의 동쪽에 있었던 城下町는 메이지정부의 계획에 따라 비즈니스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즉, 고려의 채취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동경역이 들어서 있는 이 지역은 지금 丸の内, 大手町, 有楽町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城下町의 변형과정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城下町 지역을 비즈니스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메이지정부가 직접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미츠비시(三菱)사가 메이지정부로부터 이 지역을 전부 불하받아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비즈니스 공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미츠비시사는 잘 아시겠지만 군수산업을 통해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단히 기여했던 회사입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항은 이 미츠비시사는 유태금융자본과 연결되어 있는 회사라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동경의 도시구조가 한 눈에 들어 올 것입니다. 에도성(江戸城)이 황거(皇居)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에도(江戸)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오늘날의 동경(東京)이 말입니다. 황거의 남쪽으로 행정기관들이 대거 입지해 있고, 그 오른쪽으로 고급 상업지역인 긴자가 형성되었습니다. 에도시대 상류계층들이 살았던 城下町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비즈니스 지역으로 탈바꿈되어 있습니다.
▲ 동경의 도시구조 ©백제사
에도성(江戸城)이 황거(皇居)로 변형됨에 따라 에도(江戸)는 과거의 이름이 되었고 형태도 변형되어 오늘날의 동경(東京)이 됩니다. 흔히 동북아시아의 근대도시계획의 시작은 1868년부터라 합니다. 왜냐하면 동북아시아에서 메이지유신 이후를 근대로 볼 때 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이 1868년부터 도시를 새로 구축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메이지유신 세력들이 처음 손 댄 것은 바로 에도성을 황거로 개편한 것이며 고려의 도시였던 에도를 일본의 임시수도인 동경으로 변형시켜 버린 것입니다.(왜 동경을 일본의 임시수도로 보아야 하는지와 왜 교토가 아니라 동경이 일본의 임시수도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본질은 열도가 高麗帝國으로부터 이탈한 것입니다. 그 흔적이 동경에 남아 있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동북아시아 근대도시계획의 시작은 고려제국의 질서 하에 있었던 에도를 동경으로 바꾼 것, 즉 고려제국의 질서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려제국으로부터의 이탈은 비단 도시의 변형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지유신 세력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사상을 통해 아시아의 질서, 즉 高麗帝國과 朝鮮帝國의 질서를 거부하였고, 그리고 새로운 한자조합 단어를 만들어 과거로부터의 언어단절을 유도하여 대칸민족(大韓民族)의 역사와 인식체계에 있어서도 단절은 만들어 내기에 이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근대라는 세계의 연속선상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근대라는 세계는 수천 년 아시아를 호령했던 대칸민족(大韓民族)의 영광스러운 모든 역사와 철학, 그리고 언어를 지워버린 세계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큰 슬픔의 시기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대부분의 대칸민족(大韓民族)은 자신들이 지금 슬퍼해야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물의 도시 에도를 살펴보면서 오사카성에 남아 있는 고려제국의 흔적을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사(百濟寺), 시대소리 역사찾기위원
시대소리뉴스
www.sidaeso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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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 닉들은 생략했으니 궁금하시면 출처에서 확인하세요.)
저도 100% 궐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그런데 일본열도는 ..어느시점에 대량의 왜족이
침입해 들어간 게 확실한데...제가 볼때는...메이지유신..즉 서방금융자본 세력이 뒷돈과 무기를 대준
..그 때..대다수의 왜족들이 열도를 장악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왜냐하면..
일본에 가보시면....100년전까지만 해도...일본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즉..........100년전 정도에 갑자기 소고기가 들어왔다는 것이고...이 100년전정도에 뭔가 소고기를 먹는 이주민이 대량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아마도 동남아 왜족들을 앞세운 서양세력이 100년정도에
열도를 장악하고 원주민을 제압하고 혼혈화시킨 것 같아요..특히 일본은 필리핀계열들을 대량으로
데려다가 혼혈화시킨 것 같습니다...왜냐하면 필리핀계 혼혈이 일본엔 엄청나게 많거든요.
또한 인도,파키,방글라에 대한 일본녀들의 태도도 상당히 우호적입니다..즉 이쪽계통의 혼혈도
많다는 반증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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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들의 멍멍이가 되어...인도의 무굴제국을 패망시킨게 명치유신이고...
이 때...일본열도도 왜에 병합되며...오히려 왜를 주도하게 되고...
이를 게기로 ..동남아 왜는 티벳의 남명(무굴)망명정부까지 치고...서아시아까지 치며...
현 파키애들이 대체적으로 그들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이를 지원&지휘하려는 일본 열도왜들이
양자강을 통해 티벳& 중앙아로 가는 길을 내어 달랜게...정명가도 요구인가 합니다.
이를 ...대륙조선(차이나,이조)의 동국조선(선비조선,청조선,고려)가 반대해...
임진년에 ...일본열도 왜들이 한반도 해안을 거쳐 양자강과 황하입구를 치며...
복건성,광동성 산하의 남부 해안 왜인들을 선동해 일으킨게 임진란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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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지역의 모굴제국을 패망시킨게 명치유신이다?..........흠...아주 흥미롭네요...
영국넘들...사실은 영국넘들은 똘마니들이고 핵심은 금융을 장악한 유돠들이지만..
영국이 모굴제국을 먹는 과정을 보면 해안가의 모굴제국 제후국들을 꼬드겨서
모굴제국을 약화시킵니다. 돈과 무기를 대주면서 모굴제국 몽골황제에 반기를 들게
만드는 수법이죠...그런데 방글라데시 쪽 뱅골만쪽부터 완전히 직접통치로 먹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더군요...인더스강인가? 갠지즈강인가?..하여간 강따라 올라가서 뉴델리지역까지
먹어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명치유신이 그럼 일본열도에서 벌어진게 아니고...인도대륙에서
벌어진 것이란 얘기군요....어쨋든....영미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상하이의 1930년대까지의 사진을
보아도..경찰병력은 다 시크교도들을 이용했더군요....아마도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인도쪽 용병들을
핵심전력으로 삼아서 대륙조선을 멸망시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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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족을 동원했던 포르투갈이 동서양무역의 핵심길목인 말라카해협을 장악한게 1511년입니다.
거의 100년가까이 지배하다가....임진왜란후에 조선이 포르투갈 넘들을 왕따시킨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1600년대까지는 말라카해협을 장악했는데...1602년에 유돠들이 중심이 된 세력인 것으로 보이는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 전신인 VOC를 설립합니다. 그후 38년후인 1640년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함대가 전투를 벌여서 말라카해협을 포르투갈로부터 뺏습니다.
포르투갈이 여기서 진것은 아마도 임란후로 조선에게서 동양과의 무역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이고..이를틈타서 유돠들이 왜족과 붙어서 포르투갈을 몰아낸 것 같습니다.
그후로 네덜란드가 한 100년 넘게 해쳐먹다가....이번엔 유돠들이 스페인함대를 무찌르고
새로운 해양강자로 등장한 영국으로 세력을 옮긴것으로 보입니다.
1600년대 말에 이미 유돠들이 영국의 금융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후 유돠들을 견제한 나폴레옹을 제거하고 영국왕을 살려준 댓가로 영국의 화폐발행권을
유돠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로쓰차일드(롯칠드?)집안이죠..
그후의 역사는 뭐 다들 아시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