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바로세우기] 약소국 바이러스 신라와 이조라는 졸사에서 벗어나야 한

도심안 2010. 5. 16. 15:20
[역사바로세우기] 약소국 바이러스 신라와 이조라는 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破天荒 熊眞子 역사담론
破天荒 姜錫泰 조회 17 | 10.01.08 20:57 http://cafe.daum.net/pachunwangook/8eZK/32

참으로 웃기는 이조(李朝) 500년! 그리고 정신 못차린 그 머슴들...

 

고려사(高麗史)는 위서(僞書)이다. 고려사로는 고려의 실체를 전혀 알 수가 없다. 태조 이성계와 개국 일등 공신 정도전은 고려의 사서를 필삭(筆削)하여 고려사를 전면 개정하여 놓지 못한다면 조선의 개국도 이성계의 왕권도 사상누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

                (고구려는 군사강국이자 경제대국으로 한반도인 거즘 대부분이 고구려의 영토에서 살고 있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이념을 왜곡하여 고구려인들이 정복한 신라계가 고려 왕실을 이리저리 오염시키며 다시 한 번 약소국으로 전락시킨 역사적 과오는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고려를 거란에게서 지켜낸 구국의 영웅인 강감찬장군의 손녀에게 사약을 내린 인조는 과연 어디에서 온 오랑캐의 피일까?

전주이씨의 뿌리는 여진에게 있다..

여진은 정통 고구려인들이 다스리던 피지배민들이었던 말갈족에 뿌리를 둔다.

 

고구려 망국 후 고구려의 핵심 귀족들이 당과 신라로 강제 이주당하자 구심점을 잃어버린 말갈은 수백년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후 이 민족 중 일부가 고구려 유민들이 결국 신라를 무너트리고 세운 고려에 흡수되면서 성씨를 이씨(李氏)로 창씨한다.

고려초는 창씨(創氏)의 시기로 한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성씨들이 이 시기에 창씨되었다.

전주이씨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현 전주이씨의 족보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벌어진다.

자신들이 중국에서 귀화하여 신라에서 벼슬한 집안이라고 왜곡,변조해놓은 것이다.

 

이 전주이씨에서 고구려의 후신국인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세운...

즉  한 마디로 자신들의 먼 조상들이던 말갈족이 모시던 고구려인들마저 자신의 탐욕을 위해 배반한 폐륜민 이성계가 나왔다.

참고로 인조는 자신들과 같은 뿌리인 청나라를 오랑캐라 괄시한 인물이다.

이런 행실이 오랑캐의 행실이 아니고 뭐겠는가!

 

이성계는 정통 고구려의 직손인 진주강씨 재신공(宰臣公) 강황보(姜璜寶)공을 따르는 수 많은 인물들 중 일인이었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이익재,강중경,최영 그리고 태조 이성계 등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선비들이 다 강황보공의 종유(從儒)들이었던 것이다.

이들 중 유일하게 이성계만이 고려를 배반한 결과로 강황보공을 배신하게 되니 재신공은 문에 의관을 걸고 하늘도 쳐다보지 않으시다 돌아가시고 정몽주 이색 최영장군등과 같은 뛰어난 선비들도 이성계 일파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또한 공양왕및 왕씨족들은 수장당하고 공양왕의 부마였던 강회계(姜淮季)공도 이 때에 화를 당하여 종적을 감추셨고 왕의 사돈 강시(姜蓍)와 그 아들 강회중(姜淮仲)과 같은 참으로 뛰어난 재상들도 절개를 지키며 모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가니 어떤 참된 인물이 있어 나라를 온고히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고려가 누려야 할 부국강병,경제대국의 천년 사직이 400년 만에 이렇게 끝이나고 이조왕권 유지만을 위해 중국에 사대하여 불교를 괄시하고 중국 공자의 유교를 신봉케하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500년 이조가 이렇게 들어섰으니 500년간 이 나라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 여파가 현재의  남북분단의 설움으로 아직도 나타나고 있는 것임을 이 나라 백성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

 

세종이 성군(聖君)이라?

 

정도전이 조작한 고려사를 태종이 의심하였고 세종은 재위 기간동안 고려사를 완전히 개작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한글창제의 공을 자신만의 공으로 취할려는 의도로 당시 한글창제에 참여했던 집현전 학자들도 죽음으로 내몰아 몇몇은 이미 죽임을 당했으며,세종의 이질이자 집현전 학자로 한글창제에 참여했던 강희안(姜希顔)도 이 때에 누명을 씌워 죽이려던 찰라 성삼문등의 유신들이 "참으로 뛰어난 인재니 죽이지 마십시요"라고 죽음을 무릎쓴 상소로 겨우 죽음에서 벗어나신 일화도 전해오니 정녕 한글창제는 누가 했으며 세종이 진정 성군이란 이름을 들을 만한지 세종을 성군이라 짖어대는 자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은 아직도 세종을 세종대왕이라 부르며 성군이라 칭하고 있을 것이다.

비열한 신라종들이 선덕을 선덕여왕이라 부르는 것처럼 미성숙된 정신으로 살아가는 정신 없는 종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어리석은 자들이 있음으로 역사를 왜곡해대는 비열한 자들이 끊임없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세종은 고려의 사서와 고려 실록을 불태웠다.

이것은 세종의 학우이자 신료 김문기 후손에 전하는 가훈과 역사인 <조선왕조실록이 숨겨놓은 역사의 비밀>에 전하는 내용을 조금 발췌,수정 가미한 것이다. 

 

삼국사가 위서(僞書)였으며, 고려사 또한 위서(僞書)이다. 태조 1년10월13일 조준·정도전 등에게 《고려사》를 수찬케 하다. 우시중(右侍中) 조준(趙浚)·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정총(鄭摠)·박의중(朴宜中)·병조 전서(兵曹典書) 윤소종(尹紹宗)에게 명하여 《고려사(高麗史)》를 수찬(修撰)하게 하였다. 태조 4년1월25일 정도전과 정총이 《고려사》를 편찬하여 바치다.

 

생각하건대, 왕씨(王氏)는 고려를 세워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한 집을 만들고, 오대(五代) 때부터 중국을 섬겨, 세대(世代)가 오래고 기록이 대단히 많으나, 여러 번의 난리로 인하여 없어진 것이 있어 <사료가> 구비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록한 사람이 하나가 아니어서, 엉성하고 주밀하며 자세하고 간략함이 같지 아니하고, 혹은 너무 길게 기록하여 시비곡직(是非曲直) 사정(邪正)을 가리기 어렵게 되었으니, 만일 일대(一代)의 실록(實錄)을 만들려면 반드시 <재질·학문·식견의> 삼장(三長)을 다 가진 재사(才士)라야 한다.

왕씨(王氏)의 세상을 상고해 보면, 고려라는 국호를 습용하여 능히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해[歲]를 지낸 것이 5백 년에 가깝고, 대[世]를 전한 것이 30대를 넘으매, 치란성쇠(治亂盛衰)의 자취와 선악득실(善惡得失)의 원인에 대하여 기록이 번거롭게 있으나, 또한 없어진 것도 많으니, 진실로 훌륭한 역사가에 맡기지 않았던들 어찌 완전한 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라며 위서를 지은 그들을 칭찬하고는...

 

내 마음으로 가상히 여겨 후하게 상을 주는 바이다. 아아! 비록 화려하나마 번거롭지 않고 소박하나마 속되지 않으니, 가위 현량한 사관(史官)의 재질이 있다하겠다. 다스리게 되면 반드시 흥하고 어지럽게 되면 반드시 망하는 것이니, 어찌 전대(前代)의 역사를 보지 않으랴! 이제 구마(廐馬) 1필, 백은 50냥(兩), 비단[段子] 1필, 채견(綵絹) 1필을 하사하니 받을지어다.”하였다.

 

이조의 역사를 보면 신라가 단군조선을 이은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폄훼 왜곡 말살한 것처럼 한민족역사를 철저하게 부정,말살하려는 의도가 눈에 많이 보이는게 사실이다.

 

철저하게 중국만을 섬기기를 국가의 개국이념으로 하여 중국인 공자의 유교를 국교로하고(이는 정복국가들의 공통현상 미국=기독교)한민족의 역사는 왜곡,부정,조작,무시하고 오직 이조만이 진짜조선인것마냥 만들어 500년을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이러한 이조의 정신이 아직도 팽배한 현실이다. 

이조는 비록 화교정권이기는 하지만 가끔, 고려를 계승한 문화가 나타날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것이 아니다.

일례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케하고 이순신이 독자적으로 학익진을 만든것처럼  꾸몃지만

 

세종의 한글은 이전부터있었던 전통글자(가림토문자등)의 계승,발전이었고 

이순신의 학익진은 원래 고조선부터의 전통병술인 수리전술을 계승한것이다.

고구려의 명장 강이식장군이 수나라군을 물리칠 때에 학익진을 먼저 쓴 것이 아니였을까?

썼다면 학익진이 아닌 봉황진이 맞겠지만.(고구려는 봉황을 숭상한 민족이다.)

 

이런식으로 마치 이조가 유일무이한것처럼 이조실록을 제 맘대로 조작하였지만  

아버지없는 자식이 어떻게 있을수 있겠는가? 

 

 

이성계의 위화도 반역은 우리 한민족역사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성계부자와 그 일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한 민족을 20만명이나 대량살륙한 후 조선을 건국한 전주이씨왕조였다. 이러한 정권을 이조(李朝)라고 한다.

 

현재의 국사교과서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사실대로 적지 않고 단지 회군이라고 미화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일본이나 중국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국사를 먼저 바로잡지 않고는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도 이렇게 불안한 사회,국가에서

 

이상한 문화들과 서로를 불신하고 헐뜯고 시기,질투하고 사기치는 오염된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싫든좋든 우리 진정한 한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약소국 바이러스인 신라와 이조라는 역사같지도 않은 졸사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이렇듯 모든 정책이나 모든 정신없는 하드웨어적 계획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알고보면 정말로 웃기는 이조,신라가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