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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마련] 5천만원 아파트가 지켜준 행복과 부동산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

도심안 2010. 8. 9. 19:39
[내집마련] 5천만원 아파트가 지켜준 행복과 부동산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연 [68]
시골호박 (ssa***)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48 | 조회 50261 | 2010.08.07 10:45

 

5천만원 아파트가 지켜준 행복과 부동산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연 (2010.8.7)

 

 

주식투자로 10억이상을 날리고, 마지막 남은 아파트 5천만원짜리를 기반으로 토지경매를 받아 그곳에 근린생활시설 2층을 건축하여 1층은 가게 3개를 만들어 세를 주고, 2층은 보리밥 집으로 세를 주어, 재기에 성공한 사연입니다.

 

2003년 중순이후 LG카드 사태때 템플턴이라는 외국계 투자회사를 믿고 물타기의 물타기를 거듭한 끝에, 현금 10억이상을 투자해서 한순간에 깡통을 찼던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있습니다.

가을철에는 몹쓸 병을 치료하느라 수술 몇번 받고 입원의 연속, 주식이고 뭐고 생각할 틈이 없었죠.

 

죽느냐 사느냐가 관건이였기 때문입니다. 12월말인가 년초인가 주식은 완전히 휴지조각으로 변해 있었죠. 목숨은 건졌으나 남는 것이라고는 10억이상 되는 거금을 전부 날리고 말았죠.

 

이분은 제 대학선배이죠. 가족처럼 자주 왕래하며 고민이 있으면 서로 상담하는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인 분입니다.

 

주식경력 25년 이상된 주식전문가, 매년 수익율 15~20%이상 달성, 돈만 생기면 주식구좌에 송금, 시총상위주 매매시 1만주씩 거래, 증권회사에서 VIP라고 공손하게 대해주고, 깡통차고 거지되니, 안면몰수하는 증권사. 이때 빚으로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빚으로 투자 했으면 아마도 한강으로 달려갔을 수도 있었겠죠. 다행인 것은 맞벌이를 하므로 가정의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이때, 남은 재산은 부천시 **동에 있는 소형아파트 5천만원짜리 1, 청약통장 1, 제조업을 하는 사업체 1, 자식3명과 부인 그리고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역학과를 나와 무역회사에서 무역상인을 꿈꾸며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거래처 주거래 금융기관 여직원과 눈이 맞아 결혼하고 자식을 무려 3명이나 낳았으니 욕심도 많았죠.

제조업을 시작했을 당시 3~4명으로 출발하여 40명전후까지 불어났다가 대기업의 무리한 단가요구에 거래를 중단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몸을 가볍게 만들더군요.

 

판로개척을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을 하던중 홈쇼핑 관계자를 소개 시켜주었습니다. 이때 알게된 것이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판로개척이였는데 비용이 도둑놈은 저리가라 이더이다.

방송시간을 구입하려면 순수익의 몇%를 비용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고, 매출액에서 보통 30~40%를 비용으로 지급을 해야만 방송이 가능합니다.(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매출액의 30~40%을 비용으로 지급하려면 남는 것이 없었죠. 대기업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요즘에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머리카락 전부 빠지고도 남을 거라고 봅니다. 제조업을 운영하는 선배를 보면서 제조업의 어려움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수익이 나지 않는 거래처는 과감하게 없애버리고 이익이 많이 나는 거래처만 거래를 하는 소규모 제조업체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제조업체가 있었던 경기도 시흥지역에 땅을 사서 공장을 새로 신축하자고 제의를 많이 했는데, 선배는 여유자금으로 주식만을 고집했었죠.(그때 당시 땅값이 평당 35~70만원 정도였고, 현재는 250~4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몸은 상할대로 상해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는 사이에 10억이상 되는 거금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죠.

이처럼 주식이라는 것은 여유자금이 아니면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저는 주식은 여유자금으로만 함.) 만약, 정신력이 약했다면 한강으로 뛰어들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때 곁에서 지켜주신 분이 형수님이라는 선배의 아내였습니다. 지금도 금융권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해를 넘기고 제조업체와 공장을 정리하니, 순수 현금 8천만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생겼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기존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신규아파트를 분양받고 여유자금으로 토지를 경매받아 상가건물을 건축하기로 결론을 내렸죠.

 

이때, 부천시 **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 5천만원 하던 것이 1억이상되자 매도하고, 기존에 부천시 **동 주공아파트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이곳에서 1억정도 대출받음.) 매도하고 입주하는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졌죠.

 

입주전부터 대법원 경매를 알아보러 몇 달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와중에 좋은 물건이 하나 나왔습니다. 부천시 **동에 대지 50짜리가 몇번 유찰이 되어 다시 나온 물건을 찜하고 현장조사를 나가보니, 위치는 주택가 옆이고, 지목은 대지이나 임야나 마찬가지였으며 그 옆에는 등산로 초입길로 앞면은 넓고 뒷면은 경사가 상당히 심하게 되어 있어, 어느 누가 보더라도 가장 쓸모없는 땅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더군요.

 

일단 관청에 확인을 해보니, 근린생활시설을 건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경매에 참여하여 1억 안되는 돈으로 낙찰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중장비를 동원하여 못생긴 놈을 잘생긴 놈으로 성형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성형수술을 하니 제법 괜찮은 땅이 되더군요. 관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여 근린생활시설 2층으로 조립식 건물로 건축을 완료하고나니, 부천시 **동에 재개발 바람이 슬슬 불더군요.

 

즉시, 대지등기를 5명으로 구분등기하여 분할을 해버렸죠. 현재는 평당 시세가 1,500만원 전후는 형성하고 있습니다. 토지 평수가 큰 것은 평당 지분값이 싸죠. 그러나 10평이내의 것은 평당값이 상당히 비쌉니다.

 

주식으로 전부 날린 재산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부동산이였죠.

만약 이때 마지막 보루인 집마저 손을 댔다면, 기사회생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지금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상주해서 자녀3명을 돌봐주고, 맞벌이는 여전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25년이상된 주식고수가 주식에 한번 당하고 나서부터는 심심풀이로 소액투자만 하고 있더라구요.

선배도 요즘에는 먹고 살만하니까 봉사활동도 많이 합니다. 집안이 기독교 집안인지라 기독교와 관련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판단은 본인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시골호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