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긍정의 힘7)
100212 금요기도회 설교
본 문 : 요한복음 10:10/찬송: 396장
제 목 :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
할렐루야 오늘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긍정의 힘을 마칩니다.
2010년에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최고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자는 주제로 7주를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오늘 7번째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혼란을 겪으면서 삽니다. 툭하면 화를 냅니다. 조그만 일에도 끙끙댑니다. 하찮은 일로 짜증을 부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행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행복하게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합니다. 짜증이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렇게 말해야합니다. “난 행복을 빼앗기지 않겠어. 내 감정을 잘 다스리겠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겠어. 나는 행복을 선택하겠어.” 행복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세상에 도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도적들, 이 원수 마귀는 행복도 빼앗고, 기쁨도 빼앗고, 웃음도 빼앗고, 즐거움도 빼앗고, 희망도 빼앗고, 열정도 빼앗고, 믿음도 빼앗고, 사랑도 빼앗고, 다 빼앗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빼앗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우시고, 넘치게 하시고, 풍족하게 하십니다. 행복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꿈을 주시고, 열정을 주시고, 신뢰를 주시고, 순종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신념을 주시고, 도전함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살리십니다. 우리 주님께로 나오면 반드시 번성합니다. 행복을 누립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들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이 밀려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네 가지를 선택해야겠습니다.
첫째 항상 행복을 선택하라.
행복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하나님이 내 상황을 바꾸어 주실 거야”라고 기도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는 말 같지만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태도가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태도를 바꾸면서 늘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상황을 바꾸어주십니다.
조건을 따지지 마십시오. 상황을 따지지 마십시오.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는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조건이나 상황을 따지지 말고 그 순간, 순간 행복을 선택하십시오. 특히 항상 웃으십시오. 웃음을 즐겨하십시오. 커밍스는 말합니다. 가장 큰 낭비는 웃음이 없는 나날이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현재에 만족하십시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리의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상황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늘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 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城에서 옷감에 자주색 물감을 들이는 염료장수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와 그 집 사람들을 전도한 후, 그녀 집에 며칠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하나를 만났습니다. 바울일행은 여종이 귀신들린 것을 알고 귀신을 내 쫓았습니다. 그런데 점치는 여종으로 인하여 돈을 벌든 주인이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음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심한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지면 사람들은 이게 왠일이냐?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행16:25절은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는 원망과 불평대신 기도와 찬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옥터가 움직여 옥문을 열려졌습니다. 간수가 깨어나서 그들이 도망친 줄 알고 스스로 자결하려고 하는데 바울이 옥에서 그를 불렀습니다. 놀란 간수는 바울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바울 앞에 엎드린 간수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성경은 바울과 살라가 아무 잘못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행16:33~34절입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울과 실라에게 최악의 조건,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 벌어지게 한 것은 결국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만약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서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지연되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최악의 상황, 옥중에서도 기도와 찬미를 선택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b)
행복은 선택입니다.
둘째 뛰어남을 선택하라.
평범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범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평범한 사람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근근이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뛰어나게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들과 똑같이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탁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백점 만점의 뛰어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뛰어나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십시오. 그럭저럭 살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하나님께 하듯이 열정과 헌신으로 하십시오. 출근 시간이 8시라면 10분 일찍이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할 때에는 여우보다는 곰처럼 일해야 합니다.
미국 프로리다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인 애릭슨 엔더슨은 천재는 다른 사람보다 5배나 더 많은 노력을 하여서 업적을 남긴다고 하였습니다. 실례로 프로이드는 45년간 330건의 논문을 썼으며, 아인슈타인은 50년간 248건의 논문을 썻으며, 볼테르는 21,000통의 편지를 썻고, 에디슨은 1093개의 발명 특허를 냈습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남들보다 1시간 더 도서관 불이 꺼질 때까지 공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루2시간의 경쟁력이 자기의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성경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하루 2시간씩 일 년間 700시간을 투자하면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람이 되고, 하루 2시간씩 3년간 2,000시간을 투자하면 국내 최고가 되고, 하루 2시간씩 5년간 3,500시간을 투자하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명심하기 원합니다. 그 본이 되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열정의 삶이셨습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십자가도 막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니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때가 되니 당당히 잡히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직 한 가지를 위해서 불태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므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한 가지를 위해서 온 몸을 불태우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요5:17). 또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나의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을 한다(요14;1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습니다. “장애물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모든 장애물은 단호한 결단력을 낳는다. 별에 시선을 고정한 사람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일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일을 취미생활을 하듯이 합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밤을 새우기가 보통입니다. 블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의 주변에는 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왜 사는지 모릅니다. 회사에 일하러 오는지 놀러 오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끌고 독려해 주어도 요지부동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뒤로 숨기 바쁩니다. 걸핏하면 상사나 동료를 탓합니다. 자신은 할 만큼은 했는데 더 이상 어쩌라는 것이냐며 무대포로 버팁니다. 무늬만 요란하고 열정적이지 실제로는 대강 대강 해 치우고 건들거립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같이 일하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도 불행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열정과 기쁨을 품으십시오. 눈과 가슴에 열정을 가득품고 살아가십시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열정적으로 살면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복과 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열정에서 찾아옵니다. 탁월한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셋째 진실함을 선택하라.
진실한 사람은 남보다 더 열심히 옳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허심탄회하고 정직합니다. 숨기는 게 없으며 꿍꿍이가 없습니다. 자신의 말을 끝가지 책임지며 법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그의 말은 보증수표나 다름이 없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공석이서나 사석이서나 변함이 없습니다. 밖에서는 친구와 동료를 친절하게 대했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가족들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올바른 일을 행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 뱉은 말을 끝까지 지킵니다.
우리의 진실성은 매일 시험을 거칩니다. 슈퍼마켓에서 거스름돈을 더 받았을 때 다시 가서 돈을 돌려주는가? 아니면 부리나케 빠져나와 “이게 왜 떡이냐, 다음에도 부탁해요”하고 좋아하는가? 집에서 개인 용무를 보면서 직장에다가는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에이 그건 악의 없는 사소한 거짓말이잖아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은 행복한 성공을 이루기 위한 토대입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번영이 없습니다. 옳은 길을 걷지 않으면 하나님의 온전한 복을 구경하기는 힘듭니다.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한 가지 우리가 어려운 길을 가야합니다.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하며 심지어는 죽음까지 감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비즈니스맨이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실만 말한다면 많은 고객을 잃을 것입니다.” 한 젊은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제 동료들은 거짓말만 하고 남의 뒤통수를 치는데도 항상 승승장구합니다. 저보다 한참 앞서가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부러워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꾸준히 옳은 일을 하면 일부 고객을 잃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더 큰 고객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또 그들은 언젠가 제 꾀에 넘어갑니다. 당신이 올바른 길을 걸으면 하나님은 승리를 예비하십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뒤통수를 치고 요리조리 잔꾀만 부리면 당장은 이익인 것 같으나 결국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끝없이 복을 부어 주십니다.”
잠2:7절입니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살전5:22절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선의의 거짓말도 악의의 거짓말도 없습니다. 거짓말은 어디까지 거짓말입니다. 진실하십시오. 진실함이 성공하는 길이요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진실하지 않고 어떻게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행복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기 시작하면 한 가정이 행복하고, 한 공동체가 행복하고 한 나라가 행복해 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상황에 관계없이 행복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탁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4.최선을 선택하라
사도바울은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좇아간다.”고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또한 그는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말해줍니다.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뒤에 것에 매이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4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는 죄인의 괴수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에 묶이지 않는 태도를 지녔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는 분명 승자의 태도를 가졌습니다.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행복은 선택입니다. 사도바울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4:12절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도바울은 일체의 비결, 즉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부하거나 풍부해도 행복을 선택하는데 상관이 없습니다. 배가 불러도 배가 고파도 행복을 선택하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풍부와 빈곤 속에 적응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대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Iliad Odyssey)를 쓴 호메로스(Homer)는 장님이었습니다.
쥴리어스 시저는 간질병환자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사관학교 다닐 때 65명중 46등 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기차에서 신문을 팔던 소년이었습니다.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한 달에 4달러씩 받고 일했습니다.
이들은 비천한 가정, 어려운 여건에서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요소들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서 ‘행복’을 선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불행할 수도 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행복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선택하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불행이 나를 주저앉힐 수 없습니다.
미국 경제계에 대한 코스 보고서(Cos Report)에 의하면「포춘」에서 선정한 500대기업의 임원들을 조사한 결과 94%가 자신의 성공요인 중「태도」를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결국 승리하고 행복한 길을 가게 됩니다.
권력은 투쟁을 통해서, 재력은 땀을 통해서, 지력은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는 법, 어떠한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 그것은 많은 시련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안다”고 하지 않고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이 닥쳐올 때 어떠한 태도를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옥 같은 독일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갈 수 있겠지만 결코 뺏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이 내게 행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자유는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자기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그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냥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번 한 가지씩 선택할 때마다 우리의 인생을 과거와는 약간 다른 어떤 인생으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수많은 순간을 선택했던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선택을 통해 여러분의 모습은 서서히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제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형상을 결정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건강할 때가 있고 아플 때가 있습니다. 배부를 때가 있고 배고플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습니다. 세워질 뿐만 아니라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태클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필립스 영어성경>보면 ‘거꾸러뜨림을 당하다’는 말을 “넉 다운-knockdow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가운데 있으나 때로는 사단의 펀치에 맞아 “넉 다운-knockdown”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넉 아웃-knockout’ 되지는 않습니다. K.O패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드심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행을 선택하며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행복은 현재, 여기(Hear&Now)를 선택할 때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저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죽음을 맞는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는 짤막한 한 문장으로 대답했습니다. “출구가 없다!”(No Exit)
복음전도자였던 D.L. MOODY는 죽음을 맞이하던 상황에서 그 느낌을 물었을 때 갑자기 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 (Heaven‘s Gate Open)
내게 능력주시는 자 밖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탈출구’가 없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하늘門’이 열립니다.
궁극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외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치의 수용소에 갇혔던 빅터 프랭클처럼 숨 쉴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도, 바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 넉 다운되어도, 도저히 출구(出口)가 보이지 않아도, 이 모든 형편과 모든 상황가운데서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것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날마다 긍정의 힘을 배양시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자족하기를,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행복하게 사십시오. 여러분이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탁월해지면 나라도 탁월해집니다. 여러분이 진실하면 나라도 진실해집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하면 나라도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 무시하지 못합니다. 한 개인이 행복 한 것은 한 개인의 행복만이 아닙니다. 교회까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해지므로 가정이, 이 민족이, 이 교회가 행복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복음성가 주님 한 분 밖에는 하시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