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스크랩] 영생고 관련 기사 (전북일보)

도심안 2010. 5. 22. 19:08

    전주영생고등학교


전주영생고 동문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하나 있다. 고교 평준화 세대와 비평준화 세대간

골이다. 평준화 이후 동문들은 비평준화 세대와 선을 긋고 싶어하고,

비평준화 세대들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후배들이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일류대 진학률이라는 자로만 학교를 평가할 경우 평준화 이전 영생고는 전주시내권에서

뒤에 쳐졌던 게 사실. 그러나 어려웠던 시절의 50년대에 가난하지만 배움에 목말라 했던

학생들이 주경야독할 수 있는 기회를 이학교에서 찾았고, 교과과정에서 우수 학생은

드물었지만 여러 방면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재능을 갈고 닦았다.

회사 급사로 일하면서 서울대 치대에 진학해 현재 치과의사로 활동하는 3회 정인엽씨를

비롯, 영생고 출신 인재들 대부분이 역경을 딛고 일어섰기에 더욱 빛이 난다.

특히 레슬링·육상·미술·웅변 등 예체능 분야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됐다. 레슬링 해설로

명성을 떨친 김영준씨와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동메달로 러시아에 첫 태극기를 휘날리게

한 백승현씨가 이학교 출신이며, 정봉수 사단 마라톤 명가였던 코오롱 입단 1호

마라토너였던 김종윤씨와 가수 송대관씨 등도 이학교 출신이다.

영생고는 평준화와 함께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특히 학교재단이 신동아재단으로 바뀌면서

84년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평준화 당시 영생고 진학을 불명예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학교측이

택한 것도 학생들의 실력향상이었다.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돼 학생 실력 향상을

제일 목표로 삼은 결과 일류대 진학률에서 전주시내 상위 평균 5위권에 드는 성과를 올렸다.

‘공부 못하는 학교’에 대한 이미지와 설움을 씻게 된 이학교는 이제 한숨 돌려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학내 20여개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의 취미·적성활동을 지원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여유(?)를 갖게 됐다.

80여명으로 이루어진 학교 합창단은 도내 고교 유일의 남성합창단으로,

지금까지 16회 발표회를 이어오며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기독교계 학교에다 인성교육에 관심을 쏟으며 ‘불량서클’이 없고 ‘왕따’가 없는

‘클린 학교’를 자랑한다.

‘영어로 말하는 시범학교’이기도 한 이학교는 영어 교육에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어민 교사가 7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7명의 영어교사 모두 매년 해외연수를

다녀온다. 영어교사중 2명은 박사학위 소지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 주최

‘도내 중학생 영어말하기대회’를 3회째 이어오고 있다.

학교측의 노력에 동문들도 학교 발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내놓고 영생고 출신임을 꺼려했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고, 학교 발전에 관심을 갖는

동문들이 많아졌다. 한국인 체형에 맞는 골프채를 개발해 골프용품의 국산화와

수출사업화에 성공해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골프용품 제조업체인 (주)랭스필드

대표 양정무씨(23회)는 학교측에 골프팀 양성을 권유하고 이에 필요한 일체를 지원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총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한 심학섭씨(6회·전 전북은행 전무이사)는 “특출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동문들을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며,

학교 발전에 동문들의 힘이 결집될 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동문 인맥 

◇교수
김달수(1회·강남대) 송호봉(2회·경기대) 이상기(8회·원광대) 민경선(8회·경상대)

조평열(9회·광운대) 이일청(9회·서해대) 김영준(10회·경기대) 강희천(10회·연세대)

임재근(10회·군산대) 강인수(11회·전북대) 백종인(〃) 이동명(11회·서해대)

김덕수(12회·군산대) 한상진(13회·총신대) 김내선(13회·전주대)노재화(15회·성결대)

이창기(16회·대전대) 임용택(17회·군산대) 한광회(17회·호원대) 최병길(17회·원광대)

정진환(17회·원광대) 육근병(19회·첨단영상전문대학원) 고준석(26회·전주대)

박병도(26회·건국대) 김종한(27회·원광대) 김태현(〃) 김태선(전주대)

◇예술계
송대관(8회·가수) 김춘식(10회·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유휴열(10회·서양화가)

이시영(11회·시인·창작과비평사 상임고문) 박상문(14회·시인·캘리포니아 라노대학 이사)

김용관(16회·서양화가) 유종국(17회·서양화가) 김종수(17회·성악가)

이기전(17회·미협이사) 송동욱(19회·서예가) 박방영(19회·서양화가)

◇경제계
홍순직(1회·대원섬유 회장·서울니트조합회장) 김대영(1회·대영필터대표)

한상회(1회·태인건설고문)·박성근(1회·성찬식품대표) 전덕기(1회 동원병원이사장)

박홍영(2회·동방레미콘 대표) 박정규(2회·제일종합시장 대표)

정봉수(4회·부영종합건설 회장) 이양우(4회·삼부산업 대표)

김수영(9회·용산마이웨딩홀 대표) 하태열(9회·신덕식품대표)

심민보(11회·휠라코리아 대표) 민금상(12회·하이마틀)

문무량(13회·OK레미콘 회장) 전상윤(14회·교육산업 대표) 조희민(14회·풍림 대표)

한광수(14회·남창당 한약방 대표) 서봉선(15회·천일건업 대표)

김용태(16회·현대레미콘 대료) 유희경(17회·대한환경 대표) 김석(18회·국제농기계 대표)

정창기(19회·성창프라스틱 대표) 이세엽 (19회·한국원자력엔지니어링 대표)·

지성환(19회·한선패키지 대표) 김유득(20회·해림엔지니어링 대표)

정선덕(22회 현대포미자동차 대표) 차동진(22회·동진코스콤 대표)

양정무(23회·랭스필드 회장) 송재승(25회·에세두에 대표)

◇의료계
김병운(2회·한의사) 정인환(3회·치과) 안태평(4회·한의사) 조병수(21회·치과)

김원섭(23회·제일의원) 최창수(23회·치과) 나창현(25·군산제이병원) 김진오(25·내과)

기성식(25회·한의사) 김성곤(25회·치과) 윤여은(〃) 이국엽(〃) 변호영(〃)

전보근(25회·정형외과) 이영일(26회·치과) 정몽룡(27회·치과) 고용곤(27회·정형외과)

김운영(27회·한의사) 장용진(27회·치과)·한흥준(27회·한의사) 문현기(〃) 이병구(28회·〃)

박진상(〃) 이태관(28회·내과) 유경태(29회·한의사) 신형식(30회·치과)

유성진(30회·한의사)

◇언론계
이충구(1회·조선일보 특집부장 역임) 조대호(10회·한국일보 광고국장)

김택수(11회·전북도민일보 부사장) 우찬웅(17회·스포츠투데이 파이낸셜뉴스 총괄본부장)

신효균(18회·JTV보도부장) 임환(18회·전북도민일보 취재본부장)

유민수(22회·중앙경제신문) 김선경(25회·기독교방송기자) 임종렬(25회·YTN기자)

강희청(25회·국민일보기자) 김흥군(26회·문화일보기자) 하종대(26회·동아일보기자)

신종수(26회·국민일보기자) 김수곤(26회·동아일보기자) 최진환(26회·한국일보기자)

유무영(26회·교육방송PD) 김영종(26회·KBS PD) 이정배(26회·서울경제신문기자)

박종률(27회·기독교방송기자)

◇건축·세무·회계사
이강유(1회) 백인종(6회) 정상모(8회) 정수화(11회) 최기주(14회) 강재원(〃) 김동철(17회)

신덕길(19회) 김성주(25회) 서민호(〃) 김영율(26회) 조권(28회) 김종현(〃) 박래정(29회)

김재운(〃) 이용표(31회)

◇군인·경찰
노인우(7회·통신감 역임) 이내연(8회·군산경찰서장) 김정권(11회·사단장)

박관배(11회·남원경찰서장) 김재원(16회·대령)

◇법조인
△검사 이상규(25회) 이형택(〃) 정중근(26회) 전훈일(29회) 신봉수(31회)

△판사 박경호(26회) 박종택(〃) 나현(〃) 김동완(29회) 김동현(33회) 소흥철 (34회)

△변호사 김희진(13회) 황병섭(26회) 오창용(27회) 양옥석(28회)

◇행정계
태경섭(6회·공무원연금관리공단 제주소장) 최승범(7회·마포구청 서기관)

안준(9회·검찰청 서기관) 조병수(10회·전주지검 총무과장)

 전형문(11회·강북구청 행정관리국장) 유일엽(15회·평통 이사관) 

양형만(17회·청주세관 소장)  김형욱(25회·청와대국장) 김원종(25회·보건복지부 서기관)

최용훈(34회·입법고시 수석합격)

◇목사
김경섭(1회) 서달수(4회) 최북열(〃) 방의혁(9회) 강희만(10회) 주영일(〃)

이용길(11회) 서동근(13회) 조길수(15회) 박황수(23회)

◇교육계(교장)
권영춘(5회) 최수웅(〃) 양병국(8회·남원시교육장) 양규영(11회·전주덕진중)

서혁춘(1〃) 최홍규(14회·전주영생여상)

◇정치인
유병철(11회·전 도의원·호남유치원 이사장) 신치범(13회·전주시의회 전의장)

정인철(15회·도의원) 김우석(22회·자민련 덕진지구위원장)

◇기타
임용석(1회·재향군인회장) 김영관(2회·민족통일협의회 전북회장)

최용모(7회·법무사·총동문회 회장)

연혁

△1953년 5월5일 학교법인 영생학원 설립인가
△1955년 3월10일 재단법인 영생학원인가
△1955년 12월24일 전주영생고등학교 설립인가
△1956년 1월25일 강흥모 초대교장 취임
△1961년 11월20일 학급수 주간 6개교, 야간 3개교
△1984년 9월1일 관선 이사로 조영빈 전전북대 총장 취임
△1984년 9월13일 전주시 효자동 2가로 교사 이전
△1984년 12월8일 최순영 8대 이사장 취임
△1996년 2월15일 전주시 효자동 3가 현 위치로 이전
△1999년 9월1일 이희성 10대 교장 취임
△1999년 12월14일 9대 이사장 하용조 박사 취임

매년 장학금 등 모교사랑 '각별'... 평준화 1기 25회  

1982년 전주시내 고교 평준화와 함께 전주 영생고로 입학이 결정된 신입생들의 실망감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영생고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나 문제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 전체가 실망감을 넘어 울고불고 ‘난리’가 날 정도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평준화 1기생들이 졸업하면서 영생고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83년도 입시에서 평준화 1기생들이 경영학과 6명을 포함 서울대에만 28명이 합격하는

우수한 성적을 냈기 때문.

학교안에서조차 ‘다시 역사가 시작됐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올 정도로 평준화 1기생들이

보인 ‘놀라운 실력’ 뒤에는 ‘별보기 운동’이 있었다. 영생고 학생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만들겠다는 학교측의 ‘오기’로 학생들은 새벽에 나와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벌레’가

돼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도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당시 교사였던 현 이희성교장의 이야기다.

그 평준화 1기들이 이학교 25회 졸업생들로 지금은 총동창회에서도 중심부에 서 있다.

이상규·이형택 검사·김형욱 청와대기획국장·김원종 보건복지부서기관·

서민호·김성주공인회계사 등을 중심으로 한 25회 졸업생들의 모교에 대한 애정은 그래서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열매실’이라는 모임을 갖고 있는 25회 핵심부는 지난 99년부터

매년 학교측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후배들을 위한 특강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모교 지원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평준화 이전과 이후 동문간 단절을 막기 위해 20회부터 30회까지 매년 한차례씩 체육

회 행사를 갖는 것도 그 중심에는 25회가 있다.

25회를 중심으로 한 재경동문회(회장 김영준)도 활발하다.

재경동문회는 매년 서울지역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후배들을 초청해 자신들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희망 대학을 견학시키는 행사를 매년 갖고 있다.

옛 영광위해 선후배들 '한마음'... 재창단된 레슬링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구수한 TV 해설로 레슬링 경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던 김영준씨(10회, 경기대교수). 이름보다 ‘빠떼루’ 아저씨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지금도 모교 레슬링부에서 운동했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먹고 살기가 힘들 때 아니었습니까. 시합장소에서 미리 몸을 푸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합 전날 전주에서 저녁 11시30분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경기 당일인

새벽 5시40분. 곧바로 경기장으로 향해 경기를 펼친 뒤 경기에 패하기라도 하면

당일 열차로 바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경기에 졌다고 선배들에게

‘되지게’ 얻어 맞으며 힘들게 운동생활을 했던 때가 지금은 그립다고 했다.

“당시 도내에서 레슬링 인기는 대단했어요. 동경올림픽에 김익종·신동희씨 등

도내 출신 레슬링 선수가 3명이나 출전 레슬링 붐을 일으켰습니다.”

영생고를 포함 전주고·신흥고·전주공고·전주상고 등 5개고에 레슬링부가 있었고,

학교간 경쟁 의식도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전주종합체육관에서 함께 연습하다보면

어느새 달이 훤히 떠 있곤 했을 정도였단다.

김씨는 1970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선수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으나

국제대회에 입상하지는 못했다. 대신 1년 후배인 백승현씨가 김씨의 한을 풀어주었다.

백씨는 1973년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대표(그레코로만형)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 러시아 하늘에 국내 스포츠 사상 첫 태극기를 펄럭이게 한 주인공이 됐다.

김씨와 함께 어렵게 레슬링을 했던 동기중 민경선씨는 현재 대구대교수로 있으며,

하승균씨는 경기도경찰청 간부로 재직중이다.

전주영생고는 유야무야로 없어진 레슬링부를 지난해 재창단해 제2의 빠떼루 양성에

들어갔다. 김씨는 재창단된 모교 레슬링부가 우뚝 설 수 있도록 왕년에 활동했던

선후배들이 뜻을 모아 지원에 나서겠다는 말로 모교에 대한 진한 애정을 나타냈다.

출처 : 전주영생고 미술부
글쓴이 : 파란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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